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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Nov 29. 2023

중국의 강(1), 장강과 황하

중국경제지리(7)

강과 하천은 인간의 생존과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내륙수운을 통한 주요 교통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주요 내륙 항구와 부두마다 거점 도시가 형성될 때 지역별 경제와 문화를 연결하고 융합·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글에서는 이 같은 맥락에서 또한 앞 장의 수자원 관점과 연결해 중국의 주요 강과 하천을 장강, 황하, 화이하(淮河), 징항(京杭)운하, 첸탕강(钱塘江)과 주강, 그리고 중국 동북부 만주지구의 강으로 구분하고, 간류의 유로를 중심으로 주요 지류와 유역의 개황 및 경관 특징 등을 고찰·정리했다. 단, 중국 서부 변경지구 신장(新疆)과 시장(西藏: 티벹)지구의 강은 생략했다.           



중국의 주요 강

   

중국의 주요 강

  

고대 중국의 황하 중하류 유역에서 살던 중원(中原) 사람들은 하늘 아래 제일 큰 강으로 황하와 장강, 화이하(淮河), 지수(济水)를 꼽고 이를 ‘천하 4대 강(天下四渎)’이라 불렀다.

황하를 장강보다 앞에 놓은 이유는, 당시에 한족의 주요 활동 무대가 황하 유역이었고, 또한 과학적 탐사와 객관적 인식의 한계 때문에 지리적 시야가 한정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금(金), 원(元), 청(淸) 등 만주족과 몽골족 등 북방 유목 민족이 중원을 지배한 시기를 거치면서 중원을 중심으로 하던 영토가 사면팔방으로 확장되었고, 시간이 더 지나 지리적 시각도 확대된 오늘 날에 중국 국토 상의 ‘4대 강(大川)’을 꼽는다면 마땅히 장강, 황하, 흑룡강, 주강의 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고대 중국의 중원 사람들이 꼽던 ‘천하 4대 강’중 장강과 황하의 순서를 바꾸고, 화이하(淮河)와 지수(济水)를 흑룡강과 주강(珠江)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산대천(名山大川)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강의 순위를 단순히 규모나 수량적 기준에만 의거해서 정하는 것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각 하천의 각 유역 구간에서 형성·축적되어 온 생산 및 거주환경과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와 인문 요소 등도 함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북방과 남방을 구분하는 지리적 경계 역할을 하는 화이하(淮河)와 고대 이래 남북 방향의 주요 수운 통로 역할을 해온 징항(京杭)운하에 포함된 역사·문화적 의미를 물리적 규모나 수량적 기준에만 의거해서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한편, 제한된 지면상에서 960만㎢(남한 면적의 약 96배)에 달하는 광대한 중국 국토상의 강과 하천 수계에 대한 개황과 특징을 요약·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국경 하천인 압록강(鸭绿江)과 두만강(图们江), 그리고 고대 우리 한민족의 활동 무대였던 중국 동북부 만주(滿洲)지구의 쏭화강(松花江)과 랴오하(辽河) 등이 중국 서부지구의 신장이나 씨장지구의 큰 강보다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강과 황하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장강

장강

장강은 그 길이가 6,300㎞로 중국 내 1위, 세계 3위의 강이고, 유역 총면적은 180.85만㎢로, 중국 국토 면적의 약 1/5을 점유한다. 칭하이 칭장고원 탕구라(唐古拉)산맥의 설산(雪山)인 거라단동(各拉丹冬) 주봉 서남측의 해발 6548m의 장건디루(姜根迪如) 설산의 빙천(冰川)에서 발원하여, 중국 중부의 11개 성, 직할시, 자치구를 경유한다.


장강은 ‘장강’이란 총칭 외에 일부 구간은 각각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장강의 원류(源流)는 투어투어하(沱沱河)이고, 지류인 당취하(当曲河)와 합류한 후부터는 ‘통텐하’로 불리며, 탕구라 산맥과 바옌커라(巴颜喀拉) 산맥 사이의 광활하고 완만한 고원지대(해발 약 4500m)를 흐른다.


 칭하이성 위수시(玉树市)에서 해발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산맥을 횡단하고 산과 골을 가르면서 남진하는데, 이 구간부터 진샤강(金沙江)이라 부른다.


