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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May 13. 2024

농촌인구 이동과 농민공 문제

중국경제지리(20)

지령성 계획경제를 실시하던 개혁개방 이전 시기 1950~1970년대에 인구 이동은 주로 정부의 주관 기관조직을 통해 조절되었다.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전후 회복 및 정비를 추진하던 약 3년간의 신민주주의 단계는 물론 1958년 경까지는  지역 간 이동에 대한 통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어서 이 시기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내 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 공급  부족문제가 돌출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중국정부는 「호적등기조례(戸口登記条例)」를 제정 공포하고, 농민의 도시 진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도시민과 농민을 비농업호구인 도시호구와 농촌의 농업호구(农业戸口)로 구분하는 호적제도를 시행했다.

도시호구를 보유한 도시 시민은 소속된 도시내 직장단위에서 급여를 받고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 교육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농촌 거주 농민은 오직 일정 규모의 농지만을 배분받고 노동을 통한 농업 소득을 만들고 그것에 생활과 생존을 의존해야 했다. 초급 및 고급 합작사, 인민공사 등으로 집체화가 강화되어도 소속된 인민공사나 생산대에서 도시에서와 같은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는 없었다.

이 같이 이원화된 도농간 호적관리체제는 더욱 공고해 졌고, 농민이 도시호적을 취득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즉, 도시내 직장 단위에 취직하거나, 대학 입학이나 군복무 등을 통한 매우 제한된 통로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농촌 농민이 도시호구를 취득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단,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인구이동 통제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방을 견고히 하며 내륙과 변경 개발을 추진하는 데 일정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정치 환경의 격변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인구 이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0~1982년간의 전국 성(省) 간의 인구 이동은 약 3000만 명으로 연간 90여만 명이다. 이출한 성은 주로 동남부 또는 인구가 조밀한 성으로, 이출 인구 규모가 비교적 큰 성은 쓰촨(四川), 산동, 안후이(安徽), 허난(河南) 순이고, 이어서 상하이, 광동, 장쑤(江苏), 저장(浙江), 후난(湖南) 순이었다. 인구가 전입된 곳은 주로 서북부의 인구가 희소한 곳으로 헤이롱장(黑龙江), 네이멍구(内蒙古), 신장(新疆)이 가장 많았고, 이어서 칭하이(青海), 닝샤(宁夏), 간쑤(甘肃), 섬서(陕西), 베이징, 지린(吉林) 순이었다.

2018년 중국 동부 10개 성, 직할시 중 7개가 인구 순유입 지구이고, 남방 성(省)으로 유입된 인구도 168.5만 명에 달했다. 이 중 광동, 저장, 안후이 성으로의 인구 유입이 가장 많았고, 반면에 베이징과 산동의 유출 인구 규모가 가장 컸다. 2018년 광동성의 순유입 인구는 80만 명을 초과했고, 저장성은 50만 명, 안후이성도 30만 명에 근접했다. 반면에 베이징시는 순유출 인구가 22만 명으로 중국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또한 상주인구 감소 정도도 전국 1위였다. 베이징 다음으로 산동성과 헤이롱장성이 순유출 인구 규모가 가장 컸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중국 인구 분포가 주로 균형화를 향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즉, 이전에 인구가 희소한 지역의 인구 증가 속도가 빨랐고 조밀한 지역은 비교적 느려서, 전국적으로 각 지역의 인구밀도가 점차 균형을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사회생산력의 신속한 발전과 경제체제의 정비가 진행되면서 균형화 방향으로 진행되던 인구이동 추세가 다시 역전되었다.

첫째, 과거에 비해 이동 규모가 증대했다. 1987년 인구표본조사 자료에 따르면, 1982~1987년간 전국 성 내에서 시·현·진 간의 이동 인구가 연간 485만 명, 성 간의 이동 인구는 126만 명이었다. 2000년 5차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 내에서의 시·현 이동 인구는 460만 명, 성 간의 이동은 217만 명이었다. 2010년 제6차 인구조사 결과, 각 성 유동인구가 221만 명에 달했다.

둘째, 이동 방향이 역전되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주로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연해에서 내륙이나 변경으로 이동했으나, 개혁개방 이후에는 서북부에서 동남부로, 내륙과 변경에서 연해지구로 이동 방향이 역전되었다. 제5차 인구조사에서 나타나듯이 1985~1990년의 성 간 인구 이동에서 인구가 이입된 곳은 주로 베이징, 상하이, 텐진, 광동, 랴오닝(辽宁), 장쑤(江苏), 저장(浙江), 하이난(海南)과 산동이었다. 또한 닝샤, 신장, 칭하이 등에도 유입되었지만, 그 수는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 반면에 인구가 빠져나간 곳은 광시, 쓰촨, 헤이롱장, 간쑤, 지린, 구이저우, 후난, 네이멍구, 윈난, 섬서 등이다.

