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소한 Jun 16. 2023

익명 독서모임으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취준을 할 때는 취업 준비를 더 집중하고자 책을 읽지 않았다. 그 시간에 면접준비 전공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유익하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준비의 시간이 길지 않게 취업에 성공했다. 직장인만 되면 책을 다시 읽겠노라라는 의지와 결심이 무색해져만 갔다. 퇴근하고 잠이 들 때까지 유튜브만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부단한 노력이 없어서 인지 책 읽는 것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라고 고민을 토로하면 보통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그게 고민이 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독서가 마치 언젠가 꼭 지켜야 하는 도덕적 관념처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스마트해 보이고 싶은 내 이미지와 내면의 불일치로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어떻든지 간에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제껏 어떤 때에 그래도 책을 읽어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플라톤독서논술, 독서논술 그룹과외, 신문부 활동 등등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열심히였다. 그때 기억을 되살려서 누군가와 함께 하면 또 열심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격증을 따고자 1년 휴학한 적이 있다. 이루고자 한 목표를 다하고 무료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네이버나 카카오 오픈채팅방에서 독서모임을 찾아다녔다. 한 곳은 면접까지 보았고 끝내 합격하지는

못 했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기억을 되짚어서 이번에도 검색창에 지역명과 독서모임을 조합해서 검색했다.


소도시라서 그런지 독서모임 자체도 적었다. 있다 하더라도 폐쇄적인 모임이었다. 그리고 중장년층이 많아 보였다. 그런 모임은 싫었다.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가면님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가면님의 글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그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잘 맞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가면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화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이루어졌다. 가면님은 당황하게 만들 만큼 순수하고도 직설적인 질문가였다. 내 코가 석자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을 오고 가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했다. 나는 익명성을 피력했다. 그리고 익명에 유익함을 설명했다. 가면님은 쉽게 수긍을 해주셨고 실제로 만날 때 우리는 서로 어떠한 정보도 모른 채 닉네임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하게 되면 그저 친목모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듣고 지켜봤다. 그것이 익명이라는 정체성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깊숙한 곳 내 마음속에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 기저에는 사람들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나의 직장, 나의 학벌, 나의 나이 등으로 나를 재단하는 것이 싫었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라포형성에 방해가 되었다.


나의 속내는 뒤로 한채 익명성이 독서모임에 더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을 토로했다. 그것이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 독서모임 정체성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바로 가면님과 책과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모임의 형식을 내가 제안했다. 제목을 보고 감상, 독후감 그리고 인상 깊은 구절까지 나누자고 했다. 책은 서로 추천한 책을 읽자고 했다. 시작이 좋았다. 이렇게 순항하면 좋겠다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원한 나는 이 독서모임이 신호탄이 될 거라 믿었다. 이런저런 변명들을 뚫고 이제야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3개월 쉬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