진샤강과 같이 란창강(澜沧江)과 누강(怒江)이 기세등등하게 남진하다가 윈난성 스구(石鼓)에 이르러서 유턴해 북쪽으로 향하면서 장강의 첫 번째 만(灣)이 출현한다. 이곳부터는 하곡(河谷)이 넓어지고 유속도 느려진다.


강변의 스구진(石鼓镇)에는 제갈량이 남방 정벌하던 때에 이곳에서 큰 팔각북을 치면서 전쟁을 독려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북 모양의 한백옥비(汉白玉碑)가 서 있다.


진샤강의 강물은 스구를 지난 후 유명한 후타오협(虎跳峡)으로 들어선다. 협곡 동쪽 연안은 해발 5596m의 위롱설산(玉龙雪山)이고 서안은 해발 5396m의 하바설산(哈巴雪山)이다.

양안(兩岸)은 칼로 자른 듯한 절벽이고 계곡 깊이가 2500~3000m에 달한다(미국의 콜로라도 대협곡보다 1000m 더 깊다).

상부는 해발 1800m이고, 하부는 해발 1630m, 길이 16㎞인 협곡의 낙차는 170여m다.

후탸오협이라는 이름은 협곡의 동서 양안 간 가장 좁은 곳의 폭이 30m에 불과해 호랑이가 뛰어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장강

진샤강이 위롱설산을 돌아서 남하하다가 지주산(鸡足山)을 만난 후 방향을 바꿔서 동류하고, 윈구이고원(云贵高原)의 총산준령(崇山峻岭) 속에서 굽어지고 우회하며 흘러서, 쓰촨성 이빈(宜宾)에서 유입하는 민강(岷江)과 합류한 이후부터 ‘장강’이라 부른다.

민강은 장강 상류의 지류 중 수량이 가장 많은 강으로, 연평균 수량이 황하의 2배 정도 된다.

따라서 고대 중국의 적지 않은 학자들은 민강을 장강의 발원지(正源)로 잘못 알고 있었다. 민강은 민산하구(岷山口)의 두장옌(都江堰)에서 시작된다.


두장옌(都江堰)

두장옌은 2200여 년 전 창건된 고도의 과학성을 갖춘 수리공정으로, 세계 수리공정사상 위대한 창조로 인정받았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이 공정을 지휘한 리빙(李冰) 부자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이왕묘(二王庙)가 쓰촨성 두장옌시(都江堰市)에 보존되어 있다.

                                             

장강은 쓰촨분지(四川盆地) 일단의 구간에서는 비교적 완만하게 흐르다가 (重庆)에 이르러서 자링강(嘉陵江)과 합류한 후에 유명한 ‘장강삼협(长江三峡)’지대에 진입한다. 장강삼협이란 칭시 펑지에(奉节)의 바이디청(白帝城)에서 동쪽으로 후베이성 이창(宜昌)시의 난진관(南津关)까지 구간에 있는 취탕협(瞿塘峡), 우협(巫峡), 시링협(西陵峡) 3개의 협곡 구간을 가리킨다.

이 구간은 총길이가 200여㎞이고, 가장 깊은 곳의 협곡 깊이가 1500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수리공정으로 유명한 장강삼협댐 공정이 진행되는 곳은 시링협 중단의 산터우핑(三斗坪)이다. 이외에도 거주댐(葛州坝) 수력발전소와 단장커우 수력발전소 등이 있다.

장강삼협의 첫 번째 협곡인 취탕협의 시작 지점인 바이디청은 삼국시대 유비가 임종 시에 제갈량에게 자식을 부탁했다는 곳이다.

이곳은 위는 절벽이고 아래는 암석으로 단절되어 있어 형세가 지극히 험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곳에서 그 아래 다이시진(黛溪镇)까지 8㎞ 구간 양안에 직립해 있는 석회암 산봉우리는 해발 1000~1500m에 달하고, 강폭이 좁은 곳은 100m에도 못 미친다.


우협은 우산(巫山) 따닝하(大宁河)에서 동쪽으로 바동관(巴东官) 나루터까지 45㎞ 구간으로, 유명한 우협 12봉이 ‘협곡중의 협곡’이라는 장엄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우협의 강폭은 500~600m로 취탕협보다 넓고, 산봉우리 높이는 1000~1300m로 (취탕협보다) 조금 낮다.

