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대부분의 분야가 그러하듯이 경제지리학의 연원도 유구하다. 기원전 서한(西漢)의 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한 장(章)으로 구성된 '화치열전(貨置列傳)', 그 후의 「식화지(食貨志)」, 「지리지(地理志)」 등 역대 중국의 역사서들은 모두 중요한 경제지리 사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중공 정권 출범 후 개혁개방 이전 시기까지는 지리학에도 구소련의 이론과 방법이 도입되었고, 극좌 이념과 정치 간섭으로 인해 인문지리학은 ‘유심주의(唯心主義) 허위과학(僞科學)’이라며 전반적으로 부정당했고, 오직 경제지리학적 관점만 허용되었다. 이 같은 상황이 개혁개방 이후에야 비로소 정상화되어 경제지리학 분야에서도 실증주의, 인간주의, 그리고 구조주의적 관점과 방법론과 이들의 복합 및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국가 규모에 걸맞게 각 지역별로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산 입지, 인구, 자연자원, 생태환경 분야와 연결하면서, ‘중국 특색의 경제지리학’이 형성·발전 중이다.
개혁기 이전의 중국 경제지리학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후에는 중국 내 대부분의 업무 영역이 그랬듯이, 지리학도 구소련의 모델에 따라 발전하면서 구소련의 지리학적 이론과 방법이 도입되었다. 예를 들면 농업구획, 경제구획, 지역생산 종합체계 등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극좌 이념과 정치 간섭으로 인해 인문지리학을 ‘유심주의 허위과학(唯心主義僞科學)’으로 간주하고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경제지리학적 관점만 허용되면서, 중국의 인문지리학계는 경제지리학만이 ‘홀로 꽃핀(一花独放)’ 상황이 되었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한 원로 중국인 인문지리학자의 회고를 인용해 보자.
원로 인문지리학자의 회고
"인문지리학 비판이 고조되던 1955년에 나는 대학 지리학과 학생이었다. 당시 필수과목 중에 ‘인문지리학 비판’이란 과목이 있었다. 그 내용은 인문지리학의 어떤 학술 관점이나 사상과 유파 등을 비판하는 게 아니었다. 이 분과 학문 전체에 정치적인 구호의 큰 모자를 씌우고 부정했다. 예를 들면, ‘유심주의’, ‘자산계급의 부패하고 몰락한 사상’, ‘제국주의에 복무’, ‘허위과학’ 등등. 마치 정치 구호를 외치는 수준이었고, 전체 사회의 분위기가 그러한 정치 구호와 모자 씌우기 류 행태에 대해 질문이나 토론 같은 것은 감히 제기할 엄두도 못 내게 조성되어 있었다.
그 결과, 당시 젊은 학도들의 순결한 이성에 ‘인문지리학이란 악마와 동일한 것’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켜 주었다. …… 당시 담당 교수도 강의 자료 같은 건 없었고, 교과서가 없었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 그 후에 모스크바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 보니, 당시 소련 지리학계는 이미 변하고 있었다. 즉, 지리학의 생태화와 경제지리학의 사회화가 시작되고 있었고, 원래의 ‘인문지리학’이 ‘사회경제지리학’ 이라는 명칭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 하 중국 경제지리학의 발전 과정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 진행된 사회주의체제하의 중국 경제지리학의 발전 과정은 대략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1949년부터 1957년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건국 직후의 국가경제 건설과 인재 양성 수요에 부응해 많은 대학들이 경제지리 전공을 개설했으며, 중국과학원 지리연구소에도 경제지리연구실이 개설되었다.
(필자는 국토연구원 재직 시절인 1993년 1월부터 10월까지 9개월간 이곳 경제지리연구실에서 해외연수 파견 방문학자로 생활했다.)
이에 따라 경제지리 연구자 수 증가와, 학과의 발전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소련의 경제지리학 저술들이 중국 내에 소개되고, 소련 전문가들이 중국에 와서 직접적으로 소련 경제지리학의 이론과 방법을 소개했다.
