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연습하는 말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들

by nemo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나는 15년 전의 나를 떠올려 본다. 아이가 세 살 무렵, 나는 매주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별처럼 빛나는 아이의 웃음에 세상을 다 얻은 듯 벅차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들이닥치는 정체 모를 슬픔에 잠식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날들이 반복되던 때였다. 어떻게든 나를, 그리고 우리를 살리고 싶었다.


상담실은 나에게 거울이자 품이었다. 상담사의 표정 하나,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다가도 이내 엄마 품에 안긴 듯 고요해졌다. 그곳에서 나는 내 감정의 기원을 추적하고, 얼어붙었던 마음의 온기를 조금씩 되찾아갔다. 특히 나를 숨 쉬게 했던 건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만히 안아주는 '말'들이었다.


“아, 그랬군요.”


“그럴 수 있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하지만 정작 내 삶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포근한 이불이 되어 나를 덮어주었다. 상담을 통해 경험한 '공감'과 '수용'은 마치 중독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도 이 따뜻한 감각을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와 마주 앉으면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었다. 상담실에서 느꼈던 그 충만함은 간데없고, 익숙하고 거친 옛 언어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렇게 간단한 말인데 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자책하던 어느 날, 아이가 ‘엄마’라는 첫 문장을 뱉기 위해 수만 번의 옹알이를 연습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어른인 나에게도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종이 여러 장에 큼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아~ 그렇구나.”, “정말 속상했겠네.”


그리고 그 종이들을 식탁 쪽 아이의 등 뒤 벽면에 나란히 붙였다. 나만의 ‘공감 커닝 페이퍼’였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누나와 다투고 잔뜩 부풀어 오른 마음을 쏟아내는 아이 앞에서 나는 몹시 분주해졌다. 시선은 아이의 눈에 두었다가, 슬쩍 벽면의 메모를 훑었다가, 다시 적당한 단어를 골라 입으로 옮겼다.


“아, 그랬구나. 나라도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


아이의 눈을 맞추랴, 벽을 보랴 분주하게 움직이던 내 눈동자가 결국 아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이는 뒤를 돌아 벽을 보더니 물었다.


“엄마, 왜 자꾸 저기를 봐?”


나는 쑥스럽지만 진솔하게 대답했다.


“응, 엄마가 너랑 대화할 때 네 마음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공부했는데, 자꾸 까먹어서 벽에 붙여놨어.”


아이는 잠시 벽을 바라보다가 이내 머뭇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에 그때의 기억을 물었을 때, 아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짐작건대 엄마의 그 서툰 노력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의 공기로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이의 마음이 ‘끄덕’하고 반응하던 그 찰나의 감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이에게 공감을 ‘가르치기’보다, 내가 먼저 공감하려 애쓰는 그 뒷모습 자체가 이미 존중의 메시지였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상담사가 되었다. 이제는 양육자 교육 현장에서 말한다. 교육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를 위해 애쓰는 그 마음 자체가 상대의 닫힌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가 된다고 말이다.


완벽한 언어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신과 더 잘 지내고 싶다는 그 서툰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 마음과 마음은 이미 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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