단, 양안의 중첩된 봉우리들과 험준한 절벽들이 기이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경으로 꼽히는 신녀봉(神女峰)은 초나라 상왕(楚襄王)과 신녀와의 밀회, 그리고 불로불사의 영약을 가진 서왕모(西王母)의 막내 딸이 속세에 내려왔다는 전설 등 후세의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시와 민요와 문장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우협을 지나 후베이 향시(香溪)에 이르면, 강폭이 넓어지고 시야가 트여서 ‘향계관곡(香溪宽谷)’이라 부른다.

이곳은 중국 문학사상 위대한 시인인 굴원(屈原)과 흉노족의 왕비가 되어 한족과 흉노의 화친과 평화에 기여한 한무제(漢武帝) 시대의 궁녀 왕샤오쥔(王曉君)의 고향이다.


삼협의 마지막 협곡이자 장강 최후의 협곡구간인 시링협은 바동관(巴东官) 나루터에서 이창의 난진관까지 66㎞ 구간이다.

장강 발원지에서 후베이성 이창시 구간까지가 상류이다. 상류는 물살이 급하고 여울이 많다.


이창의 난진관으로부터 3㎞ 거리에 장강의 첫째 댐인 거주댐이 있다.

이 댐은 발전, 내륙수운, 홍수 조절, 관개 등 장강의 수자원을 종합이용하기 위해 수위를 20m 올리고 물길을 100여㎞ 돌렸다.


거주댐을 지나서 장시성 후커우현(湖口县)까지의 구간이 장강 중류이다.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평원에 들어서면서 유속이 느려지고, 자유롭게 흐르고 유로의 굴곡이 심한 곡류(曲流)와 호수가 많다.

특히 ‘징강(荆江)’이라 불렸던 후베이의 지장(枝江)부터 징저우(荆州)지구를 정점으로, 후난의 청링지(城陵矶)까지의 유로 굴곡을 인간의 창자 굴곡에 비유해 ‘구곡회장(九曲回肠)’이라 표현했다.

이 구간에서는 강물의 흐름이 느리고 토사의 침적이 과다해, 수량이 불어나는 시기에는 제방 붕괴와 강물 범람이 자주 발생했다.


고대 초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인 징저우의 장링(江陵)에는 대량의 고적 문물이 있고, 장링의 남쪽에 후난성의 4대 수계인 샹강(湘江), 즈수(资水), 완강(沅江), 리수(澧水)가 합류해 형성한 거대한 호수 동팅호(洞庭湖)가 있다. 자주 안개에 덮혀 있는 동팅호의 옛 이름은 운몽택(雲夢澤)인데, 호수가에 역사 깊은 도시 예양(岳阳)이 있고, 이 도시 서쪽에 당대(唐代)에 축조된 명루(名楼) 악양루(嶽陽樓)가 서 있다.

우한 황학루

예양루는 우한의 황학루(黃鶴樓)와 난창(南昌)의 등왕각(滕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명루(名楼)’로 꼽힌다. 특히 동팅호와 악양루에 대해서는 “동팅은 천하제일의 물이고, 예양은 천하제일의 루(洞庭天下水, 岳阳天下楼)”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중국의 후난과 후베이 지역의 명칭이 바로 이 동팅호를 경계로 남부와 북부 지구를 구분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장시성(江西省) 저우장시(九江市) 부근의 일부 구간은, ‘저우강(九江)’ 또는 저우장시의 옛 이름 쉰양(浔阳)에서 유래한 ‘쉰양강(浔阳江)’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장시성 후커우(湖口) 이후 상하이에서 동중국해로 흘러드는 하구(河口)까지 구간이 장강 하류이다.

하류에서 장쑤성 전장(鎭江)에서 징항운하와 연결된 후, 상하이시 우송커우(吴淞口)에서 마지막 지류인 황푸강과 합류한 후에, 강과 바다가 연접한 장관을 연출하면서 동중국해로 흘러들어 간다.

장강 하류

장강 하류에 위치한 장쑤성(江苏省) 전장(镇江)과 양저우(扬州) 구간의 옛 이름 양쯔강(扬子江)이었다. 이는 양저우 남부에 전장까지 운항하던 선박의 기착부두 이름인 ‘양쯔진(揚子津)’에서 유래되었다.

