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모든 것은 향기 따라 움직인다.
"전하 암행을 나갔던 박 가배사 들었습니다."
"그래 잘 다녀왔는가? 고생하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네! 바깥 사정은 어떠하던가 생각한 그대로인가?”
임금은 재이가 자리에 앉기도 전 궁금하던 것을 풀어놓는다.
자리 잡은 재이는 하나하나 답을 드려보는데 생각보다 불법이 많았고, 위생 상태도 심각하다는 것, 한방차, 서양 차를 서로 앞다투어 개업하다 보니 친하던 지인들 조차 악연으로 변해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서 마을이 흉흉하다는 둥 일단 임금님이 시키는 대로 일 처리를 하였으며 위반한 전통 찻집이나 가배 상점이든 법에 따라 처리하였다고 재이는 전하였다.
“그리고 전하의 전통 찻집 업주들과의 직접 면담이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네. 이제부터 하나하나 처리하여 전통차 서양 차가 함께 하는 여정을 위해 내 힘쓸 것이니 고생 많았네.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도울 일이 생기면 자네를 부를 터이니 그리 알게나!”
임금은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무조건 서양문명을 반대하기보다는 백성들에게 필요하고 나라에 필요한 것들 좋은 것들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무조건 아무것이나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이치에 맞게, 도리에 맞게.....
“아이참 공주님. 또 나가시게요? 자꾸 이 밤에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괜찮아! 잠깐 가배사 재이만 만나고 바로 돌아올 거니깐 넌 여기서 기다려 망을 봐야 해!”
암행에서 돌아왔다는 재이의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 만나고 싶었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 종일 보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담아 놓고 밤이 되기를 기다린 리아공주는 늦은 밤이지만 , 지금 재이 가배사가 너무 보고 싶다.
“공주!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걱정 많이 했습니다.”
“걱정은 누가 누굴 해요? 걱정을 해도 제가 더 많이 가배사님 걱정을 했지요! 아무리 암행이라 해도 어찌 그리 연락 통을 주지 않으셨나요?”
리아 공주는 반가움을 삐침으로 뾰로통하게 표현한다.
“비밀 암행이었는데 공주님이 어찌 아셨는지요? 이거 큰일 납니다.”
“비밀 암행이래도 제가 가배사님 하는 일을 모르겠어요!”
리아공주의 삐침조차 귀여워 재이는 공주를 살며시 안아준다. 행여 아프지 않게 살포시 부드럽게...
“가배사님, 밖은 어느 정도 상황이던가요? 잘 해결되겠죠?”
리아 공주는 근심 가득 표정을 지으며 재이에게 물어보는데 재이는 아무 걱정 말라고 손을 저어준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하늘의 별빛을 바라본다.
가배원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재이가 암행을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된 가배사들은 어떻게 자기들에게도 비밀이냐고 섭섭함을 나타내며 투덜거린다.
“미안해요. 미안해. 상황이 그런 거라”
가배원 식구들은 당연히 모든 것들을 알기에 이해를 하기 시작하였고 암행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회의를 거쳐 차근차근 정리를 함께하였다.
낮에는 가배원에서 가배 관리를 하루 일정이 끝난 후에는 야근을 하면서 모든 가배원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나라와 임금을 위해 노력하였다.
가배사들이 완벽하게 정리를 끝내는 노력으로 전통차와 서양 차 사이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해결되기 시작하였고 임금의 귀에도 들어가 걱정 많던 임금도 이제는 조금씩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가배원으로 산책을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래 이렇게 조화를 이뤄 나가는 거야! 하나 둘 천천히 제대로만 처리를 하면 반드시 백성들도 편안해질 거야. 가배사 재이가 큰일을 하고 있구나.'
임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깊은 생각에 빠진 리아 공주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마음마저 쓸쓸해지는데
'이제 곧 서신을 보내야 하는데 그동안 수많은 글을 썼다 지웠다. 나의 마음이 제대로 중국 황제에게 잘 전달되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리아 공주는 곧 황제에게 서신을 보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니깐.
