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한국이라는 국가 내 대전이라는 도시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그 때 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지탱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침몰이 거칠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부모라는 인간들은 내가 7살이 되었을 때, 대전에서 직장을 완전히 잃었다고 했으나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당시 나는 시골로 가족의 손에 이끌려서 도피를 할 수 있었고 어느 이름 모를 시골이었으며 백발의 키가 큰 노인이 거주하고 있는 초가집이 곧 내 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현실이었다.
문풍지가 얇은 종이로 이루어져 있는 방 한 칸의 시골의 집에서 나와 내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숨을 고르면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더욱 더 미치광이가 된 것 같았고 조금씩 발광을 일으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다른 실내의 공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가 떨어지면 서로 싸우느라 분주했고 나와 내 동생은 언제나 떨었으며 주변에서 호기심에 달아서 튀어나오는 노파 또는 비교적 젊은 중년 부부는 아버지의 입장을 두둔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아버지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시골이었다. 즉 백발의 노인은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도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고 해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도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았다.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고 더군다나 이성의 경우 더욱 더 경계심을 날카롭게 세우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여전히 우둔했으며 어머니를 못살게 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기려고 하는 대신에 무시로 일관했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방법이었다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운명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빚을 내서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었다. 원하는 대학 또한 합격을 했으나 가난했으며 빚을 내서 기술 따위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빚을 내서 기숙사 생활을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나하고 같은 공간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운명을 지닌 친구는 나하고는 동일선상에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인간이었으며 나는 그러한 인간을 바라보고 열등감 따위의 저열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일말의 감정이 스스로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한 달 가량 대학에서 무가치하고 쓸모도 없는 것들을 배운다고 인지를 할 수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휴대폰을 통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었고 시골에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우다가 실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든 짐을 기숙사에 내려놓고 신체만 기차에 실은 뒤 대전을 거쳐서 대전과 그리 멀지 않은 시골로 향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쉽사리 목격담을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듯한 표정이나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비교적 늦게 나는 그들에게 기대감을 접었고 일련의 사건의 목격자라고 자처하는 인간들도 그제서야 만족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말하길, 너의 어머니는 돈 한 푼 쥐고 있지 않은 상태로 너의 아버지에게 쫓겼으며 신발도 신지도 못 한 상태로 맨발로 땅을 거닐며 울고불고 하다가 어느 선량한 인간에 의해서 차량을 탑승한 뒤 저 멀리 도망을 갔다고 나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일련의 사건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사실이라고 덥석 믿고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리고 충동을 지울 수 없었다.
더 이상 기숙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버지와 동생을 두고 나는 이 시골에서 무언가라도 시도를 하려고 했다. 영장이 내가 목숨을 연명하는 집에 도달하기 전에 나는 군대로 향하려고 했다. 솔직히 살고 싶지 않았고 죽음이 어울리는 장소는 군대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곳에서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실종상태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나의 남동생은 무덤덤하게 보였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의 몸짓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입대 당일, 태풍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계절은 여름이었고 8월에 어울리지 않는 추위가 찾아왔다. 어머니의 배웅은 고사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어디선가 술을 퍼먹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콱 죽어버리길 바라면서 동생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고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셋방에서 신체를 꺼내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에 옷가지가 젖었지만 나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간이 이렇게 태풍이 몰아치고 인간 자체가 걷기도 힘든 상황에 자전거를 타고 꽤 이른 시각에 나한테 향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빗줄기에 가려진 안면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으니 예수처럼 선한 동성 친구였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권했고 나는 눈물을 흘렸지만 거센 빗줄기에 나의 눈물이 씻겨나갔고 그는 나의 눈물을 결코 볼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가 했을만한 역할을 그 친구가 해준 셈이었다.
만취한 아버지가 기차에 탑승하기 직전에 어떻게 알고 역에서 마주를 했다. 내 친구도 옷가지가 축축하게 젖은 생쥐꼴처럼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도 않고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고 아버지는 혀가 꼬인 상태로 인사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이런 인간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에 나는 얼른 군대에 가서 죽으리라 생각을 했다.
한적한 어느 시골 역, 태풍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고 나는 기차에 신체를 던졌으며 선로에 던질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나는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아무런 생각도 저항도 없는 인간이었고 그저 어머니가 어디에서 생존만 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빗물에 생쥐꼴이 된 두 인간은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굳이 창 밖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차, 생쥐 한 마리는 제외하고 말이다.
태풍에 의해서 빌어먹을 정도로 늦게 북쪽으로 올라가는 기차는 나를 강원도 춘천이라는 곳에 출산하고 또 다른 인간을 임신하러 떠나고 있었다. 이제 막 탯줄을 끊은 나는 헤매고 있었다. 이 곳은 눈이 부신 상태의 세계일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이런 공간적 장소 또한 태풍의 영향권으로 주변에 공기 자체가 한산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정오 쯤 되었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지정된 군부대로 들어가야하나 싶었지만 지갑을 매만지고 있었고 그렇게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으며 어느 이름도 모를 중식당으로 입장을 했고 아무런 자리에 착석을 했으며 짜장면과 탕수육을 거침없이 시켰고 직원은 꽤 만족스러운 언행을 나타내고 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식당 실내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현재 나하고 운명을 달리하지 않는 것 같은 인간들이 하나 그리고 둘 보이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가족이라는 단위가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으나 비참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비교도 하지도 않았고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깐 나의 어머니가 생각나기는 했으나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을 때 쯤 음식이 눈 앞에 펼쳐졌고 나는 음식을 접하고 있었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순간 나는 군부대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무언가 전혀 쓸모도 없어 보이는 듯한 물품을 파는 인간들이 하나 그리고 둘 호객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었으며 인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는 인간들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안면이 없는 인간들의 향연에 나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차피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인간들을 애써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군부대 앞에서 우산을 접고 들어갈까 하다가 우산을 그냥 어느 구석에 냅다 던지고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왜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고 갔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객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부대에 입장을 했고 부대에 들어서자마자 나한테 반말을 시전하는 빨간색 모자를 쓴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있는 인간이 나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살던 세계가 완전하게 무너졌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반말을 시전했던 인간은 나에게 더욱 더 거칠게 반말을 시전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뒤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