청조(清朝) 말 아편전쟁 이후 장강 수로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강압적으로 개방된 후에, 외국 선박이 상하이 우송하구(吴淞口)에서 내륙 쪽으로 상행 운항하고 양쯔강을 지나면서, 서양인들이 장강을 ‘Yangtze River’라 불렀고, 이것이 장강의 영문 이름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장강의 영문 이름을 반식민지(半殖民地) 시절을 연상케 하는 ‘Yangtze River’ 대신 ‘長江’의 중국어 음역인 ‘Changjiang River’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장강 하류는 강폭이 넓고, 하구에는 강물에 의해 퇴적·형성된 삼각주 섬인 충밍도(崇明岛)가 있다.

이 섬은 상하이시 행정구역에 속하고, 중국 내 섬 중 면적이 타이완(台湾)과 하이난도(海南岛)에 이어 3위이다.     



장강수로     

장강 수로

고대로부터 장강의 간류와 지류는 중국 남방(南方)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남북 방향으로 연결하는 주요 수로였다.

풍수기(豐水期)에는 만 톤 급 기선이 장쑤성 난징(南京)까지 운항할 수 있고, 8000톤 급은 쓰촨성 루저우(泸州)까지도 가능하다.

간류의 통항로 길이는 2800여㎞에 달해 ‘황금수도(黄金水道)’라 불린다.     


장강 홍수     

장강 유역 홍수

중국 역사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206년부터 1960년 기간 중 중국 대륙에 1030여 차례 심각한 홍수 재해가 발생했다.

 

장강 간류에서만 광범위한 홍수 피해가 50여 회 발생했고, 장강 지류인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汉 지역의 한강(汉江)에서 30여회 발생했다.

평균 매 60~65년마다 한 번씩 재난성 홍수가 발생한 셈이다.


비교적 최근에 장강 유역에서 재난성 홍수 재해가 발생한 해는 1870년, 1896년, 1931년, 1949년, 1954년, 그리고 1997년이다. 이 중 1931년과 1954년의 홍수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1931년에는 5~6월 사이에 6차례 대홍수가 발생해 23곳의 방호 제방이 무너지고, 9만 650㎢의 토지가 수몰되었으며, 4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장강 홍수

장쑤성과 후베이성의 성도(省会)인 난징(南京)과 우한(武汉)을 포함해, 기타 도시 내의 인구 밀집지구가 홍수 피해로 물에 잠겼다. 우한에서는 홍수가 4개월 동안 계속되고 물이 빠지지 않았으며, 수몰지구 수심이 2m를 넘었고 심한 곳은 6m를 넘었다.


1954년과 1997년 여름에도 연속적인 계절풍 강우로 인해 매우 큰 홍수가 발생했다. 수위가 급격히 상승했고, 1931년 홍수 수위를 초과한 적도 있었다.      


장강삼각주     

장강과 첸탕강(钱塘江)이 바다로 진입하면서 충적된 장강삼각주는 장강 중하류 유역 평원의 일부분이고 면적은 약 5만㎢이며, 장쑤성 동남부, 상하이시, 저장성(浙江省) 동북부를 포함한다. 삼각주의 정점은 전장(镇江)시와 양저우(扬州)시 일대이고, 북쪽으로는 샤오양커우(小洋口)까지이며, 남쪽으로는 항저우만(杭州湾)과 접한다.


장강의 물이 운반하는 토사량은 연평균 4~9억 톤이다. 약 28%의 토사가 장강에 침적되고, 많을 경우에는 78%에까지 달하므로, 삼각주는 부단히 바다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장강삼각주지구는 아열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하며, 강수량이 풍부하고 크고 작은 하천과 수로가 종횡으로 흐르며 호수가 많아서 ‘수향택국(水鄉澤國)’이라 불렸다.


토지가 비옥하고 농수산품이 풍부해 수천 년의 동안 ‘어미지향(魚米之鄉)’으로 불렸고, 중국의 경제 중심지로 형성되어 왔다.

장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양식이 중국 전국 양식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점유하고, 특히 쌀은 70%를 점유하므로 ‘중국의 양식 창고’라 불린다.

장강대교, 우한

장강 하류 상하이-난징을 잇는 선(沪宁線) 양방에 수많은 도시가 분포하고 있다.

