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을 선언
2020년 6월 29일에 시작되어 약 3년이 되는 독서모임을 잠깐 쉬어보겠다 마음먹었다. 일상이 되었고 어쩌면 삶의 일부가 된 독서모임을 중단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독서모임과 독서가 점점 재미없어지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쉬겠다는 이 기간이 앞으로 더 오랫동안 독서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양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독서모임을 중단하는 이유를 사적인 이유와 대외용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아주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에둘러서 그리고 공손하게 대외용으로 설명했다. 대외용 답변은 소유욕과 정이었다. 이 독서모임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독서모임이 힘들고 지쳐갔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서 내 통제하에 운영되지 않아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고 퇴적되어가기만 했다. 그리고 독서모임의 정체성이 익명성이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보고 이야기 해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리더로서 필요한 따끔한 이야기를 몇 달에 걸쳐 심사숙고 후에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함도 있었다. 결국 그런 것들이 반복되고 점진되어 가게 되니 운영에 대한 고뇌가 독서활동에 지장을 주기 시작했다.
사적인 이유는 멤버들이 나의 바람처럼 책을 잘 읽어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전부터의 고민은 독후감을 쓰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롯된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하위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모든 멤버 참석률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5명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이 어느샌가 1명은 깍두기로 서있고 4명이서 모인 경우가 허다했다. 독서모임이 점점 하향평준화되는 듯한 느낌에 낙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모임에서 독후감 낭독을 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원래 리더로 계셨던 가면님이 떠나고 글을 쓰는 사람은 나뿐이어서 그런지 낭독할 때 민망함과 당혹스러움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그전까지 가면님 운영 아래에서 여러 멤버 중 한 명으로 독서모임으로 참여할 때는 자유롭게 활개 치는 느낌이었다. 가면님이 조성한 놀이터에서 놀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가면님의 울타리를 넘어서려는 욕구는 없었다. 하지만 가면님의 부재로 사회자의 역할을 내가 해야 됨으로써 고민 없이 독서모임을 하는 경우는 전보다 많이 줄게 되었다. 가면님의 운영모토처럼 공화정과 같은 모두가 주인인 독서모임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빡빡했다. 독서모임의 열정이 같거나 비슷할 것. 그 차이로 발생된 현상은 공화정이 아니라 하나의 왕정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이끌어가야 될 것만 같은 운영자의 책무. 리더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6월 30일이 되면 가면님이 탈퇴하신 지 1년이 되어 간다. 다르게 내가 오로지 리더가 된 것이 1년 된다는 말도 된다. 사실 3개월 쉬겠다는 말이 처음은 아니었다. 3년 동안 독서모임하면서 두 번 동안 한두 달은 쉰 적이 있다. 그때는 자격증 공부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하여서 독서까지 하기에 심적 부담감이 있었다. 물론 이 악물고 독서모임과 독서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겠지만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그 기간을 가지고 돌아올 때면 상기된 모습으로 쉬는 시간에 대한 감상을 나누곤 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리더가 된 지 만 1년이 된다. 그 상징적인 것을 무시 한 채 나는 쉽게 독서모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상징이 참 달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억지로 독서를 하고 싶지 않다. 중단하겠다고 한 날 나는 완독 하지도 독후감을 써가지도 않았다. 그 자체가 기쁨이 아니라 인내였던 것이다. 인내하면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치사하게 이동진 작가의 말을 차용했다. 몇 달 전 이동진 작가의『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를 오디오북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이 나는 것은 완독의 부담감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책을 재밌게 읽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책을 재밌게 읽는 데에 멀어진 나는 다른 때도 아닌 독서모임에서 읽어가야 하는 책을 쉽게 다 읽지 않으리 결심했다.
단무님이 왜 3개월이냐라는 질문을 주셨다. 나는 1개월은 너무 짧고 딱 3개월이 적당할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나름대로 3개월이라는 기준은 없었다. 그냥 어감상 느낌상 3개월이 딱 알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3개월 정도면 딱 아주 멀어지지도 아주 가깝게 있지도 않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3개월 동안 단톡방 또한 나가겠다 말씀드렸다. 좀 더 완벽하게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쉴 때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생뚱맞게도 나가겠다고 말씀드린 그날에 자주 가는 한 카페 사장님을 통해서 독서모임을 참여하고 싶다고 쪽지를 건네받았다. 새로운 분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심을 내린 터라 이미 독서모임에 대한 미련 또한 없다. 이제 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벗어남을 택했다.
3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려는 차에 3년 동안의 독서모임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생일 선물로 받아 한 번도 펼쳐보지도 않았던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한 두 페이지 읽다가 떠오른 발상이었다. 3개월 동안 어떤 활동을 하던 심지어 책을 전혀 읽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 동안 책을 읽지 않는 기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도 상징적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3개월이라는 안식을 시작해볼까 한다. 다시 한번 훈풍이 불어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