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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매장(软埋)'과 토지개혁

소설 ‘연매장(软埋)’-1: 토지개혁 관련 기억

by 탐구와 발언

'연매장(软埋)', 사람이 죽은 후에 시체를 관에 넣지 않고 직접 진흙에 묻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한을 품고 죽을 때 모든 것과 결별하는 마음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를 포기하고, 영혼의 회귀조차 포기 또는 거부하고 연매장(软埋) 선택하는 것이다.


팡팡(方方)의 소설 ‘연매장(软埋)’은 네 가족을 묘사하고 있다. 그중 세 가족은 대지주 가족이고, 한 가족은 중공 고급간부 가족이다. 네 가족의 운명은 서로 얽혀 있다. 세 지주 가족은 모두 토지개혁 중에 군중비판대회에 끌려나가서 잔혹한 투쟁을 당하고 가산을 몰수 당하고, 집단 자살하는 등 거의 멸족 당한다. 현재 중국내에서 이 책은 출판 및 판매 금지된 상태다.

‘연매장(软埋)’은 중국내 '극좌파'에게 "지주계급의 복권을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고, 토지개혁정책을 부정했다"고 비판 받았다. 그러나 소설 ‘연매장(软埋)’의 스토리는 토지개혁중 수많은 지주들의 실제 경험을 추출하여 제련한 것이고,실제 토지개혁은 이 소설에 묘사된 것 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팡팡(方方)은 소설 후기에서, 이 소설의 소재는 그녀 친구의 어머니의 이야기라 밝혔다. 지주 가정 출신의 친구 모친은 토지개혁 당시에 홀몸으로 쓰촨(四川)에서 탈출했고, 이후 남의 집 보모 생활을 했다. 노년에 치매를 앓으면서도 종종 매우 명확하게 “나는 연매장(软埋)이 싫다”고 외쳤다고 한다.

작가로서 팡팡은 수많은 과거 지주의 대저택과 장원을 찾아 다녔고, 동시에 수많은 당지의 촌민들을 방문, 대화했다. 소설 중에 서술한 쓰촨동부(川东)지역을 직접 찾아갔고, 상관자료를 찾아 열람도 했다.


소설 ‘연매장(软埋)’의 줄거리.

노부인 딩즈타오(丁子桃)가 치매에 걸린 후, 그녀의 아들 우칭린(吴青林)이 어머니 당즈타오가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과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일기에서 자신의 부모가 숨겨온 비밀 사연의 한 매듭을 발견한다. 그의 부친 우자밍(吴家名)은 원래 산시(山西)의 동(董)씨 성을 가진 대지주 가정의 도련님으로 상하이 의과대학에 재학중이었으나 1948년 상하이에서 고향에 오던 길에 전가족이 토지개혁중 비판대회에 끌려가서 학대 받고 살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 실성 상태로 산으로 들어가서 길을 잃고 기진맥진 상태에서 산속에서 사는 늙은 사냥꾼 우(吴)씨에게 구조되어 사냥꾼 우씨를 양아버지로 모시고 성도 이름도 숨기고, 사냥꾼의 성에 집(家)도 이름(名)도 없다는 뜻의 이름 우자밍(吴家名: 吴의 독음이 없을 无자의 독음과 같다)으로 살던 어느날, 부상당한 상태로 산속에 쓰러져있던 중공 간부 류진위안 정치위원을 구조 및 치료해 주고, 류정치위원의 권유에 따라 함께 산에서 내려온 후, (신분을 숨긴 채로) 인민해방군 군의관을 거쳐서 의사가 된다.

한편, 우칭린(吴青林)의 어머니 딩즈타오의 원명은 다이윈(胡黛云)이고, 1950년대 토지개혁 시기에, 친정 가족 모두가 투쟁대회에 끌려 나간 후 피살되고, 시댁인 루(陆)씨 가족은 비판대회 참가 통지를 받은 후 집단자살후 ‘연매장(软埋)’ 되는 걸 선택한다.


다이윈(딩즈타오)은 시아버지 루즈차오의 유언이자 지시로 전가족이 죽은 후에 구덩이에 흙을 덮어 주는 역할을 부여 받은 연유로 갓난 아기인 아들 딩쯔와 함께 후원의 지하 비밀통로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나룻배가 뒤집혀서 갓난 아들을 물결 속에서 잃고, 천신만고 끝에 의사 우자밍(吴家名)에 의해 구조되어 치료 받고 회복된다. 그러나, 그 이후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체 우자밍과 결혼하고 아들 칭린(青林)을 낳는다.