즉, 상하이, 난징(南京), 쑤저우(苏州), 창저우(常州), 우시(无锡), 전장(镇江), 양저우(扬州), 타이저우(泰州), 난통(南通), 항저우(杭州), 닝보(宁波), 샤오싱(绍兴), 자싱(嘉兴) 등이다.


‘장강 연안 중심도시 경제협의회(长江沿岸中心城市经济协调会)’에 참여하고 있는 29개 회원 도시를 상류에서 하류 순으로 거명하면 다음과 같다.

판지화(攀枝花), 이빈(宜宾), 루저우(泸州)(이상 四川省), 총칭(직할시), 이창(宜昌), 징저우(荆州), 스쇼우(石首), 예양(岳阳, 湖南省), 셴닝(咸宁), 우한, 어저우(鄂州), 황강(黄冈), 황스(黄石)(이상 湖北省), 저우장(江西省), 안칭(安庆), 츠저우(池州), 통링(铜陵), 허페이(合肥), 우후(芜湖), 마안산(马鞍山)(이상 安徽省), 난징, 전장, 양저우, 타이저우(泰州), 난통(이상 江苏省), 상하이(직할시), 닝보, 저우산(舟山)(이상 浙江省).          



황하     

황하 유로

강의 길이가 4675㎞로 중국 내 2위, 세계 5위인 큰 강이고, 발원지에서 하구까지의 낙차가 4830m이다. 총면적이 75.2만여 ㎢에 달하고, 유역은 석산지구(石山区) 29%, 황토 및 구릉지구 46%, 풍사지구(风沙区) 11%, 평원지구 14%로 구성되어 있다.

란저우 황하변의 모친하(母亲河) 동상

고대 황하문명의 발상지이자 한족의 주요 활동 무대였으므로, 중국인들은 황하를 ‘어머니 강’, 즉 ‘모친하(母親河)’라 부른다.

물과 강의 가치와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그것과 비견하고 겨룰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명칭을 정할 때 ‘어머니강(母親河)’보다 적합한 명칭을 찾기 힘들 것이다.


고고학적 탐사와 발굴에 의하면, 적어도 신석기시대부터 중국 황토고원상에 고대 인류가 정주하고 농업에 종사해 왔고, 문자 기록에 의하면, 은(殷), 상(商)에서 북송(北宋)까지 황하 유역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11개 왕조의 수도인 시안(西安), 9개 왕조의 수도인 뤄양(洛阳), 7개 왕조의 수도인 카이펑(开封)이 모두 황하 유역에서 다양한 과학, 문화, 예술 성과를 창조해 왔고, 현재도 1억여 명의 주민이 유역에 거주하고 있다.


황하 상류

황하의 상류는 발원지에서 네이멍구자치구(内蒙古自治区) 투어커투어현(托克托县) 허커우진(河口镇)까지 3472㎞구간이다.


상류 강변에는 간쑤성의 수도이자 역사 도시인 란저우시(兰州市)와 닝샤회족자치구(宁夏回族自治区)의 수도인 서하(西夏)의 고도 인촨시(银川市)가 있고, 네이멍구자치구 내 초원의 철강도시 바오터우(包头)가 있다.


중류는 허커우진부터 허난성 멍진(孟津)까지 1122㎞ 구간이다. 중류에서는 많은 지류들이 유입되는데, 그중 중요한 것은 딩하(定河), 옌하(延河), 펀하(汾河), 뤄하(洛河) 징하(泾河), 웨이하(渭河) 등이다.

이들 지류들은 황토고원을 통과해 오므로 강물 수량과 함께 토사 함유량도 대폭 증가한다.

황하 상류의 수질은 강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매우 청정하지만, 중류 구간부터 황토고원지구를 지나는 동안에 수토 유실이 심각한 지류로부터 대량의 황토 토사가 유입되어, 황하는 세계에서 토사 함유량이 가장 많은 강이 된다.


토사 함유량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지점은 허난성 산먼협(三门峡)으로, 연간 토사 운반량이 16억 톤이고, 평균 수중 토사 함유량이 37.7kg/㎥에 달한다.

황토색 황하

토사 함유량이 가장 많을 경우에는 375kg/㎥까지 증가한다. 이 정도면 거의 걸쭉한 진흙탕 같은 상태이다(참고로 장강의 평균 토사 함유량은 1kg/㎥도 안 된다).


