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어른답게, 위로는 아이처럼

by nemo




사업자로 보낸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올해 처음 마주한 부가가치세 신고는 생경한 벽이었다. 굿즈를 제작하며 일반과세자로 전환한 뒤 맞이한 첫 숙제. 예전처럼 홈택스에서 클릭 몇 번이면 끝날 거라 믿었던 안일함이 발목을 잡았다. 뒤늦게 열어본 화면 속 매입과 매출 정보는 텅 비어 있었다.


환급받아야 할 금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당장 메워야 할 우리 집 생활비, 아이의 학원비, 혹은 누군가의 수고가 담긴 구체적인 삶의 단위였다. 수백만 원이 공중으로 증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덜컥 뒷덜미를 잡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주던 남편의 음성이 점점 가팔라지더니, 이내 수화기 너머로 날 선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자책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니, "미안하다"는 당연한 말조차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목구멍에 걸렸다.


툭.


전화가 끊긴 뒤, 멍하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엉킨 실타래를 한 올씩 뽑아내듯, 복잡한 증빙 자료들을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건조한 숫자들과 씨름하기를 두 시간. 겨우 신고를 마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말 미안해.’


전송 버튼을 누르는 찰나, 참았던 눈물이 왈칵 번졌다. 내 실수였고, 수습도 내 손으로 마쳤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걸까.


“처음이면 그럴 수 있지.”


“수고했어, 고생했네.”


사실은 그 담백한 한마디가 간절했다. 잘못을 저지른 주제에 위로까지 바라는 내가 염치없어 보였지만, 마음 안에서는 눈물이 자꾸 출렁거렸다. 몸은 서른 중반의 어른인데, 마음은 구석에 몰린 다섯 살 아이가 된 기분. 내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히려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며 등을 쓸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사과는 어른답게 했는데, 위로는 왜 이렇게 아이처럼 받고 싶은 걸까. 어른의 사과 뒤에는 반드시 어른의 인내만 뒤따라야 하는 걸까.


어쩌면 ‘어른답게’라는 말은, 아이처럼 안아달라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가장 단단한 포장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머물 때보다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나는 내가 나를 위로하는 법도 알지만, 이번에는 관계 안에서 이 매듭을 풀어보기로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배운 정답은 ‘나의 욕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삶은 가끔 정답보다 ‘결’을 따라갈 때 더 부드럽게 흐른다. 내 마음을 설명해서 설득하는 대신, 상대의 마음이 편안하게 내려앉을 자리를 먼저 마련해보기로 했다.


우리 집 남자는 떡국을 좋아한다. 국물을 머금어 두 배로 불어버린 떡조차 냄비 바닥까지 긁어 먹을 정도로. 퇴근 시간에 맞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식탁에 올렸다. 말없이 한 술 뜨는 그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환급 못 받으면 어떡하지. 나 아직도 조금 걱정돼.”


그는 떡국 한 입을 더 우물거리더니 무심하게 툭 던졌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그게 그렇게 걱정됐어? 괜찮아.”


참, 나도. 그게 뭐라고.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의 줄이 그 한마디에 스르르 풀렸다. 그날 나는 알았다. 아이처럼 울며 안아달라고 보채지 않아도, 나의 책임을 다한 뒤 조용히 온기를 건네면 위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온다는 것을. 다정함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가장 깊은 곳에 닿는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같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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