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던 집.

2024.06.27 이때까지 우리가 살았던 집.

by 최성민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었는지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이 나왔다.




부산 덕천동 미닫이문이 있는 1층 단칸방 집. 집안에 화장실이 없고, 공동 화장실을 쓰던,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집 같은 그런 집. 거기 살던 생각이 났다. 딱 그때도 1988년이었다. 8살 때 어느 날 밤에 자다가 눈을 떴는데 불 꺼진 방에 바퀴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 얼굴에도 붙어 있었다. 놀라서 엄마를 깨웠었나? 꿈이었나? 지금은 사실 좀 아리까리 하다. 그 집에 바퀴벌레가 많기는 했다. 언젠가 엄마가 다락방에 사과 한 상자를 놔뒀는데 바퀴벌레가 다 먹어서 온전한 사과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뒤이어, 덕천동 그 집에서 이사 가서 살던 집 생각도 났다. 아빠랑 이모부가 손수 지었던 벽돌 가건물집. 지붕은 슬레이트였고, 집 앞으로 천막을 쳤다. 집 안에 화장실에는 타일도 없이, 시멘트 벽이 그대로 있었다. 이상하게 그때 생각이 났다.




난 그때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어젯밤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너무 답답하고 아팠다. 너무 암울하고 답답했다. 그때 내 속마음이 이런 거였는데, 그때는 애써 무시했던 건가. 누워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생각을 할까 봐 거실로 나왔다.






옛날 우리가 살았던 집들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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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이런 느낌?






1987년도 덕천1동에 살았다. 옆에 큰 잔디밭 공원이 있었고, 아버지는 유치원에 납품하는 교구사를 운영했다. 뭐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거기도 1층 단칸방이었고, 역시 미닫이문이었다. 이때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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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렇게 1층에 미닫이로 된 집이 많았다.






1988년도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 되었고, 우리는 길 건너 덕천2동으로 이사 왔다. 위에서 바퀴벌레가 많이 나오는 공용 화장실을 쓰던 집이었다. 연탄보일러였고, 부엌에 물을 데워서 목욕을 했다. 아침에 공용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볼일을 보던 기억이 난다.




1989년도 우리는 하단 이모네와 같이 살게 되었다. 하단 이모부가 3층 집에 살았고 우리가 2층에 살았다. 이전 덕천동 집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단국민학교로 전학을 왔다.




1990년대쯤 하단 이모부가 공장을 지을 계획으로 하단 하구언 쪽에 땅을 사고, 아버지와 가건물을 짓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1년 정도만 살다가 다 부수고 멋진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마당도 넓고 천막도 있고, 아버지랑 이모부가 쇠를 용접해 커다란 문을 만드는 것도 봤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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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슷한 느낌을 찾자고 하면 뭐 이런 느낌? 처마에 천막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단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공장을 크게 짓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하고, 4살, 3살짜리 아들과 딸, 서른둘의 아내를 남겨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모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나였다. 나가시면서 길에 외등을 켜라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리 집은 또 난리가 났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냥 있었다. 동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모부가 만약에 오래 살아계셨다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모부는 우리에게 거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이모부도 이상하리만큼 우리를 엄청 좋아해 주셨다.




그렇게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1년 정도만 살 계획으로 대충 지었던 집에서 우리는 7년을 살았다. 이모는 마당에 공장을 들여 세를 주었다.




공장 중에 하나는 프레스 공장이었다. 쾅쾅쾅쾅 소리가 맨날 났다. 엄청 시끄러웠는데 어떻게 살았나 싶다.






우리가 살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 구청 직원들이 와서 철거하라고 하는 걸 말리려고 엄마랑 이모랑 가서 사정사정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 집에서는 97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 보냈는데,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왔다. 이 험한 집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들을 불렀다. 그때 나는 우리 집이 놀기가 좋다고 생각했다. 마당도 있고, 천막도 있고, 거기 평상도 있어서 놀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 친구들 와서 잘 놀았는데,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들이 지나고 나서 이야기했다. 그때 네가 대단해 보였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어떻게 그런 집에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을 불렀냐고, 대단하단다.




나는 그때 진짜 몰랐다. 걔네가 이야기해서 알았다. 애들이 표정이라도 달라졌으면 알아차렸을 텐데, 그때 친구들이 착해서 표정관리를 했나 보다. 나는 속도 없이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는 그 화장실이 어떤지, 천막이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게 어떤 건지, 비 오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뭔지, 물난리가 나서 뒷 공장에 피신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네. 이러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천진난만하게 별 탈 없이 중학교를 잘 졸업하고, 97년도에 우리는 드디어 우리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이모집에 같이 사는 동안 우리 집은 만화방을 했는데, 그게 엄마 아빠가 했던 사업 중에 유일하게 잘 된 사업이었다. 그리고 이모와 같이 살면서 거주비가 안 든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여하튼 97년도 11월에 삼촌들이 와서 이삿짐을 실어주고, 나는 1톤 포터 트럭 뒤에 이삿짐과 같이 타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파트는 좋았다. 처음으로 내방이 생겼고, 처음으로 거실이, 처음으로 소파가 생겼다. 엄마 소원대로 넓은 주방이 있었다. 집이 넓으니까 이모 삼촌들이 자주 놀러 왔다. 그때 우리 집은 사랑방 같았다. 그 아파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7년 정도를 살았다.




어젯밤에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고 있다가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을 보니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나는 참 성공한 인생이다. 여기는 비 와도 천장에 물이 새지도 않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배란다 밖으로 경치도 좋다. 참 기적 같은 일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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