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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Nov 30. 2023

중국의 강(2)-화이하, 지수, 첸탕강, 주강

중국경제지리(8)

화이하와 지수     


화이하(淮河)     

화이하(淮河) 유역은 중원의 황하 하류와 이웃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화이하 북부의 많은 지류들은 화북평원을 발원지로 하고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황하의 범람과 유로 변경 시에 화이하 수계가 황하의 기습을 받고, 합류한 후에 황해로 흘러들어 갔다.



남방과 북방의 경계, 친링-회하

화이하(淮河)와 서쪽으로 접한 친링(秦岭)을 잇는 선의 남부와 북부는 지질, 지형, 기후, 수문, 토양, 생물 등 자연지리 요소가 모두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즉, 화이하(淮河)는 중국의 남방과 북방을 가르는 경계 하천이다. 중국인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남선북마(南船北馬)’, ‘남방사람은 쌀을 먹고, 북방 사람은 밀을 먹는다’, 또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귤이 회하(淮河)를 건너 북으로 오면 탱자가 되고, 앵무새는 제수(濟水)를 넘지 못하며, 오소리는 문하(汶河)를 건너면 죽고 마는데, 이 모든 것이 땅의 기운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남방과 북방의 경계선이 바로 이 강 화이하(淮河)와 친링(秦岭)산맥을 연결하는 선이다.


화이하 북부 지방은 겨울철 월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토양과 강물이 얼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작물 성장이 불가능하고, 수자원량이 부족해 적은 물로도 재배 가능한 밭농사 작물 위주의 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반면에 남부지방은 겨울철에도 월평균 기온이 기본적으로 영상을 유지하고, 땅과 강물이 얼지 않으므로 1년 내내 작물 성장이 가능한데다 수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므로 논농사 위주의 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지수(济水)   

지수(济水)

고대 중국 중원 사람들이 ‘천하 4대 강’으로 꼽던 지수(济水)는 황하의 범람과 유로 변경 시에 상당히 긴 구간의 하도(河道)를 황하에 점령 당하고, 남은 구간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서 오직 그 발원지 부근만 아직도 ‘지수’라고 불리고 있다. 이 강의 발원지는 왕우산(王屋山) 동남 기슭의 지위시(济源市) 행정구역 내에 있다. 지수의 발원지는 지위시 북부에 위치한 지두츠(济渎池)라는 호수다.


이 호수 앞에는 고대 제왕들이 ‘지수’에 제사 지내던 사당인 지두묘(济渎庙)가 있다.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중심축의 길이가 500여m다. 582년 수(隋)대에 최초로 건설되었고,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70여 칸의 전각과 송, 원, 명, 청 각 시대의 수십 개의 고건축과 고비석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물들을 보면, 당시에 이 강이 차지한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징항대운하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으로 인해 중국의 큰 강들은 대부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흐르므로, 남북 방향의 수운 교통이 취약했다. 따라서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남북 방향의 운하 건설을 숙원 과제로 여겼다. 그 시작은 기원전 486년 춘추시대에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황하 유역을 정벌하고자 장강과 회하(淮河)를 연결하는 운하인 ‘한구(邗溝)’를 건설한 것이었다. 그 후 부단히 건설된 남북 간의 지역성 인공 하천(人工河)들을 기초로 남북 대운하를 건설한 자는 수양제(隋煬帝)다.

징항운하, 항저우

(隋)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 군대와 도성 모두 대량의 양식과 옷감(布帛) 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특히 고구려 정벌을 위한 군대 보급로 확보가 필요해졌다. 따라서 물산이 풍부한 남방으로부터 물자를 운반해 오기 위한 남북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


수양제는 605년부터 군중을 동원해 6년에 걸쳐서 각 구간 운하의 기초 위에 황하와 화이하를 연결하는 통제거(通濟渠), 화이하와 장강을 연결하는 산양독(山陽瀆), 그리고 전장-쑤저우-우시-자싱-항저우를 연결하는 강남운하(江南運河)를 준설·개통하고, 최후로 다시 황하 북쪽 주수(诸水)의 영제거(永濟渠)를 준설해 베이징 부근의 탁군(涿郡)까지 연결했다.


이때부터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5대 수계를 남북 방향으로 관통시킨 운하, 징항(京杭)대운하가 개통되었다. 이리하여 도성 뤄양(洛阳)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전국의 수운망(水運網)이 조성되었다.


징항운하, 항저우

운하의 개통은 연안지구의 경제 발전과 도시의 번영과 남북 간 문화교류를 촉진시켰다. 수당(隋唐)시대에 강남운하의 중심지였던 양저우(扬州)는 가장 번화한 도시로 발전했고, "인간 천당"이라 불리던 쑤저우(苏州)와 항저우(杭州)도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었다.


왕조의 교체에 따라 정치 중심도시가 바뀜에 따라 운하의 중심도시도 바뀌었다. 북송(北宋) 때는 카이펑(开封, 개봉)이었고 원, 명, 청대에는 베이징이었다.


원(元) 세조(世祖) 쿠빌라이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 장강 하류 지역에서 생산하는 대량의 양식을 베이징으로 운반해 오기 위해 저명한 수리 전문가 궈쇼우징(郭守敬)의 계획설계에 의해 산동운하(山东运河) 구간과 베이징 통후이하(通惠河)를 준설해, 원래의 운하를 직접 베이징성 안의 지쉐이탄(积水潭) 즉, 오늘날의 스차하이(什刹海)까지 직접 연결해 개통시켰다.


