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4 2024년도의 롯데 자이언츠와 나
롯데 자이언츠. 내 고향 부산의 프로야구팀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이 야구팀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나는 왜 부산에 태어나서, 왜 우리 아부지는 롯데 야구를 좋아해서, 나는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가.
롯데는 지금도 야구를 못하지만 옛날에도 야구를 잘 못했다. 투수가 좋으면 타격이 죽을 쒔고, 타자가 좋을 때는 투수가 문제였다. 선발이 좋을 때는 불펜이 꽝이었고, 중심타자가 좋을 때는 하위 타자가 쉬어가는 타임이었다. 이 팀은 투타의 전력이 둘 다 좋았던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 팀의 프런트가 일을 잘해서 미래 비전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팀은 그냥 되는대로, 당장에 보이는 대로 운영하는 팀이다. 옛날에는 선수들 돈도 짜게 주고, 선수 라커룸에 씨씨티브이나 설치하고 못돼먹었다. 그러니 이 팀은 계속 야구를 못한다.
하지만 내가 10대였던 90년대에는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는 팀이었다. 91년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는 4등으로 플레이오프 나갔고, 초등학교 5년 때인 92년도에는 우승, 중학교 2학년 때인 95년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고3 때인 99년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나는 그때 롯데는 1등은 못하지만 3등이나 4등 정도로 플레이오프는 당연히 가는 팀인 줄 알았다. 좀 못하면 8개 팀 중 5등 정도 하는. 92년도 우승과 95년 준우승이 90년대 롯데는 그래도 꽤 하는 팀이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한참 야구에 관심이 있을 때, 마침 롯데가 잘하는 시기여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나는 결국 롯데 팬이 되고 말았다.
92년 롯데 우승의 주역, 전무후무 불멸의 100완투승의 윤학길
일요일 오후 2시. 내가 초등학생 때 방에 아빠랑 나랑 동생이랑 셋이 누워 티브이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점심 먹고 나른한 시간이었다. 다 같이 야구를 보다가 5회쯤 지나가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스르륵 낮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시간이었다.
아부지는 맨날 야구를 보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아부지도 부산 사람이기에 롯데 성적은 매일 확인하고, 중요한 경기가 있으면 꼭 야구를 보셨다. 아부지는 해태를 싫어하셨다. 아니 해태가 아니라 선동렬을 정말 싫어했다. 해태가 1점이라도 이기고 있는 와중에 선동렬이 불펜으로 나오면 아이고 선동렬 나온다 하면서 아부지는 티브이를 껐다. 선동렬은 내 기억에 유독 롯데에 극강이었다. 내 기억에 90년대에 롯데 타자들이 선동렬의 공을 제대로 안타 때리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92년도 롯데의 우승은 초딩 5학년이었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우리 반에는 야구가 유행이 되었다. 주말마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는 야구를 하는 초딩들로 자리가 없었다. 나는 내 야구 실력의 향상을 위해, 특히 나의 배트 스피드 향상을 위해 집에 있던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를 칼로 갈라서 거기다 모래를 집어넣고 테이프로 밀봉을 했다. 배트 스피드 향상을 위해 그 무거운 배트를 하루에 100번씩 휘둘렀다. 그리고 주말에는 동생과 맨날 테니스 공으로 야구를 했다. 동생이 하기 싫다고 할 때까지 공을 던지라고 했다.
92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아버지는 처음에 신문지로 글러브를 만들어주었는데, 신문지 글러브가 찢어질 때까지 캐치볼을 하니까, 거기에 박스테이프를 붙여서 수선해 주셨고, 그게 또 뜯어지자 싸구려 비닐 글러브를 사주셨다. 동생하고 나는 좋다고 밖에 나가서 또 캐치볼을 했고 또 찢어졌다. 찢어져도 그냥 계속했다. 까짓 거 손 좀 아프면 어때.
90년대 후반이 지나면서, 롯데가 좀 하는 팀이라는 나의 잘못된 인식이 점점 깨지며 나는 야구와 잠시 멀어졌다. 나는 중학교 들어간 이후로는 농구에 미쳐서 마치 내가 농구부가 된 마냥 농구를 했다. 고등학교에서는 헤비메탈 듣는 거에 미쳐서 맨날 음악만 듣고 쉬는 시간에는 농구만 했다. 그래도 부산 남자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롯데의 성적은 매일매일 확인했고, 아홉시 뉴스데스크 끝나고 하는 스포츠뉴스에서 롯데 뉴스는 꼭 챙겨 봤다.
2000년대 롯데는 참 비참했다. 부산 방송에서는 매일 텅텅 비어있는 사직구장이 나왔다. 심지어 경기 중에 관중석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도 있었다. 2005년의 손민한이 팀성적과 상관없이 빛났었고, 2006년의 이대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팀은 여전히 암흑기였다.
그때 나는 세무사 공부를 하면서 주말에 동네 중학교에서 교회 형님 동생들과 같이 농구도 하고, 야구도 했다. 캐치볼도 열심히 했고, 방망이도 열심히 휘둘렀다. 거기 학생들하고 야구 시합도 했다. 재밌었다. 내 별명은 '몸은 이대호 타율은 박기혁'이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화끈했던 롯데의 중심타선
2008년부터 뭔가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고 롯데는 이전과 다른 팀이 되었다. 선발은 나름 괜찮았고, 불펜은 방화범 천국이었지만, 타선으로 박살 내는 팀이 되었다. 롯데 야구는 화끈했고, 부산 사람 구미에 맞았다. 사직구장이 꽉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기죽어있던 부산의 롯데 팬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처음으로 사직구장도 가보게 되었다. 사직구장을 가보니 정말 이거는 다른 세상이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의 가르시아 형님!!
롯데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나갔지만, 한국시리즈에는 가지도 못했다. 역시나 전력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수비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사직구장은 항상 만원이었고, 저녁에 부산 술집의 티브이에는 전부 롯데 야구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2010년 12월에 서울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사직구장 대신 잠실구장과 목동구장에서 롯데 야구를 보게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했고, 와이프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2012년까지 잘했던 기간 이후에 와이프를 데리고 야구장에 갈 때마다 와이프는 말했다. "롯데는 야구를 못해"
2012년 이후로 롯데는 또 야구를 못했다. 이전보다 더 못했다. 그 뒤로 또 암흑기가 왔고, 2017년에 잠깐 반짝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더 좋지 않았다. 항상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야구 중계를 보았다. 그래도 2024년도에는 기대가 있었다. 김태형이라는 현역 최고의 감독이 왔고, 팀에 유망주도 많았다. 솔직히 김태형 감독이 와서 안되면 이 팀은 진짜 이제 끝이라는 생각으로 올해 야구를 많이 챙겨 봤다.
새로운 롯데의 코어 전력! 윤고나황!!
올해 야구는 성적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볼만하다.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역시 타격으로 두드려 패는 것이 야구의 참맛이다. 맨날 포크볼로 되지도 않는 낚시질하던 롯데 투수들도 조금씩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게 보인다. 올해 타자 유망주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8월 들어서는 투수 교체 타이밍도 이전과 다르게 가져가면서 변화를 하려는 게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불굴의 냄비근성의 부산 롯데 아재 팬으로서 게임 지면 이것저것 따지기도 싫고 짜증부터 나는 게 현실이긴 하다. 제발 남은 경기 다 이겨서 오랜만에 5강 한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