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배사 재이

낯선, 처음 가는 길

by 엠제이


다음 날 재이는 영식에게 책방을 하루 쉰다고 말하고는 낯선 처음 가는 길을 걸어간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가배 학당-커피 바리스타 학원이라는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학당 문턱을 넘어보며 재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당은 1층 입구를 지나 2층으로 이어져 있고 재이는 계단을 오르며 또다시 향기를 따라 계단 한 칸 올라가 본다. 오를 때마다 가배 향이 진하게 깔려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이 정도면 괜찮나요?"

누군가가 가배 선생님에게 묻는다.

"조금 더 부드럽게 가배 가루가 고와야 해요"

맷돌로 원두를 가는 손들이 분주하였고 다른 수강생은 철망 위에 콩을 올려놓고 숯불 위에서 천천히 돌리며 태우고 있다. 연두색이던 콩이 갈색으로 변해 가는 가배를 바라보던 재이의 눈이 커진다.

"어떻게 오셨나요? "

선생님으로 보이는 서양인이 문가에 서서 놀라던 재이를 보고 말을 건넨다.

"네 안녕하세요. 프란체스코 선교사님 소개로 왔습니다. 박 재이입니다."

"아. 프란체스코! 그랬군요. 그럼 이리로 오세요"

재이는 선생님이 건네는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아 모이며 난 당신의 말에 경청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가배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어 왔습니다. 혹시 제가 배울 수 있을까요? "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럼요. 배울 수 있고요. 가배가 좋아요? "

"좋아요.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진심이 느껴지네요. 내일부터 수업에 참여하세요. 오늘은 시간이 되면 둘러보고 가배도 마셔보고 가세요 "

재이는 대답 대신 쑥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강생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다.

누군가는 콩을 볶고, 누군가는 가배를 내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재이 역시 어느새 가배 학당의 학생이 되어 있는 듯하다.


가배 학당에서 집에 돌아온 재이는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처음엔 놀라시는 듯하였지만, 긴 침묵이 이어지더니 조용히 말씀을 이어가신다.

"나는 네가 선교사가 되기를 바랐어.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라 뭐라 말하기도 어렵고, 살아보니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요 하더구나. "

"감사합니다. 어머니"

재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품에 안겨본다. 어머니의 품은 언제나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기에 살짝 눈물이 나는 것을 애써 참아보았다.


그 밤 곧장 영식이를 찾아갔다. 내일 말해도 될 일이지만, 오늘 꼭 전하고 싶었다.

"뭐? 가배 학당이라고? "

영식은 눈을 껌뻑이며 의아해하지만 재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배우고 싶어 그날 선교사 방에서 맛본 가배를 정말 알고 싶어 "

다음 날 어머니가 손수 싸준 도시락을 들고 학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가배 향기가 재이를 반겼고, 수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어 재이 군, 왔군요. 오늘은 필기 수업이에요 저기 앉아서 토마스 선생님 설명 들으세요! "

재이는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종이에 눈이 간다.

‘커피의 유래 6-7세기 에티오피아. 염소가 빨간 열매를 먹는 것을 본 목동이 불에 던졌더니 향이 퍼졌다....'

귀로는 강의를 들으며, 눈은 창밖 원두를 볶는 학원생들에게로 향해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엔 본격적으로 가배 내리는 실습이 시작되었다.

"달팽이 모양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세 번, 30초 안에, 정성스럽게."

재이는 말없이 주전자에서 물을 천천히 내리며 향이 피어오르는 걸 확인해 본다. 눈앞의 가배가 보여주는 마법에 푹 빠져 들어간다.

그날 이후 3주 동안, 재이는 밤낮으로 가배를 내렸다.

"가배라... 참으로 신기한 차야"

한 학원생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그러나 우리 조선의 전통 차 문화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 "

또 다른 이는 고개를 저어가며 말한다.

"변화는 두렵지만 피할 수는 없다네. 서양의 물건이라도 맛있으면 받아들여야지 좋으면 받아들여야지 "

두 의견 속에서 갈등하는 마음을 재이는 느꼈다.

'이 작은 가배 한 잔이 우리 전통과 어떻게 어우러질까.'

학원생들과 함께 몇 주 동안 고민하며 연습에 또 연습을 하고, 드디어 시험에 합격했다.

"축하해요. 재이 군! "

"정말 대단해 "

선생님들과 학원생들의 뜨거운 박수에 재이는 수줍게 웃으며 감사 고개를 숙였다.

학당 생활은 더없이 즐거웠다. 원두의 맛과 향, 볶음의 차이, 도시락을 나누며 가배에 대해 대화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즐겁다.


"이게 뭐야? 조선 최고의 가배사? "

학당 게시판에 붙여진 공고를 본 학원생들이 웅성거린다.

"1등은 임금님 전속 가배사로 채용된다네”

여기, 저기서 가배사 대회에 대해 웅성웅성하더니, 원장님이 한 말씀하신다.

“모두들 도전해 보시죠? 다들 1등 가배사가 될 자격들이 있으니깐 관심 있는 학원생들은 도전하길 바랍니다.”

게시판을 응시하는 재이를 본 원장님이 등을 두드려 주면서 응원을 하신다.

“재이 군! 꼭 도전하시길 바라요. 제가 봤을 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원장님의 칭찬이 이어지자 재이는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한다.

“아닙니다. 원장님 아직 저는 실력이 안됩니다.”

“흠 도전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날 이후 원장님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왜 이리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는지..

더 약하게 더 강하게 더 부드럽게

가배 학당문을 열고 들어 선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1년이 되었다.

재이는 이제 조선 최고의 가배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

장소는 덕수궁 정관헌.

단 한 번의 기회이다. 가배 향보다 더 강한 각오가 재이의 두 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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