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배사 재이

가려진 여인

by 엠제이

"좋소. 65번 박 재이 수험생 생각에는 맛있는 가배란 무엇인가?"

천으로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질문한 감독관에게서 나는 향기는 가릴 수가 없었다.

'향기로운 향이 나는데 이게 무슨 향이지?'

'나에게 질문한 사람은 여성인데 누구일까?'

감독관에게서 나는 향기로운 향에 잠시 말문이 막 힐 뻔하였지만, 깊게 호흡을 뱉고 바로 대답을 이어간다.

"네. 가배는 그날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눈 오는 날엔 아이들 웃음처럼, 비 오는 날엔 처마 끝 빗소리처럼, 봄날엔 꽃구경 가는 설렘처럼, 맛있고 맛이 없고를 정하기보단, 마시는 이의 마음에 맞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배를 내리는 이는 정성으로 한잔을 만들어 내리기에 마신다는 그 행위만으로 소중합니다."

재이의 대답을 들은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가려진 천으로 보였다.

감독관들은 잠시 침묵하다 자리에 돌아가라고 손짓한다.

"자, 조선 최고의 가배사를 발표하겠습니다.”

북소리가 울리고, 3차까지 오른 수험생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으며 재이의 심장은 더 바르게 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최고의 가배사는 65번 박 재이!”

우와 다들 박수를 치기도 하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재이는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내가 1등이라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학당 친구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역시 재이야!.”

“박 재이 대단해!” 축하의 박수가 재이를 향해 쏟아진다.

가배 학당에서 최고의 가배사로 인정받은 재이는 이제 학당의 선생님으로서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재이가 장원, 1등이 된 뒤부터 수강생의 수는 점점 더 늘었고 전국 각지에서 재이의 이름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가배를 가르치는 일이 재이에게는 큰 기쁨이자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재이도 궁으로 들어가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1등 가배사는 가배원이 꾸려진 궁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배원이란 궁 안에 있으며 임금님의 가배 담당 기관이며 국내외 손님들이 오면 가배를 맛 보이기도 한다. 워낙 가배를 좋아하시는 임금 때문에 생긴 기관이기도 하지만, 이제 서양의 문물도 받아들여서 좋은 점은 배워야 하기 때문에 가배라는 것이 아시아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궁 안에 생긴 것이다.

이렇게 가배원이 궁 안에 생긴다고 했을 때 전통찻집 업주들의 반대가 심하였다. 아무리 임금이 좋아하는 가배라지만 궁 안에 서양차기관이 생긴다니 이만저만 반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궁 안에 의사가 있듯이 서양차에 대한 기관이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하셨기에 전통차업주들은 더 크게 반발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이렇게 전국 가배사 대회가 열려 더 많은 이들이 가배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전통차 협회에서는 걱정과 고민이 많은 게 사실이다.


어느 날 가배 학당에 있는 재이에게 궁에서 전갈이 날아왔다. 임금님의 명이라 했다.

재이는 가장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하, 가배사 박 재이가 왔습니다.”

“들여보내라”

임금님의 목소리는 저음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어? 이 목소리... 지난 시험 때 내게 질문했던 바로 그 목소리 아닌가? 감독관 중 한 분이 분명해!’

재이는 순간 놀라워 잠시 머뭇거린다.

“자네가 조선 최고의 가배사 박 재이가 맞는가?”

“네 전하 가배사 박 재이입니다.”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이번 대회 1등 가배사는 궁안 가배원에 들어와 일을 해야 하는 걸 알고 있지? 이제 어느 정도밖에 일 정리가 되었을 싶으니 가배원에서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인 거 같아 들이라 했네.”

그리하여 재이는 임금님의 전담 가배사로 이명 되어 궁 안팎에서 임금님의 가배를 올리는 조선 최고의 가배사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님의 명으로 이 자리에 있지만 궁안 은 여전히 신분과 규율이 엄격한 곳이기에 항상 마음가짐,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는 걸 재이는 알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만들 가배 한잔이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평안이 깃들었으면 해’

궁 안에는 가배를 전문으로 다루는 가배원이 있다.

배로 들어온 생두를 보관하고, 직접 볶으며, 완성된 원두를 임금이 원할 때 즉시 대령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하는 곳이며, 요즘에는 가배나무도 기르고 있는 실험도 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가배 나무가 될지 말이다.

스무 명가량의 가배사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이번 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의 가배사들이 입궐하였으며 예전부터 전국의 가배학당의 숨은 실력자들이 가배원에 모여 있어서 가배원의 분위기는 위계질서가 있으며 아무래도 서양차이기에 가배원 분위기는 딱딱한 편은 아니었다.


이렇게 바쁜 가배원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도 재이는 모시 천으로 가려진 가림막 사이의 따뜻한 눈길을 보여준 그 여인이 생각났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 여인의 향기가 순간 재이 코 앞에서 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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