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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문 May 09. 2022

바다와 나비

-편지-

나의 본질을 어쩌면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인지도 모른다.     


그 심연은 너무나도 어둡고 깊어서 단 한줄기의 볕조차 숨어들 공간이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로지 암흑. 암흑. 암흑. 그래서 그곳에는 일말의 온기 없이도 살 수 있는 것들, (예컨대 좀비라던가) 만이 둥지를 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았다. 은 빛과, 어둠은 어둠과 공존할 뿐이니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햇살을 품은 모든 것들은 햇살이 되고자 한다. 마치 기어이 잎을 피워내는 꽃잎처럼. 바람에 치이고 빗물에 떨어지면서도 땅속에서 틔워낼 희망을 품는다. 그리하여 세상을 덮은 새하얀 적막 속에서도 끝끝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빛은 언제나 빛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일까.     


어둠을 생각하면 나는 남자를 떠올린다. 정확히는 남자와 여자를 떠올린다. 어둠과 남녀가 공명하는 것은 어쩌면 남녀는 어둠속에서 만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둠은 그 어떤 죄악도 수치도 덮어주기 때문에.     

침대위의 어둠은 의외로 많은 것들을 토해내곤 한다. 흔히 후희라고 하지 않나, 뭐 그런 것들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나도 너도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진실을 빛을 부끄러워 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만을 탐닉했다. 그건 어쩌면 너도, 나도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가진 심연이 너무나도 깊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의 과거와 상처가, 또한 나의 과거와 상처도, 어둠속에서 흩날렸다. 민들레 꽃씨처럼. 그래서,  봄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날아간 꽃씨는 어디에 싹을 틔울까?

바다? 산? 아니야 그렇게 쉬운거 말고 스위스! 스위스? 응 스위스! 스위스까지 날아갈거야, 바다도 건너고 산도 건너고 알프스 산맥에 박혀있는 한국산 민들레 꽃이 될거야. 그러면 스위스랑 한국은 하나가 되는거야!

작은 미소.

너는 믿었다. 믿지 않으면 너무나도 외로웠기에 믿어야만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신앙이었다.     


그러나 음습한 습지, 끝없는 절벽. 거기에는 불시착할 땅조차 없다는 것을 너는 알았을까.     

만약 알았다면 조금쯤은 달라졌을까.     

너에게 닿을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커다란 심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도.     


결국, 어둠은 어둠을 사랑했으니 끝은 언제나 미안해가 되겠지. 미안하니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이겠지. 만날수 없다는건 다시 추워진다는 것이겠지.


줄곧, 나비일 줄 알았다. 심연과 심연을 가르지르는 날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비가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날개가 찢겨버린 걸까. 어쨋거나 나는 추락했다. 결국엔 우리를 가로지른 그 심연의 사이로. 그러니 소망이 있다면,


부디, 그대는 나비를 만나길.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 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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