중류 변에 있는 주요 도시는 통관(潼关), 싼먼샤(叁门峡),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였던 옌안(延安), 지류인 웨이하 남안에 있는 시안 등이다.


하류는 멍진부터 하구까지 870㎞ 구간이다. 멍진을 지나 광활하고 평탄한 화북평원에 들어서면서, 유속이 감소하고 토사가 침적되어 강바닥이 매년 약 10㎜씩 높아진다.

최근 수년간 매년 평균 토사 운반량이 약 16억 톤에 달하고, 그중 약 4억 톤이 강바닥에 침적되었다.

하류 구간에서는 토사 퇴적으로 인해 강바닥이 높아져서 유입되는 지류도 적고, 유역 면적도 매우 작다. 하류의 주요 도시로는 정저우(郑州), 카이펑, 지난(济南) 등이 있다.                                              

산동성 지난(济南), 황하 하류변(2024. 7.13, 정소진 촬영)

황하 하류에서는 매년 강바닥 상승으로 인해 강물 흐름의 방향과 유로가 변경되면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따라서, 고대부터 황하의 유로변경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방을 축조했지만, 다시 강바닥이 높아지면 제방도 높이다 보니 강의 바닥이 지면보다 높은 강이 되었다.

현재의 황하 강바닥은 일반적으로 제방 밖의 평지보다 평균 3~5m 높다. 만일 황하의 제방이 무너지면 북으로는 텐진이 수몰되고 남으로는 화이하와 장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602년부터 1938년까지 2540년간 황하의 제방이 무너진 회수가 1590회가 넘고, 그중 중대한 수로 변경이 26회 발생했다.

평균 3년에 두 번 제방이 무너졌고, 100년에 한번 꼴로 유로 변경으로 인한 막대한 홍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황해 입해구(入海口), 바닷물과 황토색 황해 물 색갈의 대조

황하가 바다로 흘러드는 지점(入海口)의 위치가 바뀐 역사 기록을 보면, 기원전 602년에는 텐진이었으나 그 후 현재의 산동성 동잉(기원후 11년, 1855년), 산동성과 허베이성 경계 지점(1048년), 화이하(1194년, 1494년, 1938년)로 바뀌었다.


1938년 항일전쟁 기간에는 국민당 군대의 후퇴 작전을 위해 화위엔커우(花园口) 황하 대제방을 파괴해 허베이, 안후이성, 장쑤성 3성의 44개 현 및 시의 주민 89만 명의 생명이 수몰되었다.


1945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황하에 대중형 수리, 수력발전 공정, 그리고 중상류 지역에 수토 보호 공정을 추진한 결과, 제방 붕괴와 같은 큰 재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황하의 퇴적 작용은 중국의 중원 대지와 화북대평원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황하는 한편으로는 황토고원을 침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매년 28㎢의 놀라운 속도로 충적평야를 조성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후 수십 년 이래, 이미 1000여㎢ 면적의 비옥한 토지를 충적했다.     


황하 단류     

황하와 장강의 유로

1970년대 이후 황하의 일부 구간에 강물이 고갈되는 단류(斷流)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1970년대에 6회, 1980년대에 7회, 1990년대에는 거의 매년 단류가 있었고, 단류 구간의 길이는 1970년대에 130㎞, 1980년대에 150㎞, 1990년대에 300㎞였고, 그중 1995년에는 800㎞에 달했다.


단류 기간을 보면 1970년대에 21일, 1980년대에 36일이었으나, 1997년에는 226일간 (황하 단류가) 발생했고, 330일간 황하 하구에서 한 방울의 물도 바다에 흘러들어 가지 못했다는 기록을 세웠다(蓝勇, 2003: 108). 이로 인해 황하 보호에 대한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황하 단류의 주요 원인은, 첫째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강물 증발량 증가와 황토고원지구의 산림 식피 파괴와 토지 사막화로 인해 건조해진 토지의 지하수로 유입되는 수량이 증가하면서 황하의 수량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는 경제가 낙후한 황하 중상류 지구의 수자원 절약형 관개 기술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하류 구간에서는 토사 퇴적으로 인해 강바닥이 주변 평지보다 높아져서 유입 수량과 유역 면적이 감소했다.

반면에 유역의 인구는 증가하고, 특히 최근 수십 년간 경제와 사회 발전에 따라서 농업용수 외에 공업 및 도시용수 수요가 부단히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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