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5 거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나를 본다
노무현의 시작이라는 책을 읽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인권 변호사로서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1979년부터 1987년까지의 일들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은 책이다. 책 제목대로 정치인 노무현의 시작을 말한다. 요새 유튜브를 보는데 쇼츠에 변호인 영화가 계속 떠서, 영화 본 지도 오래됐고 법정에서 송강호가 소리치는 장면이 자꾸 나와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을 한번 볼까 하는 마음에 보게 되었다.
1981년 부림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눈을 떴고 1985년부터는 민주화운동에 본격 투신하여 1986년부터는 사건 수임도 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하다 1987년 거제 대우조선 이석규 노동열사 장례식 건으로 구속까지 되는 과정을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과를 따지는 것과 별개로 그의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격동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으며 가진 것을 모두 던지고 어려운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꺼이 고난에 길에 뛰어들어 불나방이 되었다. 그에 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밥벌이 걱정에 목이 매여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작고 나약하다.
물론 1986년과 지금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노동운동을 해야 했던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았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지만 1986년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 노동의 가치는 사라지고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기득권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였지만 그 기득권은 사라지지 않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권력이 되었고, 그에 맞서 투쟁하던 사람들은 분열되어 흩어지고, 변절하였으며, 나이 들어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연대하여 기득권을 끌어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법으로 기득권이 되기 위해 모두를 적으로 싸운다. 있는 자들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노무현. 그가 꿈꾼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세상은 이렇게 변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인 걸까. 1986년에는 독재 정권이라는 공동의 거대한 적을 맞서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은 같이 공부하고 연대하여 싸웠지만, 지금의 기득권인 자본은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자본을 숭배하고 자본가가 되기 위해 각자도생하고 있으며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도 이럴진대 하물며 통일의 가치는 어떻겠는가. 이제 지금 이 시대에는 통일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우리의 경제적 미래는 통일에 달려있는 것이 불 보듯 뻔함에도 아무도 통일을 입 밖에 내놓지 않는다. 저 북쪽 미치광이 정권과는 별개로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통일되는 것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에게 기대어서 통일을 시도하는 것은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남쪽이나 북쪽이나 모두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서로를 이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 혹독한 80년대 대투쟁의 결실로 1987년 대통령을 처음으로 국민들이 직접 뽑았을 때 대통령이 된 것은 노태우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분열했다. 가혹한 역사는 진보와 반동을 항상 동반한다. 그것이 우리 수준인지 역사의 반동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세상에 남은 가치는 돈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돈'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치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난 무엇을 쫓아야 하는가. 나는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람인가. 거인의 삶을 살펴보며 쪼그라드는 자신을 느낀다. 네 일이나 잘하고 네 가족들이나 잘 챙기라는 자기검열의 목소리가 내 목을 조른다. 밥벌이에 목멘 용기 없는 자는 오늘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버스에 올라타 행주대교 아래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을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