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금산 황토 숯가마
“대구 근교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찜질방이 있는지 알아봐 줘.”
지난 4일, 남편이 오랜만에 쉬는 일요일이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한 곳에서 쉬는 걸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일부러 피하는 편이다.
지난해 12월 초, 청도에 있는 알미뜸 찜질방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곳을 떠올렸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 문득 인공지능이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 말로는 ‘쳇지피티’라 부르는 그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다. 인공지능이 찾아준 곳은 ‘고령 금산 황토 숯가마’였다. 3초 삼겹살을 숯가마에서 초벌해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는 안내를 해 주었다. 불 빼는 날이 목요일과 일요일이라는 정보도 덧붙였다.
“자기야, 고령에 삼겹살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숯가마 찜질방이 있다는데 거기 가 볼까?”
“삼겹살? 진짜? 바로 가자.”
다시 인공지능에게 전화번호를 물어 영업 중인지 확인한 뒤 길을 나섰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차를 타고 나란히 앉으면 우리는 늘 말이 많아진다. 집에서는 쉽게 꺼내지 못했던 속마음을 나누는 시간, 그 시간이 나는 좋다.
4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은 고령 외곽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인가는 드물었지만 넓은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이 가득 찼다. 매표소는 식당과 함께 있었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삼겹살을 굽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먼저 탈의실에서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삼겹살을 주문하였다. 식당의 벽면에는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수 이찬원 사진이었다. ‘미스터트롯 미’에 오르며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대구의 아들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달서구에 본가가 있다는 사실도 떠올라 괜히 더 반가웠다. 알고 보니 그곳은 이찬원 가수의 고모가 운영하는 찜질방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보내온 사진과 지역명이 적힌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님이 많았지만 주문한 고기는 금세 나왔다. 숯가마에서 단 몇 초간 초벌한 삼겹살은 숯 냄새를 온몸에 머금고 있었다. 식탁 위 불판에 올려 데우듯 살짝 익혀 먹으면 된다. 기름기가 쏙 빠진 삼겹살 맛은 집에서 프라이팬에 튀기듯 구워 먹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3초 삼겹살은 숯가마에서 하루 이상 숯을 태운 뒤 불을 빼고, 300~400도 이상 되는 열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고기를 단시간에 구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간 날이 일요일이라 3초 삼겹살 체험이 가능했다.
식당을 나서니 마당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숯가마는 온도에 따라 저온, 중온, 고온, 초고온으로 나뉘어 있었다. 휴일이어서 가족 단위, 친구끼리 온 사람들까지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 쉼을 즐기러 온 듯 보였다. 너덧 살 아이들이 몸보다 큰 찜질복을 입고 저온 가마로 오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식당에서 벨이 울리면 아저씨가 펄펄 끓는 숯을 통에 담아 식당으로 나르고,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삽 위에 삼겹살을 올려 불을 뺀 숯가마에서 단 몇 초 만에 초벌구이를 해냈다. 내가 먹은 고기도 바로 저 방식이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다시 군침이 돌았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삼겹살을 굽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사장님, 오늘 불을 빼셨는데 얼마 지나야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요?”
“이틀은 지나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틀 후에 이 가마가 초고온이 되겠네요?”
그날 나는 초고온 숯가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바닥에 나무를 깔아두었지만, 나막신이 없으면 너무 뜨거워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워 보였다. 고온가마만 해도 선뜻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찜질방을 나왔다. 숯가마 찜질방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십수 년 전에는 종종 다니던 곳이었지만, 요즘은 이런 찜질방이 거의 사라졌다. 3초 삼겹살 역시 이름만 들어보았지 직접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겨울엔 지글지글 끓는 황토 숯가마에서 몸을 지지며 지친 마음마저 데우는 것이 최고다. 숯가마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도 오래 남는다. 나이가 들어서 푼수가 된 것인지, 원래 내 안에 있던 친화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추운 이 겨울 숯가마로의 나들이는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