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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Nov 12. 2023

근대 서양 경제지리학의 발전

중국경제지리(2)

‘중국 경제지리’는 중국을 지역 범위로 하고 인문지리에 속하는 ‘경제지리학’을 계통 범위로 한다. 그런데 ‘경제지리학’은 경제 현상의 공간적 패턴들을 만들어내는 주요 구성 요소들과 구조, 그리고 사회적 과정을 주요 고찰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공업지리, 농업지리, 상업지리, 교통지리 등을 포괄하는 학문 분야다. 따라서 ‘중국 경제지리’는 지역경제학과 지역개발학의 관점에서 중국 전국과 각 성(省), 직할시, 자치구 및 하위 단위 지역 및 도시의 경제와 발전에 관련된 현상과 문제들을 연구 범위로 한다.



서양에서 경제지리학은 상업지리학으로부터 발전했으며, 이들은 모두 산업혁명 이후 형성·발전된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그 기본 토양으로 하고 있다. 상업지리학은 1880~1900년 기간에 유럽에서 발전했다. 당시 유럽제국들은 자국의 무역과 식민지를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경쟁하는 과정 중에 세계 각 지역의 인구와 자원 분포를 포함한 지역 정보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 시기 상업지리학의 주요 관심사는 세계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물과 상업 및 교역 현황과 함께 각 지역의 자연지리적 요인들이 해당 지역의 생산, 유통,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기술하는 것이었다.


‘경제지리학’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82년 독일의 괴츠(S. Götz)가 발표한 「경제지리학의 과제(The Task of Economic Geography)」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경제지리학의 성격과 구조에 관해 논했다. 이후 경제지리학은 점차 자신의 과학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이전의 단순한 자료 수집 위주의 상업지리학이나 재정통계학과 구별되게 되었다. 


서양의 이론과 사조들

이하에서는 경제지리학의 발전 과정에 비교적 큰 영향을 준 서양의 이론과 사조들을 요약했다.     


환경결정론     

‘환경결정론’의 기본 관점은 인류사회 발전의 결정적 요소는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각 지역의 생산력 발전 수준과 생산 유형의 차이와 각 지역의 경제지리 형세 등은 자연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학설은 18세기에 성행했으며 일단의 철학자와 역사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사회지리학파와 역사지리학파라 불리는 학파도 생겼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도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이라는 저서에서 지역의 기후 차이가 각 민족의 심리와 기질, 더 나아가 정치제도와 경제 발전 수준에까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논한 바 있다. 가령 열대기후는 인간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케 해 거주하는 주민의 심성을 유약하게 만들어 노예로 전락하게 하는 반면에, 온대기후는 인간의 정력과 의지를 왕성하게 북돋아 독립심 강하고 자유로운 민족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자연의 법칙을 사회적 법칙으로 대체해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그러나 ‘환경결정론’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진보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당시에는 사회현상과 인류의 역사는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계몽운동 사상가들은 지리적 유물론이라 할 수 있는 ‘지리환경결정론’을 이용해 종교와 미신에 반대하고 군주 전제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던 것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견해는 엘렌 셈플(Ellen Semple)이 1911년 발표한 「지리적 환경의 영향(Influences of Geographical Environment)」이라는 논문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 수 있다.     

인간은 자연환경의 산물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의·식·주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제공해 준다.   

 

환경가능론, 또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론     

이 학파의 기본 관점은 지리환경과 인류사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발전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폴 비달 드 라 블라슈(Paul Vidal de la Blache, 1845~1918)는 ‘환경결정론’을 비판하면서 ‘환경가능론’을 주장했다. 그의 지리사상은 '프랑스의 지리학의 특성(La personnalité géographique de la France)'과 '인문지리학 원리(Principles of human geography)' 등의 저작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는 지리환경이 인류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인간들이 선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리학의 임무는 자연현상과 인문현상의 공간상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과 자연 관계의 원리를 근거로 해 귀납적 논리에 의해 지리학의 연구 범위를 3장 6절로 설정했다. 1장은 비생산적 건조물(건물과 도로), 제2장은 동식물의 이용(경작과 목축), 3장은 경제적 파괴(동식물의 남획 및 광물자원의 마구잡이 채굴)이다.


‘환경가능론’은 지리환경결정론을 일정 정도 부정하고 있다. 즉, 인류가 일방적으로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만은 아니며, 인류는 지리환경을 개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처럼 인류의 지리환경에 대한 개조 정도가 깊이 진행될수록 인류와 환경의 관계도 더욱 밀접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 부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단, ‘환경가능론’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규명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결여되어 있었으므로, 인문지리 현상을 해석할 때 어떤 때는 심리적 요소가 주도적 작용을 한다고 설명하다가도 돌연 자연적 요소를 결정적 역량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론’은 ‘환경가능론’으로 소개되어 알려져 왔다. ‘환경가능론’의 요점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생활 방식은 주어진 환경과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이룩해 놓은 문화와의 상호의존적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자연환경이란 인간의 경제활동의 범위나 활동 가능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는 있으나 인간은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며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결정론적 사조에서 탈피하려는 이 같은 추세는 경제지리학자들의 관심 대상과 연구 초점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입지론과 공간경제론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지역 간의 경제적 연계가 강화되고 상품 거래권의 범위가 점차 확대됨에 따라 원료 공급지와의 거리도 점차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공업과 농업 활동의 위치를 정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관심 사항이 되었고, 각종 입지 이론과 공간경제 이론이 출현했다.

