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주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벨이 울린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을 보니, 내가 이사 오기 전 함께 독서 모임을 했던 분이었다.
그때 나는 모임장이었고, 심리 관련 책을 읽는 자리였기 때문에 서로의 가정사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나는 상담을 막 배우던 초보자였고, 연습 삼아 무료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그분 역시 나의 성장을 응원해 주던 사람이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관계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와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것저것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통화가 길어졌다. 남편과 아들의 근황까지 묻고 답하다 전화를 끊었다.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고맙고 반가웠다.
몇 달이 지나 다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본격적인 질문이 있다고 했다.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안 작성과 진행 방식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마침 그때 나는 크게 바쁘지 않았고, 질문에 답하다 보니 이야기가 또 길어졌다. 그렇게 서너 번 정도 비슷한 통화가 이어졌다.
2~3년 사이 다섯 번, 여섯 번쯤 되었을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유난히 길었던 통화의 흐름은 늘 비슷했다. 그분이 궁금한 것을 묻고, 나는 성실히 답하는 구조였다. 어느 순간부터 피로감이 쌓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그 이름이 뜨면, 또 꽤 긴 시간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살짝 부담이 되었다.
책이나 강연, 영상에서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분이 떠올랐다. 마음 한켠에 작은 원망 같은 감정이 생겼다. 이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 연락이 잦아지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통화를 짧게 마무리한 적이 몇 번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다른 계기로 마음이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 출판사 작가 한 분이 사무실에 방문한 날이었다. 그분과는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유난히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편인데, 그날은 나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번 만남에서도 그분은 내 말을 아주 잘 들어주었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인정하고 긍정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신이 나서 더 많은 말을 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이 작가님을 여러 번 만나다 보면, 혹시 이분에게 나역시도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겠구나. 너무 잘 들어줘서 고맙기도 했고, 동시에 내 발화량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미안함도 들었다.
그 순간, 예전에 통화하던 그 지인이 떠올랐다.
그분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말을 하려고 전화했던 건 아니었을지 모른다. 내가 질문을 해주고,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으로 해석해 버렸던 것이다.
아,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입장에서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때 품었던 원망도, 지금 떠오른 미안함도 모두 혼자만의 오해로 담백하게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대화에서 너무 잘 들어주는 것, 지나치게 맞장구를 치는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대가 많은 말을 하고 있다면, 어쩌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과하게 수용하고 있는 건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관계를 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들어주는 역할만 할 필요는 없었다. 통화 시간도 정하고, 용건은 담백하게 묻고, 나 역시 필요할 때는 부탁을 하며 상대에게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 그런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서 뒤죽박죽 은근 살짝 불편하게 얽혀 있던 마음들이 이 경험을 통해 또렷하게 정리되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이렇게 정리가 된다.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다.
아마 이게 내 성격이고,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일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고, 그 작가님도 좋은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마 그 지인도 좋은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듣는 방식도 조금은 더 의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