중국의 성 간 인구 이동 공간 모형이 역전된 근본적 원인은 지역 간 경제적 차이 때문이다. 1950~1960년대에 중국은 이미 공업화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농경시대의 특징이 농후하게 남아 있었고, 인구 재분포의 주요 추동력도 인간과 땅 혹은 인구와 식량 간의 균형에 있었다. 이로 인해 인구는 상대적으로 조밀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희소한 지역, 특히 광대한 변경 지역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국가의 생산 입지 및 국방정책상의 수요가 부가되어 연해지구에서 내륙변경지구로 이동이 이루어졌다. 반면에 개혁개방 이후에는 중국의 전체 사회경제 형세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생산력이 크게 발전해 식량문제가 초보적으로 해결되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인구와 식량 간의 균형은 더 이상 인구 분포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자본과 시장, 지역의 상대적 입지 조건 등으로 대체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구 이동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고, 특히 경제 발전과 투자 수준에 따른 영향이 컸다.

농민공

이동 방향에서 연해, 내륙과 변경의 관계는 전국적인 추세를 반영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이 처한 공간적인 거리, 역사적인 전통, 문화와 풍속 등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주요한 이출지와 이입지의 관계를 고려하면 중국 전국을 아래와 같이 5개의 인구 이동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화남-화중권: 성 간 인구 이입총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광동성을 핵심으로 하고, 광시, 하이난, 후난, 푸젠, 장시, 후베이 등을 포함한다. 이동 총량은 전국의 23%를 차지한다.

∙화동권: 상하이를 핵심으로 장쑤, 저장, 안후이를 포함한다.

∙화북권: 인구 이입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베이징을 핵심으로 텐진과 허베이성을 포함한다.

∙동북-산동권: 헤이롱장, 지린, 랴오닝, 산동을 포함한 지역이다. 이입과 이출 인구량이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다.

∙서남권: 인구가 대량으로 이출된 곳으로 쓰촨, 구이저우, 윈난을 포함한다.     

나머지 지역들은 다양한 원인으로 이출과 이입 방향이 비교적 분산되어 있다. 예를 들어 허난성(河南省)과 섬서성(陕西省)은 국토의 중앙에 있어서 그 이동 방향이 방사선형으로 나타난다.

인구유동과 이동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구별할 수 있다. 즉, ‘이입인구(遷入人口)’는 현지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한 유입민을 말하고, 6개월 미만 거주한 자를 통상적으로 유동인구로 분류한다.

따라서 광의로 해석하자면, 업무, 노동, 여행, 학습, 회의, 친지 방문 등의 원인으로 단기간에 집을 떠나 외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유동인구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50~1970년대에는 다양한 요인들의 제약으로 인구의 유동성이 매우 낮았다. 1965년 전국 1인당 여행은 1.3회, 이동 거리는 97㎞에 불과했다. 개혁개방 이후 인구 유동성은 대폭 증가해 1995년 연간 1인당 여행 횟수 9.7회에 거리 747㎞로, 30년 전인 1965년에 비해 6배 증가했다. 당시에 상하이와 베이징은 유동인구가 약 300여만 명으로 상주인구 대비 비율이 약 3:1에서 4:1에 달했다. 후베이성 우한은 유동인구 수가 150만 명으로 상주인구 대비 유동인구 비율이 2:1이고, 경제특구인 광동성 션전(深圳)은 대략 1:1이었다.

농민공

2010년 제6차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유동인구는 2억 6139만 명으로, 제5차 인구조사(2000년) 결과와 비교하면 1억 1700만 명 증가했고, 증가율이 81%를 넘었다. 이 같은 유동인구는 일반적으로 향촌에서 도시로 유동하는 농민공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농민공의 유동 방향은, 개혁개방 초기에는 주로 중서부 내륙지구 농촌에서 동부연해지구 도시로 유동했으나, 최근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농촌에서 가까운 대도시로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서부대개발’ 및 ‘중부굴기(中部崛起)’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중서부지구 발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서부 내륙지구 도시에도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0~1970년대에는 생산력 수준과 행정 체제의 제약으로 농민의 유동성이 극히 낮았다. 게다가 산업 부문의 전환이나 공간적인 전환 규모가 매우 미약했다. 1980년대 초에 실시된 농촌의 가정연산승포책임제(家庭聯産承包责任制)는 경영 체제상의 큰 변혁을 수반해 수억의 농민들이 생산 적극성을 발휘케 했다. 1988년 이전에는 향진기업이 농촌의 잉여노동력을 흡수하는 ‘저수지’ 역할을 했다. 종업원 수는 1978년에 비해 2.4배, 연 672만 명이 증가했다. 이는 ‘토지는 떠나되 농촌은 떠나지 않는(離土不離鄕)’ 상황으로 요약될 수 있다.

