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자유' 보장없이 '진보'를 논할 수 있는가?
'자유주의'는, 신분제 중세 봉건사회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주장과 함께 '진보'의 상징이었다. 즉, '자유'는 개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전제이자 기초였다. 그런데, 그런 '자유'가 대한만국에서는, 종종 '진보'의 장애물, 심지어 진보의 적으로 까지 간주되기도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우선, 그 '자유'가,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를 물어야 한다.
근대적 개념의 '자유'는 개인 중소 상공업자, 신흥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주도했다. 즉, 중상주의 봉건 공동체 사회의 국왕과 영주와 지주로부터의 '자유'였다. 그러나 그 결과로 구축, 형성된 자본주의체제 내에 다시 두개의 계급이 대립축으로 출현했다. 그 하나는 시장을 지배하며 사회경제적 강자가 된 자본가(기업주) 계급이고, 또 하나는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 농민 류로 구성된 사회경제적 약자 계급이다.
이같은 변화과정의 초기 국면에서, 신흥 중소 상공인 부르주아 시민계급은 국왕과 영주/지주, 대상공인 위주의 중상주의 틀안의 규제 철폐, 즉,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방임)'을 쟁취해냈다. 이는 획기적이고 명실상부한 '진보'였다.
그러나, 시민혁명 성공후 자본주의체제가 형성되자, 이 '자유'의 주된 역할이 (시장 강자인) 기업(대기업, 재벌)과 자본가의 기득권과 이익을 보장하고 옹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종종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데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회주의' 사상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마르크스, 엥겔스와 같은 지식인 이론가와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류의 선동가, 혁명가가 등장하였다. 이들 혁명가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내걸고 선동하며 추진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현실 사회주의체제 국가들이 등장했다.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평등' 개념은 고래의 농민봉기와 민란 때마다 '경자유전(耕者有其田)'과 '부채탕감'과 함께 선동 구호로 채택되던 단골 메뉴였다. 그것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으로 포장된 후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 이론은 사유제와 개인주의, 그리고 시장에서의 자유방임을 적대시하고 국공유제와 계획과 정부 주도와 개입을 주요 기조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설은 추상적이고 공상적이었다. (마르크스가 다른 사회주의 사상가의 이론을 비판한 그 용어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인민 독재 통치"라는 공상 틀 속의 '평등'과 토지 분배 구호는 당시의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과 바램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찌른 것이었다. 그 결과, 소련, 동유럽, 중국, 쿠바, 베트남, 북조선 등지에서, 공산당 세력이 선동과 혁명, 정권 장악에 성공하면서 공산당이 통치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출범했다.
그런데 이 '사회주의' 국가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주요 문제들이 갈수록 적나라하게 돌출되었다. 그 핵심 원인은 소위 '평등'만 내세우고 강조하면서 '민주'와 '자유'는 경시 또는 무시한 것이다.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은, 관념적이고 공상적인 전제와 기대를 갖고 마르크스 레닌의 이론 교과서 내용대로 사회경제적 실험을 진행했으나,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처절하게 실패했다. 이 점에 대해서 책임지고 반성할 자들은 진지하게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크고 심한 고통 속에 죽어 갔는가? 이 지적에 대해 마르크스-레닌에게도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책임이 있다.
민주와 개인 자유가 보장( 담보)되지 못한다면, 그런 상태에서 무슨 말을, 또 무엇을 더 할 수 있다는 건가? '사회주의'뿐 아니라 그 무엇이건 개뿔이고 공염불이 될 것이다.
한반도 남반부, 즉 남한에서는 분단상태 하의 정권교체 및 권력 이동 과정에서 군부독재체제에 저항하던 민주화 세력이 진보 진영의 주류였고, 이들에게 '반공' 또는 '반북한'의 기초 이론인 '자유주의'가 보수와 수구 진영의 가치로 인식된 영향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이로 인한 영향으로 '반공(反共)이 '자유'와 결합하면서, 자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진보' 개념과 상호 관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자유냐?" 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사회와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고 확대되는 '자유'야 말로 '인권'과 '진보'의 전제이고 기초이고 지향 방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평등'은 자유와 기회의 평등이면 충분하다. 결과의 평등은 필요하지 않을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분별과 구분없이 뭉뚱그려진 "평등" 구호를 외치며 선동하는 행위는 (진보는 고사하고) 퇴보, 퇴행 행태이다.
현 단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의 평등과 '진보적 자유주의'(또는 '복지 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발을 딛고 '복지 자유주의'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