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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올가 Apr 15. 2021

EP.1 도봉산 우이암

나 홀로천천히 올라가기

4월 9일 금요일,

오늘 나는 도봉산을 오른다.


이전에 도봉산의 마당바위를 통해 자운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어 번 올라가 보았지만, 새로운 길을 올라가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에 들었던 '우이암'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창에 '우이암'을 입력하니 소의 귀를 닮아 붙여진 바위 이름이라는 의미가 나오고 올라가는 길이 여러 곳 나온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니까 일단 도봉산역으로 출발한다.



도봉산 역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평일 오전에도 등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어르신들도 많이 계셨는데 도중에 어디로 사라지신 건지 중간쯤 길을 걷다가 돌아보면 나 혼자 뿐이다. 도봉산역 주변에 조성된 먹거리와 등산 브랜드 특화 거리를 지나 걸어가면 북한산 국립공원의 입구에 도착한다.


내가 어릴 때 '도봉산'은 계곡에 들어가 발도 담그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일반 산이었는데 지금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계곡에서 취사를 하거나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된 구역도 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지도로 올라가는 길을 확인하고,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다리를 건넌다.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우이암 등반 길은 초보자들이 올라가기 쉬운 길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경사로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런 것 같다.



저벅저벅 산을 계속 오른다.

최근에 이소라의 노래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는 우울한 감이 있으면서도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가사들로 가득하다. 이소라의 명곡들 중 'Amen'을 이어폰을 끼고 올라가면서 조용히 들어본다.

 


우이암으로 오르는 길의 갈피를 잡지 못해 주변에 지나가는 한 나그네에게 길을 문의해본다. 산에서 만난 이들을 어찌나 친절하신지 직접 입구까지 데려다주셨다. 어느 길로 가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지도 직접 설명해 주셨다. 최근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갔을 때 아가씨와 할아버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에서 세대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나도 혼자 산에 오르면서 가끔 어르신들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리곤 하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포즈 디렉션도 해 주시면서 사진작가처럼 정성을 다해 찍어주신다. 인스타에 경도된 나도 할아버지들이 찍어준 사진을 볼 때면 가끔 경탄하곤 한다. 나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사신 어른들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다고 깨달으며 인생의 한 수를 배우는 느낌이다. 산에서 만난 산동무의 말들은 '정상까지 조금 남았습니다' 빼고는 진실인 것 같다.


흙길을 따라 우이암길을 오르며 다시 저벅저벅 걷는다. 숨이 조금씩 차오르지만 오를 때마다 숨을 내뱉으면서 숨의 속도를 조절해 보려고 한다. 어릴 때는 이 순간이 마냥 싫었었는데 한 5년 정도 요가를 한 덕분인지 숨 쉬는 것이 좀 편해졌다.

 


구간구간 아직 덜 진 벚꽃 잎들이 보이고 만개한 진달래꽃에 괜스레 웃음이 난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진달래가 막 피기 시작했는데 오늘 올라와보니 이제 거의 마지막 봄꽃이다. 우이암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올라가면서 도봉산의 대표봉인 오봉과 자운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맑아서 시계가 멀리까지 보인다. 최근에 미세먼지로 인해 꽉 막힌 하늘을 봤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큰 행운이다. 엄마가 "산은 매일 갈 때마다 다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너무 공감된다.


우이암에 오르다 보니 우회로가 나온다. 안전하게 우회로를 선택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우회로로 가는 것이 더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손으로 바위를 잡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돌아가는 게 나를 위해서도, 인생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었으리라.



우이암은 따로 봉우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돌로 이루어져 있는 능선이다. 올라가는 길에 전망대가 있어 탁 트인 공간에서 사진을 남긴다. 하늘이 너무 멋있어서 그 자리에 멈춰서 하늘을 구경한다. 너무나 멋있고 감사한 순간이다.

 


중간에 멈춰 점심을 먹는다. 오봉을 바라보며 먹는 김밥은 꿀맛이다. 아직까지는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 들고 와서 차도 마시고 작은 컵라면도 먹곤 하는데 이 맛에 산에 오는 것 같다. 홍차도 한 잔 마시며 와플 과자를 한 입 베어 먹고 나서는 내려갈 길을 검색해 본다. 산에 와서 오를 때를 빼고는 아직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나를 보며 디지털 디톡스를 꼭 해봐야지라고 다시 마음을 먹는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나서 괜히 양심에 찔려 좀 더 산을 타봐야겠다고 결정했다. 등산 지도를 보며 주봉 능선을 타고 관음암으로 내려가는 길로 하산길을 정했다. 주봉 능선 옆에 영어로 '릿지(ridge)'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발도 등산 신발이니까 아주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예견해본다. 하지만, 몇 걸음 안 걸어가 릿지 산행의 쓴맛을 또 경험한다. 그럼에도 오르는 길이 참 즐겁다. 바위에 나의 발을 붙이면서 올라가고 그 위에 올라가 또 산을 바라본다.

 

처음에 나의 산행은 누군가를 열심히 따라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즐겁지 않고 버거웠던 것이다. 내가 혼자 산행하는 이유도 그러고 싶지 않아서이다. 다른 이를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잘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화를 내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풍경이었는지 나의 눈에 제대로 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산행을 꼭 가보라고 권유한다.



혼자 산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경치를 감상해 본 적이 있는가? 숨이 차오를 때까지 바위를 타고 올라가 본 적은 있는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하늘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본 적은 있는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혼자 올라가면서 해보기를 권유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산에 올라가 하늘과 만났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가슴이 벅찰 정도이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나 맑아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산길을 잘 찾지 못해 헤매면서 웃음이 키득하고 새어 나올 때도 하늘을 바라보면 쉽게 해결이 된다. 지금은 하절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오후 4시 전까지만 내려가는 길을 찾으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다. 어느새 걷다 보면 내려가는 길을 발견한다. 겨울 동안 아무도 올라온 것 같지 않은 길을 내려가다가 등산객 한 명을 발견한다. 아마 오르는 그 사람도 내려가는 나도 이 길이 맞나 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왠지 오르는 사람이나 내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길이 맞겠지 하고 안심이 된다.


계속 내려가다 보면 지난번 마당바위에서 내려간 길과 만나게 된다.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계곡이 시작하는 지점인가 보다. 얼마 전에 비가 내리고 나서는 계곡물이 많아졌다. 계곡 물소리를 듣다 보면 여름에 또 도봉산에 와야겠다고 나를 다짐하게 한다. 큰 돌 위에 대자로 누워 잠을 청하는 이들을 보면서 덩달아 나도 그 바위 위에 누워 쉬고 싶다.

 


문사동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하산 지점이다. 벌써 다들 귀가하셨는지 상점도 문을 닫고 등산객들도 남아 있는 이들이 적다. 천천히 내려가며 주변을 살핀다. 오늘도 무사히 내려왔구나 하고 자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도봉산에게 '굿바이'를 외치며 도봉산역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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