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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Jul 13. 2024

딸이 떠난 방에서
씩씩하게 나를 알아갑니다

너의 독립, 나의 재발견

이른 아침,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기차역으로 갔다. 큰딸이 독립하는 날이다. 무거운 가방을 번쩍 들고 기차에 오르는 딸의 뒷모습은 어엿한 어른이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면서도 애잔했다. 

“잘 가, 딸!” 

플랫폼에 서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보살핌의 대상이 하나 줄었으니 홀가분할 줄 알았다. 분명히 그런 기분으로 만세를 외치리라 생각했는데, 떠나보내는 아련함을 맛보고야 말았다. 왠지 허전하고 쓸쓸했다.     

  

터덜터덜 역사를 빠져나왔다. 주차장을 향해 걷는데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처럼 ‘불안’이 제멋대로 들이닥쳤다. 불안도 내 감정이지만 당황스러웠다. 불현듯 산에 가고 싶어졌다. 숲길을 걷다 보면 소란스러운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았다. 마침, 산에 가기 좋은 옷차림이었고, 목포의 자랑 유달산이 코앞에 있었다. 망설임 없이 즐겨 걷던 둘레길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의 산은 맑고 고요했다. 숲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아침 햇살, 모닝콜 같은 청량한 새소리, 이슬 맺힌 싱그러운 풀잎. 그것들에 귀를 열고 눈을 맞추다 보니 소란스럽던 마음결이 이내 보드라워졌다. 그랬어도 딸 생각은 계속됐다. 한 발 디딜 때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산모퉁이를 돌다 가느다란 새끼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다. 사람 발에 밟혔는지 격렬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우리 딸이 살아갈 세상도 만만치 않을 텐데. 지렁이 걱정, 딸 걱정에 나답지 않게 눈물이 났다.     

  

딸이 처음 세상에 나온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고 여린 생명체를 품에 안았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딸은 내 삶의 중심이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처음 엄마라고 불렀을 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매 순간이 벅찬 감동이었다. 그런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제 뜻을 펼치려 둥지를 떠난다. 홀로 미국 생활을 했던 당차고 멋진 딸이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나 걱정 따위는 없을 줄 알았다. 한데 착각이었나 보다. 이렇게 허전하고 쓸쓸할 줄은 몰랐다.     

  

딸과의 추억을 밟으며 걷다가 갈림길에 이르렀다. 힘든 돌계단 대신 푹신한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을 선택했다.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으악!” 나는 고상하지 못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보고 대자로 드러눕고 말았다. 미끄러져 넘어진 거다. 전날 비가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엉덩이에 불붙은 것처럼 화끈거렸지만, 창피함에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피 나는 곳은 없었다. 축축한 기운에 뒤돌아보니, 설사 한 것처럼 엉덩이에 매트 자국이 선명하다.      

  

젖은 엉덩이를 가릴 만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길이 아득했다. 바지가 마를 때까지 조금 더 걸어보자. 그래, 인생은 원래 예측하기 힘든 거야. 가다가 넘어지는 날도 있고, 익숙한 길도 낯설 때가 있고, 매번 옳은 선택만 할 수도 없잖아. 평탄한 길이 있으면 가시밭길도 있는 법이지. 그러니 각자의 인생을 그때그때 잘 살아내면 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딸을 보내는 걱정과 불안이 걷히기 시작했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소란이 지나가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딸의 빈방을 둘러보았다. 아침 일찍 나가느라 제 몸 단장하기도 바빴을 텐데 침대 정리까지 완벽하다. 그래, 내 딸은 이런 아이였지.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기로 했다. 딸의 독립이 결정되던 날, 내 마음은 벅차오름과 동시에 허전함으로 가득 찼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직 돌봄이 더 필요한 작은딸이 남아 있지만, 곧 겪게 될 ‘빈 둥지 증후군’이 두려웠다. 걱정을 사서 했던 거다. 집을 떠나는 큰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됨을 직감했다. 그러니 나도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손갈 데 없이 야무지고 씩씩했던 내 딸. 우리의 보람이자 보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홀로 인턴 생활을 마치고, 강남 한복판으로 출근하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당당히 독립한다. 내 딸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으로 성숙하고 자랑스러웠다. 독립을 준비하는 동안 딸은 여러 가지 고민과 선택을 반복했다. 나서지 않고 한 발 떨어져 지켜보기만 했다. 살 집을 구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나아가 새롭게 시작될 인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딸의 모습은 더없이 대견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딸의 독립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마땅한 선택이다. 나는 믿는다. 딸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모든 어려움과 도전을 용감하게 맞이하리라는 것을. 그러니 걱정 근심 말고 기꺼이 이별하자.

  

빈 둥지를 채우는 시간은 어쩌면 나에게도 새로운 시작일지 모른다. 딸이 비상하는 동안, 나 역시 새로운 날개를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미루면 소멸하는 법. 딸 방에 내 서재를 꾸미기로 했다. 책꽂이에 좋아하는 책을 꽂고 식탁에 있던 노트북도 옮겨놓았다. 작은딸이 쓰다 싫증 낸 스탠드도 설치하고, 프렌치 라벤더 향이 나는 디퓨저도 주문했다. 오롯한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그 방에 들어가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찾아냈다. 우선, 컴퓨터 자격증부터 다시 취득하기로 했다. 90년대에 취득한 자격을 업그레이드할 셈이다. 필사 노트를 꺼내 눈에 넣어둔 문장도 옮겨적었다. 공부 중인 상담사 과정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참이다. 여전히 재능을 찾지 못해 방황 중인 글쓰기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생각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딸 생각에 빈방 쳐다보며 우울해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걱정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매일같이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생각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딸에게 그만 독립의 자유를 주자고. 당분간 연락 안 해야지 마음먹은 저녁,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피스텔에 바퀴벌레가 있는 것 같아. 나, 집에 갈래!”

 “딸, 그 정돈 손으로 때려잡아야 어른이지. 전화 끊고 얼른 잡아, 얼른!”     

  

드디어 독립했다. 내가 딸에게서. 이건 완전히 나에 대한 재발견이다. 

미처 몰랐다. 이런 기쁨이 찾아올 줄이야. 

딸,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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