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흔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코코코, 눈!
눈눈눈, 코!
온 얼굴 살살살 장난끼 가득
통통통 엄마 목소리
까르르, 까르르
숨이 꼴까닥 꼬마의 웃음소리
캄캄한 밤에도
환하게 다가오는
커다란 해바라기
엄마따라 웃음지며
온 세상이 우리 엄마
엄마, 난 말이지
엄마의 흔적으로
세상을 살아가
캄캄한 어둠 속
차가운 바닥이 삶을 시려와도,
엄마의 세월이
나를 지워가도,
내 인생은
엄마의 흔적으로
계속 빛날거야.
나는 열한 살 때 엄마와 헤어졌다.
그 이후로 아빠와 살았고, 어른이 되어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도 우리 엄마는 내 곁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너무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손을 잡고 코코코 놀이를 하고, 쎄쎄쎄를 하며 웃고,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손길까지.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는데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물론 육아는 쉽지 않았다. 불안했고, 두려웠고, 매번 미숙했다. 그럼에도 때로는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능숙하게 해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맛있는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아이를 잘 키워내고 있었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개인적으로 마음이 많이 무너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불안이 커졌고, 감정은 쉽게흔들렸다. 그때 나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안의 외로움과 상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엄마에게서 온 것이라는 걸. 그리고 동시에 내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잘 놀아주고,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가는 그 힘 역시 엄마에게서 왔다는 것도.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하루 종일 일해야 했던 엄마. 머리만 대면 잠들 만큼 치열하게 살던 그 시절에도 잠들기 전 십 분, 이십 분.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불 속에서 마주 보고
“코코코, 눈눈눈, 입.”
하며 놀아주던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까르르 웃었다.
쎄쎄쎄 놀이를 하던 기억도, 학교에서 놀다 해 질 무렵 집으로 뛰어가면 엄마가 “짜잔” 하고 밥솥 뒤집어 터져나왔던 달콤한 카스테라 향도 모두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열아홉 살 차이가 난다. 엄마는 아주 젊었다. 친구들이 밖으로 떠돌 때 엄마는 늘 나와 함께였다.
그 다정함으로 나는 엄마가 되었고,
그 다정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지금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문득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귀여운 사람이야.”
커다랗고, 위대하고, 우주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조금은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너무 무겁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이십대를 지나 이제 나는 안다. 나는 엄마의 다정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생각해 본다. 내 나이였을 때,
그때 엄마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