'황제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니깐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어머니,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언제나 아버지 곁에서 그리고 가배사 재이 옆에서 이렇게 어머니와의 추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리아 공주는 선선해진 가을바람에 소원을 실어 어머니께 보내어 본다.
“공주님! 공주님, 리아 공주님! 어디 계세요? 아이참”
책을 보고 있는 리아를 찾으며 영옥이가 소란스럽게 뛰어 들어온다.
“어허 왜 이리 소란스럽니? 무슨 일이기에 꼬삐 풀린 망아지처럼”
“공주님. 빨리 대왕대비마마께 가보세요! 지금 빨리 공주님 오시라고 전갈이 왔습니다. 중국에서 연락이 왔나 봅니다. 빨리요!”
리아 공주도 읽던 책을 덮으며 일어난다.
'아 황제가 보낸 서신이 왔나 보다. 내가 적어 보낸 지도 두 달이 지났으니..'
“알았어. 내 준비하고 나갈 테니 너 먼저 나가 있거라.”
리아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고 마음 다지지만 떨리는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하나 두근거림에 영옥이를 먼저 내 보낸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공주는 대왕대비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리아 왔구나. 이리 와서 앉게”
대왕대비는 언제나 단단하게 기품 있게 앉아 계신다.
“중국에서 서신이 왔다고 들었습니다. 할머니! 자꾸 심장이 떨려요”
“그래 그러겠지. 안 떨린다면 거짓말이겠지. 자 함께 보자꾸나 “
두 사람은 나란히 서신을 함께 읽는다. 다 읽은 두 사람의 얼굴에는 발그레 홍조가 띠어지며 손을 마주 잡는다. 이제야 웃음을 보이며 안도의 한숨마저 내보이는데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제가 황제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할머니도 따로 보내셨네요. 할머니의 정성에 황제도... 감사합니다."
리아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대왕대비는 긴 밤 고민하다가 중국 황제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냈다.
할머니로서 그냥 앉아 있을 수 없기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진심을 다한 리아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 자 한 자 꾹꾹 정성을 담아 보낸 편지를 보낸 거다.
"리아 공주는 뭐라고 써 보냈기에 이 할미가 궁금한데?"
"할머니도 참. 그냥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할머니와 저의 진심이 중국 황야 기를 들은 황제에게 전해졌나 봐요."
대왕대비와 리아 공주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이 건너와 이 행복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리아 공주와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닌 언제나 저를 믿어 주셨죠. 어머니께서 저의 결정을 믿어 주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저희가 이렇게 웃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어머니!"
오랜만에 대왕대비, 임금, 리아 공주 이렇게 세 사람은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첫눈이 내린다.
' 눈 내리는 날에는 가배를 마시러 가야지 '
리아 공주가 재이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나선다. 주머니에는 달궈진 조약돌 주머니를 소중히 안고 아무도 밝지 않은 정원의 눈을 살포시 밟으며 가배원으로 향하고 있다.
"가배사 재이 있는가? "
"아니 공주님이 오셨네."
"재이 가배사, 만나러 오셨나 보네요. 하하하"
가배사 재이와 리아 공주 두 사람의 사이를 아는 가배원 식구들은 놀리기까지 한다.
'어허 이 사람들이"
공주는 웃으며 가배원 식구들에게 야단치지만, 싫지는 않다.
"공주님 재이 가배사만 찾는 거 아니에요? 허허"
"나 그저 눈이 오니 가배 생각이 나서 온 거뿐이네 어허 다들 이러기야? "
전통차와 서양 차의 문제점을 잘 해결한 재이는 임금뿐 아니라 대왕대비의 마음에도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상시 리아 공주를 아껴주는 모습에 더 이상 두 사람의 사이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지켜보기로 한다.
"재이 가배사, 손 내밀어 보세요"
재이는 리아 공주가 시키는 대로 손을 내민다. 리아 공주는 주머니에서 데워진 조약돌을 재이의 손에 올려놓는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만남을 이어가는 가배사 재이와 리아 공주는 내리는 눈을 함께 맞으며 잠시나마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진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두 사람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