이 중 중요한 것이 19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인 폰 튀넨(Johann Heinrich von Thünen, 1783~1850)이 발표한 농업입지론과 역시 독일의 경제학자인 베버(Alfred Weber, 1868~1958)의 공업입지론,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 1893~1969)의 중심지 이론, 뢰슈(August Lösch, 1906~1945)의 입지론 등이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과거 상업지리학적인 사조가 부분적으로 다시 복원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각 연구자가 방대한 지역에 관한 폭넓은 정보를 수집·분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으므로, 각 연구자마다 특정 지역의 특정한 경제활동, 즉 토지 이용, 농업지리, 교통지리, 공업지리 등의 분야로 세분되고 전문화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경제지리학 연구 풍토는 종전의 지역에 관한 정보와 자료 수집 위주의 상업지리학보다는 과학적 방법론과 분석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차별화되었다. 이러한 변화 경향은 셰퍼(Fred K. Shaefer)가 1953년 「지리학에서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 in Geography)」라는 논문에서 주장한 다음과 같은 말로 대표된다.      

개성 기술적 접근 방식은 예외주의이다. 지리학은 공간 분포에 대한 규칙성과 이를 지배하고 있는 법칙을 연구하는 법칙 추구적 접근 방식(nomothetic approach)을 따라야 한다.          


서양 경제지리학계의 최근 동향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서양 경제지리학계의 주요 동향은 계량적 방법론과 시스템 이론의 적용 범위 확대, 인공위성 관측 및 리모트 센싱(remote sensing) 기법의 발달과 적용 범위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차 세계대전 후 군사 계획이나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수집 가능한 한정된 자료를 토대로 추론적 방식을 통해 적용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필요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또한 수학적 방법을 응용하게 된 데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 및 보급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4년 미국의 펜실베니아대학교는 저명한 공간경제학자 월터 아이사드(Walter Isard)의 주도하에 지리학과의 명칭을 지역과학과로 바꾸고 지역경제의 연구 방향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했다. 계량지리학의 창시자는 노르웨이의 윌리엄 개리슨(William L. Garrison)이다. 그는 1955년 워싱턴대학교 지리학과에 최초로 수리통계 연구팀을 창설했다. 그의 제자인 시카고대학교의 브라이언 베리(Brian J. L. Berry)는 수학적 통계 방법을 이용해 중심지 기능의 등급 구분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같은 실증주의적 방법론은 경험적 사실들을 일반화하는 귀납적 방법 또는 사전에 설정한 가설을 경험적 관찰을 통해 검증하는 연역적 방법으로 구분된다. 1960년대 이후 서방 국가에서 실증주의적 연구가 성행하면서 계통지리학 분야는 세분되고 전문화되었으나, 지역의 종합적 고찰을 위한 지역지리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쇠퇴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실증주의 지리학이 퇴조하면서, 지역지리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부활했고, 이를 ‘신지역지리학’이라고도 부른다. 과거의 지역지리학이 지역을 하나의 분리된 실체로 인식하고 연구하고자 했다면, 신지역지리학은 계통지리학에서 축적한 성과들과 연결하면서, 지역을 다른 지역들과의 관계 또는 전체 사회를 배경으로 이해하고자 했다(최병두 외, 2008: 28). 한편, 1955년 사회주의 구소련 지리학회에서 발표된 경제지리학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경제지리학 연구의 주요 과제는 경제(생산)활동의 지리적 분포, 노동의 공간적 분업화와 경제지역의 형성에 관한 법칙을 연구하고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적 평가, 자원과 결합된 산업, 즉 농업, 공업, 교통 등에 관한 지리적 분포 및 인구지리학의 종합적 연구로 지역을 분석하는 것이다.(李文彦等. 1990)     


또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소련의 경제지리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된 다음과 같은 주장도 주목된다.     

과학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조건하에서 산업구조에도 이미 근본적 변화와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상업, 서비스업 등 3차산업의 작용과 지위가 나날이 강화되고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지리학이 연구 범위를 생산 영역에만 한정한다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반드시 비생산 영역의 공간형태에 대한 연구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지리학의 명칭도 ‘사회경제지리학’으로 변경하고 그 연구 대상도 사회 재생산을 위한 지역 구조와 사회생활의 지역 조직에까지 확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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