농민공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는 향진기업이 고용하는 종업원 수가 감소함에 따라 대량의 농촌 잉여노동력이 대·중 도시로 유동하는 ‘민공조(民工潮)’ 현상이 시작되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다른 성으로 나갔다. 이후 농민공들이 계속 증가해 그 총수가 1980년대 초의 200여만 명에서 1989년 2000여만 명, 1994년 6000만 명에서 2017년에는 농민공 총수가 2억 8652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1만 명 증가했다.(증가율 1.7%, 전년 대비 0.2% 상승) 이중 타 성 지역으로 간 외출농민공(外出农民工)이 1억 7185만 명으로 전년 대비 251만 명 증가, 증가율 1.5%로 전년 대비 1.2% 상승했다. 본지(本地) 농민공은 1억 1467만 명으로 전년 대비 230만 명 증가, 증가율 2.0%로 여전히 타성으로 간 외출농민공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 외출농민공 중 도시 진입 농민공은 1억 371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5만 명 증가했다.(증가율 0.9%)  


이 같은 인구 이동과 유동은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의를 가진다.

첫째,도시화를 촉진한다. 2004년 말 호적기준으로 중국 도시 지역에서 비농업 인구가 500만 명 이상인 도시는 상하이, 베이징, 우한, 광저우, 텐진 등 모두 5개였다. 특히 상하이는 (비농업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고, 광저우는 600만 명에 근접했다. 한편, 비농업 인구가 300만~500만 명인 도시는 모두 7개였으며, 200만~300 만 명인 도시는 모두 8개였다. 결국 중국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 중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인구가 200만 명 이상인 도시는 총 20개였다. 아울러 2004년 말까지 비농업 인구가 100만~200만 명인 도시는 총 30개였다.

둘째, 급속하게 증가하는 연해 지역의 노동력 수요를 만족시켜 준다. 전형적인 예로 경제특구인 광동성 션전과 주하이(珠海)는 인구의 90%가 외지에서 들어왔다. 외래 노동력은 특히 건설, 방직,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내륙의 잉여노동력과 일자리 부족 문제 해결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다. 외지로 나간 농민공들이 벌어들인 노동 수입이 농민공들의 출신 지역으로 유입되고, 또한 정보와 생산·유통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투자를 끌어들이는 등 연해 지역의 경제 발전을 내륙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넷째, 인구의 자질을 개선하는 데 유리하다. 농민들이 이동 과정 중에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어려움을 경험·각성하면서 개방형의 인간으로 바뀌게 된다.     

농민공

반면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존재한다.

첫째, 인구 이출이 과다한 지구에서 일련의 사회경제적 문제가 돌출된다. 인구의 이동과 유동은 정상적인 현상이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부 이출지에서는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토지와 기초시설이 방치·유휴화되고, 생산 부문이 침체·파괴되기도 한다. 일부 산지지구는 주민 거의 전부가 이출해 무인지구가 되었거나, 소수의 노약자·병자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인구가 들어온 일부 지방은 취업, 토지·주택, 교통 문제로 인한 압력이 증가하고 계획생육과 사회치안 분야에서 문제가 돌출되기도 한다.

둘째, 성별 구성의 지역 차이를 확대시켜 심각한 사회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추세는 여성들이 떠난 결과이다. 빈곤 지역과 부유한 지역, 산지지구와 평원지구 간 지역 간 성비가 확대되고 있다.

셋째, 고급 인재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각 지역 인구의 문화적 수준 차이가 더욱 확대된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래 문화·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전입자의 교육 수준도 더 높고, 원래 교육 수준이 낮았던 지역일수록 전입자의 교육 수준도 낮다. 그 결과, 지역 간 교육 수준 차이는 더욱 확대되었고, 낙후 지역에는 학교와 병원 등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도 출현했다.


#중국도농간인구이동 #농민공


내용 출처: 박인성외, 2021. '중국경제지리론', 한울. 168-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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