우칭린(吴青林)이 자기 부모 가족의 끔찍한 역사 진상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부모와 가족의 역사와 진상을 탐구 추적하고 거의 진상이 드러나려고 할 즈음에, 치매에 걸린 후 2년여간 파편적 기억과 환상에 시달려온 그의 어머니 딩즈타오(丁子桃: 후다이윈)가 죽는다. 아들에게 한마디 말도 못한 체..., 결국 그녀의 과거와 기억도 "연매장(软埋)"된 것이다.

'연매장', 한국어 번역판 표지

작가 팡팡(方方)

작가 팡팡

본명 왕팡(汪芳),1955년 장쑤(江苏) 난징(南京) 출생, 《우한 일기(武汉日记)》(2000)로 유명해졌고, 전 후베이성(湖北省) 작가협회 주석이다. 대표작으로 1987년 발표한 중편소설 《风景》이 신사실주의(新写实主义)를 연 작품으로 평가 받았고, 대표작으로 《부친 마음속의 조부(祖父在父亲心中)》, 《우니호 연보(乌泥湖年谱)》 등이 있다. 그녀는 역사와 기억이 연매장 당하는 것이 싫어서, 3년의 시간을 사용하여 소설 ‘연매장(软埋)’을 완성했다 했고, 2016년 8월 인민문학출판사가 출판했다. 이 소설 '연매장(软埋)'은 원래 그리 큰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극좌파에게 비판 받은 이후에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중공의 토지개혁 문제와 함께 사회의 핫이슈로 재조명 되었다.

토지개혁의 잔혹성

실제 토지개혁의 실상은 이 소설 '연매장(软埋)' 속 묘사보다 더 참혹했다. 소설 '피에 물든 토지(血红的土地)'를 쓴 작가 탄쏭(谭松)은 쓰촨 동부(川东)의 12개 현(县), 시(市)와 400여명의 토지개혁 경험자를, 방문했다. 그중엔 당시의 토지개혁 공작대 대원과 민병, 지주 자녀, 당시 정황을 기억하고 있는 자, 심지어 참혹한 폭력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지주도 포함되었다. 소설 '피에 물든 토지'에 기록된 토지개혁 상황은 ‘연매장(软埋)’의 묘사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어느 한사람을 계급의 적이라고 선포한 후에는, 그(그녀)에 대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야수의 본성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다. "혁명"이라는 명분 하에 행해진 사람들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주와 그 가족에게 숨겨놓은 재산을 고백하라 강요할 때 그들은 소름끼치는 각종 고문을 가했다. 양철통 안에 붉게 타는 석탄을 넣고 등에 지게하고(背火背篼), 붉게 달군 강관을 강제로 손으로 쥐게 하고(抱火柱头), 머리를 끈으로 묶어서 매달고(吊木脑壳), 여자의 바지를 벗기고 불로 하체를 태우고(烧飞机洞), 머리 위에 점토로 원을 두르고 동유(桐油)를 붓고 (등)불을 붙였다.(点天灯) 등등, 글로 옮기기조차 어렵다.


왜 그토록 잔혹하게 했을까?

중국의 지주중에는 아껴 먹고 절약 생활하고 경영에 능한 농민들도 많았다. 또는 문교공상 인사였고, 토지를 근본으로 하는 전통관념 사상을 갖고 있었고, 외부에서 번 돈으로 고향 땅을 구입한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은 자경농(自耕农)이었고, 또한 장공(长工)과 단공(短工)을 고용하거나 토지를 임대했다. 지주와 소작농(佃农)의 관계는 자유임대 혹은 계약관계였다.(강제 인신 예속은 없었다.)

오늘 중국에 이 같은 자본고용관계와 착취자가 있다면 그는 과연 누구가 될까?

