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전쟁

2015.11.17 아침부터 순대국집을 찾아가는 다이어터의 처절한 여정

by 최성민

나는 요즘 일주일째 다이어트 중이다.

먹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난 먹을 걸 정말 좋아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빔국수 생각이 났다. 지하철을 타는 순간부터 머릿속에 비빔국수가 떠다녔다.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생각했다. 아..이걸 이기고 버텨야 해. 그랬더니 비빔국수는 좀 수그러들고, 아침에 라면이나 한 그릇할까? 하는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냐아냐 라면은 안돼. 건강하지 못해. 그 엄청난 조미료를 생각해봐. 차라리 비빔국수가 낫지? 엉????????? 비빔국수나 라면이나 먹으면 안 되는 거는 똑같다.

버스에서 내려서 원래 건너던 횡단보도가 아닌 반대쪽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또 길을 건넜다. 문 앞에 섰다. 영업 중이라고 쓰여있다. 문을 당겼다. 열리지 않았다. 여긴 비빔국수 집이다. 이건 다행인가?????????

이미 시작된 식탐은 멈추지 않았다. 사무실 가는 길에 즐겨가던 분식집이 있었다. 아침에도 문을 여는 곳이다. 그 집의 라면은 정말 특별했다. 별것 아닌 라면이지만 라면을 끓여서 내주는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난 그 집의 라면을 엄청 사랑해서, 매번 공깃밥을 시켰다. 라면에 우러나있는 대파의 맛과 풀어진 계란이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집에는 여러 가지 메뉴를 많이 하지만, 라면이 제일 맛있다.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라면이 제일 맛있다.

난 그 집이 있는 그 골목을 들어갈뻔했다. 들어갔다면 그냥 나오지는 못 했을 것이다. 아침 아홉시에 혼자 식당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라면 국물을 들이키며 왼손을 들어 공깃밥을 주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골목을 지나왔다. 그렇지만 아직 이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머릿속의 식탐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문득 지난주 금요일이 생각났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난 그날도 다이어트를 위해 점심을 쫄쫄 굶고 마을 세무사 위촉식을 위해 강남으로 가던 길이었다. 비도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치킨이 생각났다. 치킨에 소주 혹은 맥주. 선택은 너의 자유. 하지만 치킨은 디 온리 원. 갓 블레스 힘. 양념과 마늘을 묻힌 닭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그 치킨의 다리를 뜯어 입에서 씹고 있는 그 순간, 그 육즙, 그 향. 내 목을 타고 내려오는 개운한 알코올 냄새.

갑자기 그때가 생각난 것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요즘은 사실 먹을 거 생각밖에 없다. 생각보다 영등포 시장은 먹을만한 곳이 별로 없다. 그나마 몇 군데 찾은 곳이 길 건너편에 비빔 국숫집, 자주 가는 오천 원짜리 프랜차이즈 할매 순댓국집, 영등포 시장 지하상가에 4,900원짜리 한식뷔페. 또 지하상가에 3천 원짜리 짜장면 집, 길 건너 타임스퀘어 가는 길에 뚝배기 고추장 두루치기 집, 설렁탕집,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1,500원밖에 안 하는 단팥빵집, 볶음밥 시키면 당근밖에 안 보이는 중국집, 고기를 간장 종지만큼 주면서 비빔국수를 6,000원이나 받는 국숫집. 이런 것들이 그냥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다닌다. 사실 별거 아니지만 날 맞춰서 잘 골라서 먹으면 맛있다.

원래 나의 계획은 1일 1식이었다. 1일 1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복의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난 식탐이 부르는 환영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머리로는 뭘 먹을까, 뭘 만들어볼까. 헉 이렇게 먹는 것도 있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 1일 1식은 내게 어처구니없는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라도 마음먹지 않으면 난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다 사 먹고, 다 만들어 먹을지도 몰라.

다이어트는 음식과의 전쟁이 아니다. 식탐과의 전쟁이다. 35년간 고이고이 간직해온, 마치 아궁이 위에 뭉근히 끓고 있는 간장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가져온 음식에 대한 욕정과의 전쟁이다.

먹을 것은 나의 좋은 친구였다. 한때 내게 30킬로그램의 살을 선사해준 다이제스티브 초콜릿조차도, 좋은 친구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과자가 한 봉지에 1,500칼로리가 넘는다는 사실을. 담배를 끊는다는 구실로 나는 그걸 하루에 몇 개씩 씹어댔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달달한 것을 씹으면 그나마 조금 마음에 위안이 됐다. 하지만 방에 굴러다니는 과자봉지는 결국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담배도 이렇게 저렇게 몇 년을 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끊는 단계까지 왔다. 이 끊을 수 없는 식탐도, 머릿속을 떠다니는 음식에 대한 집착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살이 빠지면 머리가 더 커 보이겠지만 덩치 산만한 아저씨보다는 낫다.

결국 라면집을 지나쳐간 나는, 나도 모르게 신호등을 건너서 어느 가게로 들어갔다. 손을 들어 순댓국을 시키고 맨밥에 김치를 씹었다. 맛있었다. 맨밥에 김치도 맛있다니!!! 순댓국이 나왔고, 난 새우젓과 양념장을 더했다. 색은 더 빨갛게 무르익었고 밥을 말았다.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다. 순댓국은 맛있다. 거의 돼지국밥과 동급이다. 서울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돼지국밥과 거의 같은 급의 맛이라니!!! 이 차고 넘치는 프랜차이즈 할매 국밥집에서도!!

땀이 났고 땀을 닦았다. 계산을 하고 문을 닫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안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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