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첫 캠핑
무더위에 굴복하고 말았다. 작년까지는 장식용처럼 두고 보던 에어컨을 올해는 쉴 새 없이 돌리고 있다. 덥지 않은 여름은 없었지만, 일찍부터 시작된 올여름 더위는 유난히 드세게 느껴져 맞서 싸울 기운이 없다.
하루는 피서 삼아 책 들고 집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기겁하고 돌아섰다. 주문대 앞에 늘어선 줄은 끝이 없고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휴가철이기도 했지만, 마치 폭탄세일 중인 백화점 특별 매대 앞처럼 북적거렸다. 다들 같은 마음으로 집을 나왔구나! 나는 그날 이후로 당분간 칩거를 결심했다.
땡볕의 장점을 굳이 꼽으라면 바짝 말라 뽀송해진 빨래뿐이야. 그런 생각으로 땀을 쏟아내지 않으려 애쓰며 느리게 집안일을 하던 오전이었다. 휴대폰에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4번 사이트가 그늘이 좋을 듯. 아직 결제는 안 함.”
신종 보이스피싱 인가 싶어 유심히 살피는데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캠핑 예약을 했으니, 주말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가잖다. 미쳤어, 정말! 여름감기로 열흘 넘게 고생한 데다 더워서 아무 데도 안 가겠다고 결심했는데 눈치 없이 이런 이벤트를 하다니. 하나도 안 기뻤지만, 장인 장모를 챙기는 갸륵한 마음에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뭐라 답할지 곰곰 생각하다 마땅한 답이 없어 기뻐 날뛰는 아줌마 이모티콘을 보냈다. 부부라도 진실만을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모티콘만 한 게 없다.
“엄마, 주말에 캠핑 가자.”
“오메, 더운디? 집이 제일 편하제, 집으로 와.”
“엄마 아빠는 빈손으로 와, 내가 다 준비할게. 아, 자고 올 거니까 칫솔은 챙겨!”
“캠핑은 한 번도 안 해봤는디… 놀다가 저녁때 집으로 와 불란다.”
“응, 강요는 안 해. 그래도 잘 생각해 봐.”
더위에 약한 엄마가 분명히 망설일 것 같아 전화로 이틀을 꼬셨다. 캠핑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로 생각하는 아빠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르겠단다. 이 정도면 반쯤 넘어온 거다. 너무 더우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나는 에어컨도 안 켠 채 1박 2일 동안 포식할 먹거리와 짐을 쌌다. 캠핑의 낭만은 밤에 찾아오는 법! 이번 콘셉트는 한여름의 감성 캠핑으로 하자. 엄마 아빠의 첫 캠핑이 낭만적이길 바라며 쓸만한 장비는 모조리 끌어냈다. 선풍기도 세 대나 챙겼다. 누가 보면 이삿짐 싸는가 싶을 정도다.
캠핑 가는 날 아침, 곱게 화장한 엄마를 만났다. 립스틱 바른 입술이 봉선화 같았다. 여든을 코앞에 두고도 청년처럼 일하는 아빠는 그새 사무실을 둘러보고 돌아와 중절모를 흔들며 딸과 사위를 반겼다. 나는 엄마의 작은 손가방을 보며 자고 갈 마음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엄마, 두고 봐. 집에 가기 싫어질걸!’ 당당히 말하고 싶었지만, 나만 들리게 말했다. 날이 너무 뜨거워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점심쯤 도착한 야영장 풍경은 예술이었다. 가본 적 없는 유명한 휴양지, 보라카이 해변 같았다. 한낮이었지만 남편이 예약한 사이트는 그늘이 가득한 오션뷰였다. “자리 너무 잘 잡았다! 이 성수기에 어찌 이런 데를, 자기는 진짜 대단해.” 나는 목소리를 한껏 올려 남편을 비행기에 태웠다. 이 캠핑의 성공 여부를 쥔 책임자라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다. “오메, 문 서방, 좋네~잉!” 선풍기 앞 의자에 고이 모신 엄마도 눈치를 잃지 않고 거들었다. 어깨가 한껏 올라간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두 동의 텐트를 뚝딱 설치했다. 아빠는 사위 꽁무니를 쫓아 손을 보태며 처음 보는 캠핑 장비들을 신기해하셨다. 행복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캠핑의 찐 재미는 먹고, 먹고, 또 먹는 것. 남편이 사이트를 단장하는 동안 나는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첫 메뉴는 엄마 아빠가 준비한 자연산 하모 샤부샤부로 결정했다. 분명히 빈손으로 초대했건만 딸 사위 먹이겠다고 바리바리 싸 오셨다. 그 덕분에 캠핑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고급 요리를 먹게 됐다. 안주가 좋아 낮술도 곁들였다. 사위는 장인에게 자꾸 술을 권하고, 운전해야 하는 아빠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한사코 거절했다. 괜히 집을 두 채나 지었다 싶었지만, 엄마의 올라간 입꼬리를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개운해졌다.