2단계는 1958년부터 1965년까지이다. 이 기간 중에 중국의 경제지리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건설과 경제지리 이론 연구를 통해, 중국의 생산력 배치는 사회주의 생산력 배치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국가 간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과학원 지리연구소는 대규모의 지리조사 활동을 전개하면서 각 성(省)별로 연속적으로 '중화지리지(中華地理志)'를 출간했고, 전국의 경제지대와 농업지대를 특성별로 구분했다. 입지에 관한 연구도 일반 원칙에 대한 논술에서 구체적 생산 부문 배치에 대한 연구로 전환되었고, 논문과 저서의 발표 수량도 대폭 증가했다. 그러나 ‘대약진운동’과 그 후에 발생한 경제적 곤란들이 생산력 배치 방침의 착오로 지적되면서, 중국 경제지리학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3단계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로 ‘10년 동란’, 즉 ‘문화대혁명’ 기간이다. 문혁 기간 중에는 학술 활동이 금지되고 기구가 해산되고 도서 자료도 대량으로 유실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의 생산력 배치는 자연 법칙과 경제 규율을 경시했으며, 기업 입지와 관련된 기술적·경제적 요구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시행된 이른바 ‘산으로 올라가고, 분산 배치하고, 동굴에 들어간다(山, 散, 洞)’는 방침으로 인한 폐해는 당시는 물론 그 이후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국민경제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1973년 이후 대부분의 경제지리 종사자들이 원래의 위치로 복귀해 어려운 조건 하에서나마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1976년 문혁 종료와 1978년 중공 11기 3중전회 이후이다. 즉, 중국 정부가 혼동과 착오의 시기가 종식되었음을 선언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경제지리학도 다시 정상적 발전 궤도에 진입했다. 경제지리학 연구기구와 학술단체 그리고 전문 간행물 등이 급속히 증가했으며, 대학의 경제지리 교육과 연구 역량도 충실해졌다. 국가계획위원회도 국가경제 건설을 위한 기초 조사와 생산력 배치 연구를 중시해 ‘국토국(國土局)’을 신설했다.
학술단체 중 중국지리학회는 지리학 관련 연구 종사자들의 학술조직으로, 전신인 중화지학회(中華地學會, 1909년 창립)부터 계산하면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지리학회의 학술 활동은 자연지리학, 인문지리학, 경제지리학 분야를 포괄한다.
1980년 설립된 ‘전국 경제지리 과학 및 교육 연구회(全國經濟地理科學與敎育硏究會)’는 대학에서 경제지리를 담당하는 교원 위주로 연구와 교육에 관한 경험을 교환하기 위한 학술단체 조직이다.
경제지리학 관련 주요 단체와 간행물
1934년 난징에서 중국지리학회가 창립되면서 첫 발간된 '지리학보(地理學報)'는 현재 중국 지리학계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권위 있는 학술지이다. 이외에 1980년대 이후 새로이 창간된 경제지리학 관련 간행물로는 '지리연구(地理硏究)', '지리과학(地理科學)', '경제지리(經濟地理)', '세계지리집간(世界地理集刊)', '구역개발(區域開發)', '지리역보(地理譯報)' 등이 있다.
중국의 경제 건설이 진전되고 생산력 배치 방면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경제지리학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대되었다. 이러한 형세 속에서 '중국 경제지리(中國經濟地理)', '중국경제지리개론(中國經濟地理槪論)', '경제지리학도론(經濟地理學導論)', '중국공업지리(中國工業地理)', '중국교통운수지리학(中國交通運輸地理學)', '중국농업지리(中國農業地理)' 등 경제지리학 관련 저서들이 활발하게 출판되었다.
최근 들어 경제지리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수행한 주요 경제 건설 항목들을 보면, 상하이 및 장강(长江)삼각주지구, 텐진(天津) 빈해신구 및 환발해만지구 발전 연구, 우한(武汉)경제구, 총칭(重庆)경제구 등의 발전 전략과 산업 배치 연구, 산시성(山西省) 등 석탄 매장지의 자원형 도시 구조 전환 및 발전 전략 연구, 퇴경환림환초(退耕还林还草) 등 사막화 방지 전략 연구, 서부, 동북, 중부 지구 발전 전략 연구, 도시군(城市群) 발전 전략 연구, 구역협조발전(区域协调发展)과 도농통합발전(城乡统筹发展) 전략 연구, 농촌 및 도시 토지사용 제도 개혁 방안 연구 등 경제 발전과 공업화 및 도시화 진행 과정 중에 돌출된 주요 문제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서양 경제지리학의 관점과 방법론 중 중국 경제지리학에 비교적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공간조직 분석 기법과 행태주의적 접근 방식이다. 공간조직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경제지리학의 주요 연구주제로 부상했다. 이는 경제활동의 입지 분석, 경제 시스템의 공간적 구조와 행태를 분석하는 것으로 계량 기법에 의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중국 경제지리학의 과학적 정교성을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한 서구 사회과학계에서 1970년대 이후 강조되고 있는 행태주의적 접근 방식은 개개인의 의사 결정과 행태를 중시하는 연구방법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사회 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중앙집권적인 절차에 의해 해결 수단을 강구해 온 관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중국 경제지리학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최근에 중국의 경제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면서, 거대한 국가 내의 다양한 지역 간 특성과 연관된 문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즉, 경제지리, 도시지리와 함께 지역경제 및 지역개발 관련 분야에서도 실증주의, 인간주의, 그리고 구조주의적 관점과 방법론과 이들을 복합 및 융합한 관점으로 넓혀지고 있다. 또한 지리학의 분화 추세에 부응해 경제지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산 입지, 인구, 자연자원, 생태환경, 그리고 각 지역별로 국가 규모에 걸맞은 다양한 주제의 논문과 저서가 발표되고 있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서양의 이론과 방법론을 도입·흡수하면서 ‘중국 특색의 경제지리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모색·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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