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행차- 가배에 기억을 담아 본다.
“재이 가배사! 어디 있나?”
성 가배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재이를 부른다. 곧바로 대답이 없자, 그가 다시 한번 외친다.
"재이 바리스타! "
"어허, 이 사람이! 다른 이가 들으려면 어찌하려고! 바리스타라니! 큰일 나려고 "
재이는 깜짝 놀라 성 윤수 가배사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가배사가 바리스타 맞잖아. 허허허. "
"네 선배님 박 재이 여기 있습니다! "
"거기 있었구나. 임금님께서 가배를 드신다니 얼른 준비하시게."
가배사 윤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이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지시를 내린다.
"볶은 지 나흘 된 원두를 가져오시오. 굵기는 모래알만큼 곱게 갈고요. 물의 온도는... "
그는 속사포처럼 명령을 내리지만, 몸은 부산스럽지 않게 주문을 넣는다.
가배원생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마치 그 모습은 궁중악에 맞춰 부드럽게 춤을 추든 가벼우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원두를 가는 향이 가배원 가득 퍼진다. 볶은 지 사흘에서 열흘 사이의 원두는 향미와 조화가 가장 좋은 시기라는 걸 재이는 정확히 알고 있고, 정성껏 내린 가배를 소반 위에 올려 임금님에게 향하고 있다.
"전하, 가배 대령이옵니다. "
재이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가배를 바쳤다.
임금님은 가배 잔을 조심스레 받아 들고 향을 먼저 맡는다. 한 모금, 두 모금 눈을 지그시 감고 음미하는가 싶더니 조용히 입을 연다..
"잘 마셨소. 오늘같이 눈 오는 날엔 이 가배가 더 깊이 들어오는구려. 오늘은 특히 향이 진하군요. 좋소!"
그는 잔을 내려놓고 재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마시는 가배 향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습도 때문이오?”
재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조심스레 대답한다.
“네. 전하 습도와 기온이 후각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향이 더 뚜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이렇게 눈 오는 날 기억 하고 싶은 추억에 가배 향이 더해져 더욱 깊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임금님은 재이의 말을 듣고 크게 웃는다.
“허허허 좋은 말이오.”
임금님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라 임금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잘 마셨소”
임금님의 말에 재이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 가배 잔을 들어 조용히 물러났다.
이번 임금님의 행차는 궁 밖, 온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백성들의 겨우살이를 살피고, 동시에 기력이 약해진 임금님의 원기 회복을 위한 것이다.
평소 탕약보다 믿고 의지하는 온천이기에 전국의 온천 중에서도 물의 온도, 효능, 접근성도 아주 적절한 온양을 임금님은 특히 좋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