먹으러 왔나? 싶을 만큼 계속 먹었다. 샤부샤부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고, 숯불에 구어 온 물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다가 포도알을 따 먹고, 옥수수를 갉아먹다가 시원한 냉커피를 타 마셨다. 페이스북 하는 아빠는 캠프장에서 얼음 띄운 냉커피가 웬 말이냐며 사진을 찍었다. 배 꺼질 새도 없이 저녁때가 왔다. 엄마는 채소를 듬뿍 넣고 새콤달콤한 서대 무침을 뚝딱 만들어냈다.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이맘때면 꼭 해주는 데 캠핑장에서 먹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갓 지은 흰쌀밥에 쓱쓱 비빈 서대 무침은 입에 머무를 새도 없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남편은 생일상 받은 사람처럼 기뻐했다.
“엄마, 여기서 노래 나온다. 들어볼래?”
“코드도 없는디!”
야심 차게 준비한 싱잉 랜턴을 켰다. 엄마 아빠 눈이 어린애처럼 동그래졌다. 울 엄마 김 여사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최신 가요를 척척 알아맞혔다. 트로트 마니아다웠다. 부른 배를 쓸며 박자를 맞추는 아빠 모습이 북극곰 같아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는 소리를 키워라 말아라 하며 옆 텐트에 방해되지 않게 한참 동안 흥을 냈다. 그러다가 해 떨어지는 시간에 넷이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여름날의 저녁 하늘은 환상적이었다. 막힘없이 펼쳐진 바다가 하늘을 살리고, 석양빛으로 물든 하늘이 바다를 살렸다. 서로를 빛내는 ‘환상의 짝꿍’ 같았다. 어쩌면 엄마와 아빠, 나와 남편도 그런 사이가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해졌다.
“나, 자고 갈라요.”
엄마가 아빠를 향해 결심을 통보했다. “예, 예, 그럴 것 같습디다.” 아빠는 이미 예상한 듯 대답했지만, 반주를 즐기지 못해 살짝 억울한 눈치였다. 나는 엄마가 변심하기 전에 텐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첫 캠핑의 밤이 포근하도록 예쁜 랜턴을 걸고 사각거리는 꽃 이불을 깔았다. 커플 베개를 나란히 두고 나오는데 마치 신혼 방을 단장하는 기분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각자의 텐트로 들어가기 전에 남자끼리 여자끼리 팔짱 끼고 샤워하러 갔다. “엄마, 어두워, 손잡아!” 알몸으로 목욕한 사이는 친하니까 얼른 손을 내밀었다. 애교 넘치는 딸은 아니라 엄마랑 아무 때나 손을 잡지 않는 나는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겨 기뻤다. 밤바다를 산책할 때도 엄마는 내 팔에 의지해 걸었다. 어느새 우리의 역할이 많이도 바뀌었다. 엄마는 손주를 일곱이나 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흰머리 난 중년이 되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남자들이 잠든 깊은 밤, 엄마랑 나는 별을 세다 옛날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살던 집이 허물어지고 밭이 된 얘기, 얌전하던 아랫집 아저씨가 바람이 나서 동네를 뜬 얘기, 엄마의 시집살이 얘기는 맥락 없이 이어졌어도 구연동화처럼 재미있었다. “그래서?” 하고 몇 번 더 물었다간 밤을 새울 판이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나는 앉아서 노는 데도 하품이 났다. “엄마, 내일 아침은 장어탕 끓여줄게.” 그렇게 아침 메뉴로 엄마를 꾀어 텐트 안으로 들여보냈다.
“엄마, 안 불편했어?”
“잉, 널찍하니 좋드라. 선풍기 꺼도 안 덥고.”
잘 잤다는 말이 너무도 듣기 좋았다. 밤새 당신들의 텐트를 살피느라 못 잤다는 얘기는 비밀로 했다. 장인과 사위는 그새 바다를 산책하고 돌아와 친정 단톡방에 캠핑장의 아침 풍경을 찍어 올렸다. 신나서 다른 가족들의 주말 잠을 방해하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옆 텐트에서 빵이며 사과로 아침을 차릴 때 우리는 진한 냄새를 풍기며 장어탕을 끓여 먹었다. 엄마는 입가심하고 남은 숭늉으로 챙겨 온 혈압약을 먹었다. “그렇제, 김 여사는 다 계획이 있었네!” 아빠 말에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엄마가 배시시 웃으며 딴말을 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나는 안다. 이모랑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엄마의 마음을.
우리가 그늘막 아래서 휴식하는 동안, 남편은 텐트와 장비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땡볕이 쏟아지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의 동작은 빨랐다. 풀어놓았던 짐들이 최소한의 크기로 정리되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빠는 “세상 참 좋네.” 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단다.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
‘귀찮고 힘들지만 지금 우리를 봐봐, 행복하잖아. 그 맛에 하는 거지.’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은 엄마는 시원한 콩국수를 샀다. 며칠 전에 아빠한테 월급을 받았다며 자랑했다. 계산하고 남은 돈을 가는 길에 커피 사 먹으라며 쥐여줬다. 생전 처음 하는 캠핑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엄마 표정이 아이처럼 해맑다. 다리가 아파 마음껏 걷지 못하는 엄마가 이틀 내내 무릎이 아프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거창한 여행도 아닌데 뭐가 그리도 바쁘다고 시간을 내지 못했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한편으론 때를 놓치고 후회하기 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캠핑의 순간에 오롯이 새겨진 우리의 이야기, 먼 훗날 부모님을 떠올릴 순간이 오면 조금은 덜 미안해질 것 같다. 이 모든 게 남편 덕분이다. 한동안 굉장히 행복한 기분으로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