중공은 지주와 농민이 착취와 핍박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중공이 혁명을 하고 강산을 통치하는 합법성의 근거이다. 그러나 오늘 중국에 그 같은 관계가 존재한다면 그 가해 주체는 (지주가 아니고) 개혁개방 이전 시기에 전체 인민을 국가노예 처지로 만들고 통치한 압제체제와 정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는 사유제(私有制) 소멸을 목적으로 한다. 경작지 분배와 빈부 균형은 역대 농민 조반(造反)과 혁명의 구호였다. 따라서 토지개혁은 자연스럽게 중공의 당강령에 들어갔고 혁명의 목표가 되었다. 국민당은 타이완에서 평화적 토지개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사회모순이 격화되는 걸 피했고, 또한 장래의 경제 도약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중공이 국가기구를 장악한 후에, 설사 타이완과 같이 유상매수 방식의 평화적 토지개혁은 아니더라도, 비폭력적이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식을 채용하여 지주의 토지를 박탈할 수도 있었다. 폭력적 토지개혁은 중국에서 국정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았다. 중공이 뒤늦게나마 이 같은 도리를 깨닳고 받아 들인 것이 '개혁개방'으로의 대전환이었다고 하겠다.


비판투쟁대회에 끌려나온 지주가족

토지개혁의 또 하나의 목적은, 사람을 죽여서 위엄을 세우고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중국 농촌의 모순은 사실 그렇게 격렬하지 않았다. 지주와 농민의 조상과 성이 같고 오랜 친척인 경우가 많았다. 매우 많은 지주들이 책을 읽었고, 유학 교육을 받았고, 인의예지신(仁义礼智信)을 존중했고, 마을 내에서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 중공이 토지개혁을 추진할 때 당면한 곤란은 농민들이 각성(?)이 안되었고, 혁명 적극성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토지개혁을 다룬 홍색 고전소설 ‘폭풍취우(暴风骤雨)’중에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보통 농민들은 타인의 재물을 나눠 갖는 행위는 토비의 행위이고, 도덕을 위반하는 것으로 여겼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반감을 갖고, 걱정하고, 회의하고 관망했다.

그러자, 중공은 촌의 무뢰배 불량배들을 앞세우고 지주와 부농을 그토록 잔인하게 다뤘다. 닭을 죽여서 원숭이에게 겁을 주는 방식으로 농민 군중을 발동했다. 그것이 상층으로 부터 전달된 정책이었다. 쓰촨 동부지구 토지개혁에서 600여명이 연명으로 대지주 리전위(李镇宇)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탄원했으나 지구 토지개혁대(土改队) 주임은 이렇게 말했다.

“해방후까지 아직도 이렇게 큰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해방 전에는 얼마나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냐, 죽여라!”

이처럼 지주와 부농의 목숨은 토개대 주임의 말 한마디로 결정됐다. 이는 토지개혁 과정에서 과도하게 발생한 살인은 기층 군중의 격노가 과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된 살인지령 때문인 경우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마오쩌뚱은 토지개혁 중에 “농민의 1/10”(약 5천만명)을 타도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토지개혁과정중 적어도 200만명 이상 죽였다.

토지개혁(土改)은 중공을 일으킨 가장 강한 동력이고, 큰 깃발이고, 강산을 통치하고 집권하고 있는 중공정권의 혁명 합법성의 근거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토지개혁 과정에서 진행된 어두운 부분은 중공이 통제하는 새장 안의 중국현대사중 가장 민감한 금지구역이다. 따라서 토지개혁의 진면목을 들추고 돌출시키는 것은, 극좌에게는 중공 집정의 합법성에 대한 도전이고, 중공의 조상 묘를 파헤치고, 속옷을 벗기는 것과 같은 행동으로 간주되는 듯 하다.



과거는 잊고 앞을 보고 가자...?

한편, 작가 팡팡은, 스스로 진술하기를, 자신은 토지개혁에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소설 '연매장(软埋)'에서는 중공의 토지정책을 옹호하는 해석도 있다. "굽은 것은 필히 바르게 교정해야 한다. 기층 군중의 격정은 매우 깊고 강해서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또한, 소설 중의 토지개혁 피해자 후대 후손들이 모두 이제 과거는 잊고 앞을 보고 가겠다고 결정한다. 좋은 말이긴 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와 기록은 올바르게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软埋(연매장)” 중국어판 표지


#연매장 #软埋 #토지개혁 #중국현대소설


https://youtu.be/JcuCFpgr_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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