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겨울 초엽에 들어서서 제법 쌀쌀해진 오늘 같은 날, 오랜만에 모교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반납하러 가는 길에 1호선과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인 회기역 앞에 있는 '강화네 집'에 들러서 아지메(할머니라 부르기 뭐해서)가 만들어서 종이컵에 넣어 준 야채 토스트와 따뜻한 오뎅 국물을 역시 종이컵에 따라 같이 마시며 맛있게 먹었다. 아직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나의 식욕을 고맙게 느끼면서...
오뎅국물은 써비스(공짜)이니 서교동 우리 집에서 회기역 거쳐서 서울시립대 후문으로 중앙도서관과 미래관 3층에 있는 경영경제도서관 들러서 대출한 책 반납하고 또 다른 책 대출하고 정문 쪽으로 나와서 청량리역에서 지하철 타고 시청역에서 2호선 갈아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쓴 비용은 토스트값 2500원이 전부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어르신카드 덕분이다.
어르신 카드
정확하게 만 65세가 된 해 생일날에 거주지 주민센터에 가면 소위 "지공거사"임을 증명해 주는 그 카드를 작년 생일날에 발급받았다.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그 카드가 내게 주는 혜택을 1회당 지하철 탑승요금과 한달에 지하철을 몇번 정도 탈까? 정도를 기준으로 단순하고 기계적으로 가늠, 추산했었다. 그런데 그 후 1년 이상 실제로 사용하고 난 후의 느낌은 그 이상으로 좋다.
따릉이
졸업생 회원으로 등록해 놓고 종종 모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대출도 해 온다. 그럴 때면 집을 나서서 부근에 있는 공용자전거 따릉이 스테이션에서 따릉이를 타고 홍대입구역 경의중앙선 출구 앞까지 간 후에 그곳 따릉이 스테이션에 자전거를 반납한 후에 전철을 타고 회기역까지 가서 시립대 후문으로 교정안으로 들어간다. 시립대 중앙도서관은 후문에서 훨씬 더 가깝다.
회기역에 내려서 후문까지 걸어 가는 과정도 좋다. 골목길의 카페, 치킨집, 복사제본집, 문방구, 편의점, 부동산중개사무소 등을 둘러보면서 걸어가고 후문 가까워 지면서 경사로를 올라가는 과정 모두가 몸과 마음의 온전한 힐링 과정으로 느껴진다. 제법 경사진 비탈길 골목길을 걸어 올라서 후문에 들어선 후에는 테니스장 옆길로 중앙도서관 좌측면을 지나면 도서관 정면 입구다.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 서가
도서관에 들어가서 늘 여유있고 한적한 책상 빈자리에 배낭을 놓고 서가를 둘러본다. 서가에서 주로 보는 책 종류는 제목에 중국, 역사, 지리, 도시, 토지, 부동산 등의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는 책들이고, 가끔 소설이나 희곡 등 문학작품들도 펼쳐 보고, 대출도 한다. 대출 기한은 1회 2주이고 온라인으로 1회에 한해서 연장이 가능하니 한번 대출해 오면 결국 4주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대출한 책이 만 4주가 되는 날에는 책을 반납하러 이렇게 모교 도서관에 오게 되고 온 김에 교정을 둘러보며 걷는다.
서울시립대 대강당
서울시립대 경농관
도서관에서 나온 후에는 정문 쪽으로 걸어 가면서 학부와 중국유학을 위해 중퇴한 박사과정, 그리고 졸업후에도 연극반 후배들의 공연을 보러 왔던 곳곳에 추억이 갈무리 되어 있는 교정 곳곳을 둘러보며 가능한 최대한 여유 있게 둘레길 걷듯이 걸어 나온다.
학부생으로 입학한 그 시절 도서관이었던, 지금은 도시공학과가 쓰고 있는 건물 옆으로 나와 강당을 지나서 전공 공부했던 건축과가 있는 건설공학관, 3층인가 설계실에서 스티로풀 깔고 토막잠도 자가면서 밤샘 작업도 했던, 그 건물 앞에서 좌측에 있는 21세기관쪽으로 가서 전공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했던 연극반, 공연 연습 막바지 때에는 함께 연습하던 배우, 스텝진들이 나란히 누워서 한쪽은 검정색, 또 한쪽은 빨강색 창문 커텐을 깔고 덮고 자기도 했던 자작마루 소강당이 있는 언덕에 올라가 잠긴 문 왼쪽으로 강당 뒤편으로 가서 아직 살아있는 개나리에게 그 옛날처럼 요소비료(?)를 주고 내려와서, 학교 역사건물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경농관 단층 벽돌건물동 사이길을 거쳐 청량리와 전농동 가는 길과 접해 있는 정문까지 걸어가는 그 과정..., 그야말로 힐링과 행복을 충전하는 노선이다...!
오늘도, 4주 기한이 돼서 반납해야 할 책 두권을 베낭에 넣고 오후 3시경 집을 나서서 집앞에 있는 공용자전거 따릉이 스테이션에 따릉이 한 대 골라서 타고 홍대입구역 경의중앙선 8번 출입구로 들어가 용문, 양평 방향으로 가는 전철 타고 경로석에 앉은 후 베낭에서 반납해야 할 책을 꺼내서 아직 미처 못 읽은 부분을 들쳐 보다가 졸다가 회기역에 내려서 모교 서울시립대 쪽으로 향한 언덕길을 걸어서 갔다. 전철안에서 응봉역인가에서 깜빡 졸았던 듯, 깨어서 보니 어느새 청량리역이었다. 지나치지 않고 깨어서 다행이다.
강화네집, 회기역 서울시립대쪽 출구앞
깜빡잠을 자서 그런 지 회기역 밖으로 나오니 정신도 맑고 몸에 생기가 돌면서 출출하다. 이 때쯤에 시립대 방향 출구 계단으로 내려가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토스트, 김밥, 어묵오뎅, 순대, 튀김 등 간판을 단 집이 보인다. 간판 밑에 조그맣게 "강화네 집"이라 씌어 있는 것으로 봐서 주인 아주매 할머니의 고향이 강화도일 거라 짐작한다.
"강화네 집" 안에 들어서니 벽 쪽 구석에 붙어있는 조그만 테이블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 한쌍이 앉아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고 있다. 나도 아주머니에게 "야채 토스트 하나 주세요" 하고, 국자를 들고 종이컵에 오뎅국물을 떠서 따른다. 오뎅국물은 따로 계산하지 않는 데, 이 집은 종이컵 옆 뚝배기에 쪽파를 총총 썰어 놓아서 먼저 그 쪽파를 종이컵에 넣고 따끈한 오뎅국물을 국자로 퍼 넣고 마시면 국물 맛이 훨씬 좋고 그럴 듯 해 진다.
야채 토스트 값이 지난번에는 2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2500원이라 적혀 있는 걸 보니 그 사이에 가격 인상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가성비 높은 착한 가격이다. 이런 토스트를 이렇게 착한 가격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맛있게 제공해 주는 강화도 할머니는 자본주의 한국사회, 서울 회기동의 천사이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거의 같은 분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오늘도 어르신 카드와 따릉이, 토스트와 오뎅국물, 그리고 모교 도서관 덕분에 기분 좋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생산적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