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동료 상담사 한 분과 밥을 먹었다. 나이가 같아 정서의 결도 비슷했고, 우리는 4년을 함께 근무하며 한 번도 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거리가 편안했다. 어느 날 그가 먼저 연락해 왔다. 같이 밥을 먹자고. 요즘은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제안해 보고, 마음이 가는 사람과 시간을 내어 보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도전이고 과제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그 말이 더 귀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목이 아플 만큼 오래 이야기했다. 같은 일을 하니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내담자 이야기, 상담 장면에서의 망설임, 전문가로서의 책임과 불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렸다. 최근 깊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꺼내며 나의 방향성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는 먼저 내 고민의 이유부터 물어봐주었다. 단정하거나 판단하지 않았고, 내 말을 충분히 들은 뒤에야 자신의 생각을 건넸다. 그 말이 정답처럼 들렸던 이유는 사실 여부를 떠나 나를 긍정적으로 객관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고, 동시에 보완할 지점도 분명했다. 긍정적인 격려 위에 한두 가지 제안을 덧붙이는 방식. 불안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성장의 방향을 짚어 주는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마치 레드카펫 위를 걷는 사람처럼 나다움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흔히 팩트체크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어떤 사실은 팩트폭력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객관적인 말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 부정적인 정서를 품고 있을 때, 사람은 사실보다 먼저 다친다.
그날의 대화는 달랐다. 무한한 긍정도 아니었고, 무작정 위로하는 말도 아니었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마음의 결이 훨씬 부드러웠고, 그 안에서 나는 편안함을 찾았다.
대화의 끝에서 나는 말했다.
“오늘 네가 해준 말들은 간직하고 싶어. 고마워.”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도 참 나답다고.
이 말이 나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그래, 그 말이 나를 보여주는 말이란다.
… 그렇구나.
나답다.
나는 아직 나의 나다움을 분명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언을 구하고, 그 말을 귀하게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이미 나다운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나의 반응마저도 내 모습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는 나를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언어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다움을 찾는 일이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숙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가 어떤 거울이 되어주느냐에 따라, 나다움은 더 또렷하게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참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