자기 자신을 규정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지금 규정을 시도하려고 한다. 아마도 실패하겠지만 그리고 의미도 없겠지만 아무도 관심도 없겠지만 실용적인 쓸모 따위 어디에도 없겠지만 뇌까려보려고 한다.
1. 무지한 인간을 기피한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빗겨나가지 않는 나만의 활과 총은 그들의 관자놀이를 향해서 정확하게 과녁을 겨누고 있다. 언제나 방아쇠는 당길 준비가 되어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굳이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없는 인간들에게는 총이나 활 따위를 애초에 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2.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지 아니한 인간을 혐오한다. 그러한 인간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경멸스러운 상황이 아닐까? 역겨움이 느껴진다. 구토를 하고 싶은 나는 상대방의 면상에 쏟아내고 싶지만 상대방은 언제나 거절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나를 등지고 걷는데 혹은 뛰거나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다가 구토를 한다. 역겨움은 언제나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언제나 나 자신에게 문제가 기인한다는 것을 나는 극구 부정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3. 민족 집단 형성을 반대한다.
좀 더 명확하게 단어를 다듬으면 민족주의 혹은 집단주의라고 해석을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들은 나라는 인간을 적극적으로 혹은 소극적으로 감염시키려고 노력을 하지만 나는 그러한 존재들에게 면역력이 있는 인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언제나 감염에 취약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은 나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나에 대한 기도라고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지옥이라는 공간으로 이끄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외친다. 신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의심한다. 신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의심도 확신이라고 나에게 대화를 통해서 알려준 오스트리아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의 주장에 반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비참하기도 하다.
4. 가상의 여성은 좋아하지만 현실의 여성은 선호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밝히자면 이것은 포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 극구 노력을 할 힘 조차 없는 인간들이 흔히 하는 표현인데 상대방의 가치를 깎아서 내림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경우가 해당한다. 본인 또한 그렇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자! 현실에 대한 각고의 노력 따위를 하지 않고서 나는 여성들을 홀리려고 하거나 망상에 잠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한 인간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며 나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그녀들은 언제나 무지하다고 나는 매도를 한다. 근데 실제로 그러한 여성들은 무지함이 터무니없이 투명하게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정녕 수치스러워 해야만 하는 인간이 더욱 더 당당하게 다니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부끄럽지 않아도 될 인간이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경우, 이러한 현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어리석음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무지함으로부터?
5.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는 내 삶과 무관하다.
타인의 죽음도 마찬가지- 나는 뭐 유별나게 특별한 인간으로 여기는 인간이 있을까? 동일선상에서 우리는 밧줄에 묶여 있는 나무 기둥에 등을 대고 있는 인간일 뿐이다. 단지 내 눈 앞의 인간이 먼저 죽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