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뎌내기.

2023.05.25 희망은 절망속에 피는 꽃.

by 최성민

하루를 실패하고, 또 하루를 버텨낸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내 능력의 비루함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 차라리 속은 가벼울텐데

뭐라도 가진 것이 있으니 속은 더 시끄럽고, 비루함은 더 커진다.



사는데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삶의 어려움을 표현한 수사가 아니라,

너무도 명확한 사실의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는

결국 몸을 상하게 한다. 고단함을 늙어감으로 견뎌내는 것이다.



돌아보면, 엄마, 아부지의 싸움소리가, 한숨소리가 이해가 된다.

그때도 삶은 고단했고, 엄마, 아부지는 나보다 더 가진 것이 없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이를 앙다물고 억시게 버티다보니, 아버지는 버티지 못하고 먼저 가버렸고,

엄마는 그렇게 온몸이 아프다.



나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지옥이다.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려운 적이 있었나. 그 순간 그 곳이 지옥이다.

삶에는 행복이 없다. 약간의 개선이 있을 뿐이다.

삶에는 행복이 없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고통을 잠깐 동안 잊게 해주는 것뿐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수행중이다.

삶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각자 동동거리며 노력중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살아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정해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이고, 이곳은 지옥이다.

행복이란 잠시 고통을 잊게해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다.

우리는 결국 궁극적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 이 지옥을 살아내야한다.

그것이 삶이 고통이라는 전제와 동일하게 유일하게 정해진 운명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야한다. 이 고통을 견디며, 벼텨내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다. 그것의 나의 존재 이유다.



내 능력의 비루함을 견디고, 하루하루의 실패를 견디며, 나름의 칼을 갈아낼 수 있다면,

일말의 개선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희망은 절망속에 피는 꽃이다.

몇만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생명은 태어나고 꽃은 피어난다.

누군가는 죽어 사라지고, 누군가는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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