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진첩

2025.08.22

by 최성민


이번 여름휴가로 부산 고향 집으로 갔다. 딸내미에게 아빠의 일곱 살 때를 보여주고 싶어서 고향 집에 가면 집에 있는 앨범을 보여줘야지 생각했었다.




집에 도착한 날 그날 저녁에 바로 앨범을 꺼내보았다. 마침 이모네 식구들도 와있었다. 낯장이 다 떨어져 너덜너덜 해지는 사진첩을 꺼내서 다 같이 보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그 사진첩을 어렸을 때부터 보아서 크게 색다르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모네 식구들은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진들이 많이 있다며 놀라워했다.




사촌 동생들의 갓난쟁이 시절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 사진이 다 있었다. 우리는 어렸을 적 이모네와 옆집에서 동생들과 같이 형제처럼 살았기 때문에 같이 보낸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사촌 동생들과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나는 그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었는데 사촌 동생들은 자기네 어렸을 때 사진을 이모네 앨범에서 발견하는 것이 신기한 듯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이 본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사진이라는 것을 연신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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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좀 놀랐다. 이 사진들이 우리 집에만 있는 거라고? 그럼 이 사진들을 누가 다 찍었던 것이지? 이모와 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모부가 찍은 거란다. 그러고 보니 집에 아주 낡은 필름 카메라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아니 이 사진들을 아버지가 다 찍은 거라고? 나는 한 번도 이 사진을 누가 찍은 것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사진에는 아버지가 거의 없었다. 거기에는 우리 형제의 어렸을 때부터 이모, 삼촌들의 결혼식, 증조할아버지의 환갑잔치, 가을마다 갔던 대추 가을걷이, 명절 때 외갓집에서 찍은 사진들, 아버지가 우리 형제와 사촌 동생 들을 데리고 박물관으로, 을숙도로 어린이대공원으로 놀러 다녔던 사진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아버지는 없고, 가족들의 모습만 있었다. 가족들의 역사의 순간에 아버지는 그 사진의 맞은편에서 우리를 찍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 멀리 가시고 이 사진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서 옷장 서랍 속에 처박혀있었다.




이제 결혼하고 딸내미를 낳아 데리고 온 사촌 동생의 갓난쟁이적 모습이 지금 본인의 딸내미와 닮았냐를 두고 가족들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사진들을 올라가기 전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 쿠팡에서 앨범을 주문했고, 다음날 앨범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나름의 사건의 순서대로 구성하고 싶어서 아버지의 총각 때 사진을 시작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 신혼여행 사진 등을 차례대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시간대별로 나름 신경 써서 했는데,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 내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다. 한 세 시간 정도 되니까 얼추 정리가 되었다. 나와 내 동생 유치원, 학교 수학여행 단체사진은 다 정리하지 못했다. 그건 다음에 와서 또 정리하기로 하고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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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나름의 역사의 순간에 그 순간을 기억해 주기 위해 맞은편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기에는 81년 엄마, 아버지와, 88년 8살의 나와, 엄마, 동생들 이모들이 있고, 92년의 우리 가족들과 97년의 엄마와 동생과 이모 삼촌들이 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풍파들이 숨겨져있다. 그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우리가 되었다. 그 순간들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진 속에도 있다. 이 사진들 속에서 나는 세무사도 아니고 애 아빠도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해서 마냥 신난 꼬맹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는 영락공원을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여기에 없다.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가셨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아니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아버지는 우리와 항상 함께 있었다. 우리 맞은편에서 우리를 찍어주는 아버지가 사진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 뒤에 우리가 이 사진들을 보고 예전을 기억하며 이야기할 줄 알았을까.




이 사진들이 우리 집에만 있는 것이라니, 더욱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잘 정리해서 다른 가족들에게도 한번 보여주고 싶다. 사진이 잘 남아있어서 다행이고, 이번에 잘 정리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휴가 때 가장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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