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의 기초도 사유제 보장과 시장이다.
최근에 알게된 어느 탈북자분께 들은 말이다.
"남한에 와서 살아보니, 여기가 바로 사회주의더라", ...!
남한, 즉, 대한민국의 사회보장과 복지가 매우 잘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살아본 북조선은 비교할 깜냥조차 안될 정도로......
우리는 각자 입장과 관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 좌, 우, 보수니 진보니 하며 비판도 토론도 하며 살고 있지만, 그건 우리 내부 문제일 뿐이다. 북에서 살다온 탈북민의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사회주의) 수준이 조선노동당이 떠벌이며 선전하는 그 "사회주의" 목표(이밥, 고기국)를 이미 한참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내가 국토연구원에 재직중이던 1993년에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지리연구소에 연수 파견 근무했던 기간(1993. 1~10. 9개월간) 중에 들은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곳 중국과학원 지리연구소 연구원중에 북경대 지리학과 출신으로 캐나다에 1년간 교환연구원으로 다녀온 분이 한 말이다.
"캐나다에서 살때, '이곳이 바로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네' 라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에 나는 도시 및 지역계획 전공 연구자로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국가인 중국의 국토, 지역, 도시계획 체제를 이해하고 파악하고자 베이징에 갔던 입장이라, 그의 그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그후에도 계속 거듭 깨닳고 확인하게 된 것은, 소위 '사회주의'라 할 때 그 '사회'가 (그것을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이나 독재자가 아닌) 인민을 위한 '사회'라면, 적어도 스탈린 통치 하의 구소련이나 개혁개방 이전 마오쩌뚱 통치 하의 중국, 세습왕조국가 북한과 같은 그 따위 체제는 ('사회주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따위 것들은 오히려 '사회주의'와 상반되는 것이었다. 이 점이 내가 통털어서 15년 넘게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에서 살면서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거듭 확인하고 깨닳은 바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자본주의 시장경제 경험과 기초조차 없이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간판만 내세우고 인민 군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면서 꾸려온 현실의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은 곳간을 채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거덜이 났다. 반면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 체제와 사회복지 시행능력을 상승 작용 속에 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사회주의'도 개인의 이익추구 동기와 시장경제 기제(机制)의 틀속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걸 거대한 역사 실험을 통해서 검증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겪고난 판에서 뭘 더 비교하며 할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까지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아직까지도, 구소련이나 개혁개방 이전 중국, 심지어 북조선 류 자칭 "사회주의" 국가들과 소위 '사회주의'를, 그들 간에 마치 무슨 연관 관계라도 있다는 듯이 전제하면서 횡설수설하는 말이나 글을 듣거나 보게 되면 매우 답답하다. 못들은 척, 못 본척하기가 매우 힘들 정도다.
아무튼, 다시 반복, 강조한다.
'사회주의'를 말하려면, 누구의 누구를 위한 '사회'인가를 분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하자.
'사회주의'실현을 위한 기초도 개인 사유재산제 보장과 시장이다. 이 틀안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한 필요한 최소한도 범위에서의 정부 개입, 그것 만이 '사회주의'로 가는 실천가능한 점진적 과정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무산자 노동자 계급의 혁명" 류 이야기는 이미 철 지나고 녹슬은 개뿔이라 생각한다.
(2026. 1.14. 07:03, 수정 보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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