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진심으로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조직 생활은 완벽히 팀플이다.
학창 시절에 조별과제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러 명이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회사에서는 매일 조별과제를 하고 있는 것이니 퇴사 욕구가 치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공유 없이 혼자 알아서 하려는 사람, 적극적으로 참여도 안 하고 핑계만 되는 사람, 똑같은 시간에 준비해도 늘 결과가 엉성한 사람 등.
잘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은 일 때문이 아니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당한 활력과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직장생활의 10년가량은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을 했고, 언제나 업무에서 오는 부담감과 막연한 두려움이 공존했지만, 그것을 해결하였을 때 느끼는 묘한 성취의 쾌감이 이런 생활을 멈출 수 없게 하였다.
진짜 때려치울뻔한 순간, 문제는 바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이다.
1. 상사 코스프레하는 동료, 공감대 형성이 답!
회사는 대부분 워터풀 방식으로 업무가 내려온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지만 결국 윗선의 허락이 떨어져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흔하게 하는 말 중에 "위에서 하라잖아"라는 말은 애매한 순간 논쟁을 종결시키는 만능 치트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공감대 형성"의 과정을 생략하고 치트키만 사용하기도 한다. 빡치는 순간은 바로 여기서 온다.
처음부터 일을 그렇게 배워왔거나, 협업에 대한 매너가 없는 경우 실무자들을 모아 놓고 마치 본인이 의사결정권자인 듯 기-승-전-결 이것만 해라는 식으로 실행 방향을 통보한다. 불리할 땐 가볍게 꺼내 드는 '나도 시켜서 하는 거야'라는 방패와 함께.
팀플에서 중요한 것은 각 역할에서 최대치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이런 과제가 생성되었고, 어떤 수준의 결과가 요구되는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이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능동과 수동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니까.
시켜서 하는 건 과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무례한 사람과 협업하게 되었다면, 과제 도출 히스토리와 예상 목표를 정확하게 공유할 것을 요청하자. 기껏 밤새 일했는데 겨우 이런 수준으로 만들었냐는 질책을 싸잡아 듣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나 스스로도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일정 관계 상 또는 다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그냥 적당히 필요한 사실만 공유해왔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조직에서 역할의 순서는 있어도 갑-을-병-정은 없다. 역할에 대한 존중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다. 내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면 타인을 먼저 리스펙(Respect) 하자.
2. 퀄리티의 구멍, 원인을 찾자!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업무 퀄리티가 떨어지는 동료를 만나게 된다. 체크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엉성하게 처리를 하여 결과적으로 전체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상황. 나 같은 경우 이럴 때 가장 일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밖에 못하지' 큰소리로 화를 내고 싶은 맘을 꾹 참아 속병을 앓거나, 반대로 못 참고 감정적으로 표현해버리면 후련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종일 계속된다. 한번 일하고 끝낼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이런 스트레스를 받을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한 기분이다.
이런 경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되는데 실제로 실무 연차가 오래되지 않아 정말로 미숙한 경우이거나, 조직에서의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나름대로 처세술(?)을 갖춘 상황으로 나눠볼 수 있다.
실무 역량이 아직 미숙한 연차의 동료라면, 감정적인 표현이나 현상에 대한 질책보다는 객관적인 실수 요소를 담백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누구나 실수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다음 또 한 번 협업하게 되었을 때 절대로 업무 능력을 의심하거나 노파심으로 잦은 체크를 하지 않아야 한다. 믿음을 받으면 책임감이 생기고, 그만큼 능동적인 동기부여가 된다. 비록 업무 성과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열정까지 무시하지는 말자.
어느 정도 연차와 직급을 가졌음에도 업무 퀄리티가 낮은 경우라면, 일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일을 해오며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부족했거나, 종종 본인의 주도성을 무시당했을 수도 있다. 잦은 실수에 대한 책망으로 위축되어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하거나, 반대로 공격적인 태세를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조금 더 업무 결정권을 위임해 보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였는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동일한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일방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수정 방향을 요청하기보다 '당신'이 제안한 방식으로 '우리'가 협의를 하였고, 당신의 '전문성' 덕분에 해결하였다는 마음을 전달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한때 주연을 맡지만, 어느 날 갑자기 조연이 되기도 한다. 모든 과정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함이지 주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모든 성과를 내 기준에 부합시키려 애쓰지 말고 각자가 최선으로 협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흔히 저 사람한테 요청하느니 내가 하는 게 속 편하지 라고 단정 지을 때가 있는데 나 혼자 하는 의사 결정은 결국 내 수준으로 밖에 도출이 안된다. 스스로를 스티브 잡스만큼 통찰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집단지성에 더 집중해보자. 너른 마음으로 전체를 보는 안목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사실, 나도 여전히 너무나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밤마다 부끄러움에 끝없이 자책한다.)
3. 뒷담화 빌런
뒷담화를 자주 하는 사람은 실제로 스스로 가진 무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나서서 당당하게 변화를 요구할 자신이나 믿을 구석이 없기 때문에 민심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잘 나가는 리더들이나 메인 플레이어가 뒷담화를 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정작 불만을 들어주는 자리를 만들어도 입을 꾹 닫고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다시 뒷담화를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믿고 거르자. 가만히 들어주거나 적절한 반응해주는 것 역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 회사에서는 앞에서는 웃으며 참고, 뒤에서 뒷담화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생활인 것처럼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것이야 말로 노예근성이라고 생각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면 뒷담화 뒤에 숨는 것보다 나의 체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 뒷담화에 피해를 봤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자. 기죽어 숨지 말고 오히려 당당한 나의 모습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뒷담화로 만들어진 프레임은 그렇게 벗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