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건국고등학교 1학년 8반

2017.06.16 고등학교 친구와의 대화

by 최성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옆 동네에 친구가 산다. 그 친구는 나와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대학교까지 나왔는데 서울에서, 그것도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간이 바로 옆 동네에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렇게 높지는 않겠지.

혼자서 있는 사무실을 연 이후로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끔 놀러 온다. 주로 점심시간에 와서 점심을 먹고 차 한 잔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좀 쉬다가 자기 일터로 다시 간다. 그 친구의 일터도 우리 사무실 근처다. 더 놀랍게도.

우리는 만나면 일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많다. 얼마 전에는 NBA 파이널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무실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놓고 같이 보기도 했다. 각자 사는 이야기, 요즘 정치는 어떤지, 이 동네 맛집은 어딘지, 오늘 점심은 어디서 뭘 먹을지 등등 이야기 주제는 다양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고등학교 친구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가끔 한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별로 없어서 주로 이 친구랑 친했던 친구의 근황을 묻고,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나의, 나 혼자만의 고등학교 회상씬이 시작된다.

나는 사실 고등학교 시절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때까지는 그냥 친한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때는 다들 사춘기가 걸렸었어란 표현으로 퉁치고 넘어갔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고 말할 것도 없었다. 별일도 많았고 기억나는 것도 많았고 재미있는 것도 많았던 중학교 시절과는 달랐다. 고딩 1학년 때 만났던 이 친구와 다른 친구 몇 명과의 추억 말고는 말할 것도 크게 기억나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퉁치고 마치 없었던 것처럼 지냈던 나의 고딩시절을 이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저 묻어왔던 그 시절이 구체화되면서 그때는 그게 왜 그랬는지 몰랐던 것들이 마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처럼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놀라운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고등학교는 억압적인 분위기였다. 선생님들은 당연한 듯이 아이들을 때렸다. 체벌의 형식이 아니라 폭력의 형태로 때렸다. '네가 뭘 잘못해서 맞는 거야' 이런 식의 '체벌'이 아니었다. 우리는 회초리가 아니라 손바닥으로 뺨을 맞았고, 배를 무릎으로 찍혔으며, 밀대 걸레 자루로 머리를 맞았다. 그렇게 맞고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폭력을 당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폭력에 우리는 무기력해졌다. 그냥 학교 가는 것이 싫었다. 솔직히.

학교 선생님의 수업내용도 존중받기에는 부족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그 학교의 선생님들은 실력이 부족했다. 그들은 그들의 부족한 실력을 애들을 때리거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수업내용을 강요하는 것으로 채웠다. 지금 아이들은 그런 수업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보았다. 중학교 때와 비교해서 친한 친구도 없고 학교 분위기는 항상 별로 안 좋고, 수업은 귀에 안 들어오고, 나는 학교에서 항상 외롭고 좀 우울했다. 나만 이런가 싶어 혼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만 이런가 싶어 다른 애들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까 나는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웃고 떠들고 있는 그들의 등 뒤에도 무기력감과 우울함. 외로움이 있었다. 우습게도 그 이후 나의 상태는 좀 나아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겪었던 그 무기력감과 우울함. 외로움을 온전히 사춘기란 이름으로 개인적으로 당연히 겪었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학교의 기본적인 환경이 너무나 척박했다.

그래도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나는 안다. 그 친구는 좋은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도피처를 찾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운 좋은 녀석이라는걸. 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너라도 그 시절을 재미있게 보내서 다행이라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시절에 고등학생이라면 과거의 나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학교의 기본적인 환경은 많이 바뀌었을까? 해보지 않으면 전혀 모를 질문을 혼자 던져본다. 기본적인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10대의 피 끓는 젊음을 학교에 가두어두는 자체가 어떻게 생각해보면 억압일지 모른다. 만약 학교가 예전같이 폭력적인 모습이라면 더 견디기 힘들겠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17년이 지났다. 지금 친구들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
문득, 어제 친구와 이야기한 게 생각나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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