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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Sep 25. 2021

인간다움이란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우리는 언젠가 약자가 된다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편리해지고 살기 좋아지고 있다. 단, 이 빨라진 시스템과 기술에 발맞출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일 수 있다. 인터넷이 그렇고 스마트폰이 그렇다. 누구에겐 신의 선물이지만 누구에겐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살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그런 기술발전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평생을 목수로 일했고, 이제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인터넷으로만 가능하다. 인터넷을 다루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받아 조금씩 해나가지만 번번이 좌절하게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무대는 영국이다. 그런데도 영화 속 다니엘의 모습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꽤나 잘 사는 영국과 나름 잘 사는 한국의 경제 사각지대는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이다. 뒤쳐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진 사회가 된 지 오래이다. 


대표적으로 은행이 그렇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은행은 이제 점포수를 줄이고 있다. 관련 기사가 뉴스에 나오면 더 없어져도 문제가 없다는 댓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은행 업무를 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개인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도 언젠가 노인이 되고, 빈곤한 처지가 되었을 때도 같은 마음일지는 알 수 없다. 


인간다움에 대해서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의 글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부이다. 그는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할 뿐이었다. 그런데 무시당했고 좌절했다. 그럼에도 그가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람 때문이었다. 


관공서의 공무원 중에서도 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직원도 있고, 동료들과 이웃들은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 했다. 다니엘도 남을 도운다. 본인 집의 전기는 끊길 위험이지만 이미 끊긴 케이티의 전기세를 보태주고, 아이들을 맡아준다. 그리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관공서의 행태가 너무나 비합리적이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정과 관심에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복지의 사각지대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을 탓한다고 해서 그 시스템이 갑자기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잘못되고 사각지대가 발생하면 그것을 돌아보는 것 역시 사람의 관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민낯을 고발하기보다는 인간다운 사회를 더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조금씩 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살만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휴머니스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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