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쇼핑백 속 휴대폰, 주인 만나 내가 한 일

잃어버린 사람은 초등학생 여자 아이였어요.

by 오즈의 마법사

며칠 전,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왼쪽 무릎이 삐걱거렸다. 뼈가 맞부딪히는 듯한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산책을 거르지 않으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추워진 날씨를 핑계로 걷는 걸 미뤄 온 탓이었다. 게을러진 며칠이 고스란히 무릎 통증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오전에는 동화 과제를 준비하느라 밖에 나갈 틈이 없었다. 오후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지만 무릎 상태는 여전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날씨를 확인했다. 영상 7도, 바람은 잔잔했고 하늘은 높고 맑았다. 해지기 전 잠깐이라도 걷자는 생각에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산책길은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를 감싸는 둘레길이다. 한 바퀴에 20분 남짓. 오늘은 두 바퀴만 돌기로 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십여 분쯤 지나자 무릎의 삐걱거림도 한결 누그러졌다. 찬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분이 오랜만에 상쾌했다.


옆 아파트 쪽으로 접어들 무렵,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산책하는 주민을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았나 싶었는데, 곧 스마트폰 벨소리라는 걸 알게 됐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보니 앙상한 나뭇가지에 흰 종이가방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안에는 스마트폰 한 대가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 순간, 누군가 잃어버린 것임을 직감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연락하려는 순간, 다시 벨이 울렸다. 받자 앳된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거기 어디예요?”

“OO 아파트 옆 산책로야. 전화기 잃어버렸니?”

“네. 그런데 그 아파트는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편의점 앞에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도 그 아파트에 살아. 내가 갖다 줄게. 조금만 기다려.”


원래는 산책로를 다 돌고 후문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아이가 얼마나 초조할지 떠올라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에 전화가 다시 울렸다. 화면에는 ‘사랑하는 우리 엄마’라는 이름이 떴다. 아이 엄마였다. 내가 전화기를 주운 상황을 설명하자,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어떤 할머니가 전화해서, 돈을 보내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했어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까 그 뒤로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화기 하나를 잃어버린 일로 아이와 부모가 이런 불안부터 마주해야 하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스미싱과 보이스피싱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 아이의 일이라 더 두려웠을 것이다. 직장에 있어 당장 달려올 수도 없다는 엄마의 말에 불안함이 전화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곧 아이를 만나 돌려주겠다고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편의점 앞에는 여자아이 둘이 몸을 웅크린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마나 애타게 전화기를 찾았을지 짐작이 갔다. 아이에게 흰 종이가방을 건네며 물었다.


“어떻게 하다가 잃어버렸니?”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떨어졌나 봐요.”


아이 옆에는 친구가 함께 있었다. 전화기를 찾으려면 다른 전화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친구 집으로 가 도움을 청한 모양이었다. 아이 친구는 한겨울인데도 반바지 차림이었다.


“얘들아, 춥지? 잠깐 들어가서 따뜻한 거 하나 마시자.”


아이들은 극구 사양했지만, 함께 편의점에 들어갔다. 고르라고 하자 아이들이 집은 건 초콜릿과 젤리였다. 순간 이것을 좋아하는 손자가 떠올라 픽 웃음이 났다. 역시 아이들다운 선택이었다.



1000010095(1).jpg 아이들이 고른 초콜릿과 비타민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돌아갔다. 휴대전화를 되찾았다는 안도감보다, 그 과정에서 겪었을 불안이 얼마나 컸을지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https://omn.kr/2gpk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공지능이 추천한 ‘3초 삼겹살’ 찜질방에서 먹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