이때부터 북의 베이징에서 남의 항저우에 이르는 징항대운하(京杭大运河)가 완성·개통되었다. 당시 베이징의 스차하이 부두에는 배들이 머리와 꼬리를 맞댄 채로 늘어서서 수면을 덮고 있었다고 한다.                    

징항운하, 항저우

징항대운하는 총연장 1750㎞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일찍 준설되었고, 항로가 가장 길고 공정 규모가 가장 큰 인공운하이다. 오왕 부차(夫差)가 한구를 준설·개통한 이래 2000여 년간 징항대운하의 북부 구간은 수시로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했지만, 남부 구간인 강남운하는 현재까지도 중국 강남 교통운수의 동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쪽의 물을 북으로 끌어다 쓰기 위한 남수북조(南水北调) 공정과 결합해, 운하 북부 구간의 운수 기능도 부분적으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육로 교통과 항공교통이 발전하면서, 특히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중심으로 하는 육로 교통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수송로로서의 운하의 비중과 역할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첸탕강과 주강     


첸탕강(钱塘江)     

첸탕강, 항저우

첸탕강(钱塘江)의 옛 이름은 저강(浙江)이고, 저장성의 명칭이 이 강에서 유래다. 첸탕강의 발원지는 안후이 남부 셔우닝(休宁) 반창(板仓)이고, 상류 구간은 신안강(新安江), 중류는 푸춘강(富春江), 하류를 첸탕강이라 부른다.


첸탕강은 저장성 동북부 항저우시를 동서 방향으로 횡단해 항저우만으로 흘러들어 가서 동중국해로 흘러들어 간다. 강의 총 길이는 494㎞이다. 5만㎢에 달하는 유역은 중아열대 상록활엽림 지대로, 식피가 양호하고 기후가 온난하고 강수량이 풍족하다.

첸탕강은 강의 길이로만 본다면 큰 강이라 할 수 없으나 이 강이 형성하는 경관과 특성으로 인해 중국 내의 ‘명강대하(名江大河)’중 하나로 꼽힌다.


상류인 신안강은 푸른 산과 맑은 물로 유명하다. 1950년대에 신안강댐 건설 시 수몰되어 형성된 호수 첸다오호(千岛湖)는 수면 면적 575㎢인 인공호수이고, 원래의 산봉우리들이 1078개의 섬이 되어 수상선경(水上仙境)을 연출하고 있다.


푸춘강에서 원자옌(闻家堰)을 지나면서부터는 강폭이 넓어지면서 큰강의 풍모를 드러내는데, 이때부터 ‘첸탕강’이라 부른다. 첸탕강 하구는 나팔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매년 여름철 만조 때면 조류가 강 하구로 올라오면서 수면으로부터 수 미터 높이로 솟아오르는 역동적 경관을 연출한다.


저장성 항저우 동쪽 하이닝(海宁)에서는 당조(唐朝) 이래 매년 음력 8월 18일 전후에 첸탕강 조수(潮水)가 최대가 될 때 이를 감상하는 ‘관조(觀潮)’라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다.                                                   



주강     

주강삼각주

주강(珠江)은 길이 2197㎞, 유역 면적 45만 2600㎢로 중국 남방에서 가장 큰 강이고, 중국 전국에서는 네 번째로 큰 강이다.

서강(西江), 북강(北江), 동강(東江) 3개 강의 물줄기가 수계를 이루고, 남중국해로 흘러들어 간다.


수로망이 밀집해 있는 주강 하류 주강삼각주 평원은 농업 생산과 수운을 기초로 일찍이 중국 내의 경제가 발달한 도시 밀집지구가 형성·발전해 ‘남방의 금삼각(南方金三角)’이라 불린다.


주강 유역 대부분이 중국의 열대 및 아열대 계절풍 지구에 속하고, 식피 상태가 양호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하구(河口)의 연평균 유량은 매 초당 1만 1070㎥로, 장강(3만 1060㎥/초) 다음이고 황하보다 6배 많다.

주강

주강의 물은 대부분 주강 수량의 77%를 점하는 서강에서 온다.

서강의 발원지는 윈구이고원(云贵高原)이다.

서강의 수많은 지류들이 석회암 지구에서 형성되었다.


서강 유역은 습윤다우(濕潤多雨)의 열대기후지구에 속해 있고, 수온이 비교적 높고 수량이 풍부해 카르스트(岩溶) 발육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카르스트 지형이 형성한 오묘한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산수가 천하제일’이라는 구이린(桂林)의 리강(漓江) 풍경과, 난닝(南宁)지구의 ‘주어강 산수(左江山水)’ 등 도처에 강물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 같은 경관이 산재해 있다.


서강 상류의 구이강(桂江)의 지류 중 하나인 리강은 강물이 맑고 강안 양변의 풍경이 수려하기로 유명해 ‘구이린의 산수는 천하제일(桂林山水甲天下)’이라 평가받고 있다. 구이린 산수의 특색은 잠산(簪山), 대수(帶水), 유동(幽洞), 기석(奇石)으로 개괄하고 이를 총칭해 ‘네 개의 절경(四絕)’이라고 한다.


진시황이 후난(湖南)의 샹강(湘江)과 리강(漓江) 항도를 개설한 기원전 214년부터, 구이린(桂林)은 고대 중국의 남방 수운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북으로 중원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진(镇)이 되었다. 이 제방은 북쪽의 장강 유역 쓰촨성 두장옌(都江堰)과 함께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수리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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