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작가의 <삶은 도서관>을 읽고
이 책을 사 둔 지는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 버튼을 눌렀지만, 학기 중이라는 핑계로 책을 펼치지 못했다. 책장은 ‘나 좀 봐달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나는 애써 외면한 채 지냈다. 방학이 되고서도 미루었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결국, 12월 말이 되어서야 <삶은 도서관>을 손에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제9회 경기히든 작가로 선정되었고,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광고 홍보 일을 하다가 공공도서관에 입사해 도서관 노동자로 살아가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유쾌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1부 웃음의 서가
우리의 청력은 점점 퇴화하고 있다. 나이 듦이란 그런 것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난청’ ‘보청기’ 같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대형 마트의 보청기 부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 그래. 정 안되면 보청기라도 껴야지. 처음 돋보기를 쓰고 샴푸 성분까지 또렷하게 읽어내며 의기양양하게 장바구니에 담던 그 날의 환희를 떠올려본다. <‘젓가락 살인’은 우리 도서관에 없습니다. p18 >
젓가락 ‘달인’을 ‘살인’으로 잘못 들은 데서 비롯된 이야기이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읽는 내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나 역시 사십 대 중반 어느 날부터 글씨가 잘 안 보여 돋보기를 맞췄고,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요?’를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노안과 난청은 어느 날 문득 찾아와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작가의 에피소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2부 인생의 서가
굽은 등은 데워진 벽에 기대고, 양손은 유모차 손잡이를 꼭 쥔 채다. 얼굴은 해를 향했다가 서로를 마주 본다. 겨울 햇살을 햅쌀처럼 꼭꼭 씹어 삼키니 속이 든든해져 간만에 뱃구레가 다 호사를 누린다.
<할머니들의 슬기로운 도서관 생활 p80>
도서관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한 할머니들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연골도 성치 않은 몸으로 그곳을 명당으로 점찍은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나 또한 자주 가는 도서관에 그런 자리가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아직은 이르다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를 대비해 도서관 햇빛 맛집 하나쯤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증과 중증 사이를 오가는 할머니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젊을 때 워낙 책을 좋아해 도서관에 가는 일과를 즐기신다는 할머니. 지적이고 착한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나도 그렇게 우아하게 늙고 싶어졌다.
3부 서가의 안쪽
온라인 회원가입이 안된다며 잔뜩 화가 난 이용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성별’을 입력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이상한 메시지만 뜬다는 것이었다. 유선상으로는 확인이 어려우니 도서관에 방문하실 때 도움을 드리겠다고 정중히 안내했다. <올바른 성별을 입력하세요. p131>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칸에 ‘1’이 아닌 ‘남’이라고 입력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연은 웃음을 자아냈다. 이용자의 당황스러움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교실을 다니려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등록을 해야 한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맞지 않아 다급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찾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력은 희미해지고 기계는 점점 복잡해지는 나이에 도서관 직원들의 도움은 가뭄의 단비처럼 고마웠다. 도서관은 책만 빌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씩 돕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4부 추억의 서가
짜장면 원정대는 성공의 깃발을 유치원 가방에 꽂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양파처럼 매운 엄마의 잔소리였다. 나는 노란 단무지처럼 노랗게 질려, 다시 얌전한 아이가 되겠다는 반성문을 썼다. <1.5톤의 짜장면 p175>
일곱 살 유치원생이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신작로 두 개를 건너간 이야기. 저자는 이를 ‘욕망의 쟁취’라 이름 붙인다. 나는 내가 짜장면을 처음 먹었던 날을 떠올려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60년대에 내가 살던 지역에 유치원이 있었던가? 아~ 옛날이여!
5부 꿈의 서가
그렇게 남편의 의심이 정점에 달하려는 순간, 내가 먼저 고백했다. 오랜만에 내게 찾아오는 설레는 감정, 이 주체할 수 없는 도파민에 대해. “여보, 나 사실 글 써.” p218
서로를 향해 애쓰고, 각자의 글에 애쓰는 우리 ‘애쓰는’ 중년 부부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도서관의 낮 X 부부의 밤 p221>
남편에게 글을 쓴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은 미소를 짓게 한다. 알고 보니 저자의 남편 역시 블로그에 글을 써왔다는 반전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남편에게 가장 먼저 알렸지만, 한동안 그는 무심했다. 그러다 우연히 내 글을 읽고는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저자의 부부가 함께 글을 쓰며 서로의 글에 조언해 주는 사이라면 우리 부부는 작가와 1호 팬 사이이다. 글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은 계속 쓰게 하는 힘이 된다.
도서관은 저자에게 아주 유쾌한 곳이다. 책을 읽으며 내 일 인양 공감이 되고 때론 재미있어서 큰 소리로 웃으며 읽었다. <삶은 도서관> 속 도서관은 절대 조용하지 않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책과 사람이 악수하는 공간이다. 인생의 축소판 같은 그곳에서 저자는 다시 쓰는 기쁨을 발견한다. 시끌시끌하면서도 다정한 그 앞날을 응원하게 된다. 도서관의 일상은 말 그대로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