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배사 재이

가배의 향기에 빠지다.

by 엠제이

어둠이 골목에 내려앉은 이 밤, 재이는 집이 아닌 교리실을 향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뚜렷한 목적 없이 걷던 길, 재이가 선 곳은 교리실 문 앞이었다.


문고리를 잡기 전 마음부터 조심스러워졌다. 혼자서 선교사를 찾아온 건 처음이며 문을 두드리기 전 낮은 목소리를 한번 내어 본다. 선교사님...


"흠 흠 선교사님 계신가요? "

여기까지 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히 왔나 싶은 후회가 싹 들려고 할 때 익숙한 손길이 문을 열었다. 키 큰 프란체스코 선교사가 반가운 얼굴로 재이를 맞이한다.

"어? 재이 군? 오늘은 교리도 없는 날인데 무슨 일이죠? "

그 순간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궁금함은 공중분해 되고 재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놀러 왔어요 "

여러 가지 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묻어 있다는 걸 느낀 선교사는 말없이 재이의 손을 잡아 ,방 안으로 이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 속에 머무는 낯익은 향이 재이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단맛과 쓴맛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한 그 향, 며칠 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채운다.

책방에서 가배에 관한 책을 찾던 자신, 밤잠을 설쳤던 이여, 그 모든 갈증은 바로 이 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재이 군, 가배 한 잔 괜찮죠? "

선교사의 물음에 재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따뜻한 가배 잔이 손에 쥐어졌고, 잔의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재이의 가슴속으로 전해진다. 조심스레 가배를 입에 대며 한 모금, 한 모금, 혀끝에 닿는 맛이 무언가를 건드렸다.

쌉싸름하면서도 부드럽고 끝에 남는 느낌은 달콤함이라 자구만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그런 재이를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선교사가 드디어 이야기를 꺼낸다.

"어머니와는 이야기 한번 해보셨나요?"

그 질문 앞에서 재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다가 천천히 대답을 해 본다.

"어머니 혼자 두고 제가 떠난다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돼요"

재이의 단호함에 선교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섭섭함은 어쩔 수 없이 선교사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 대신 조심스럽게 재이에게 묻는다.

"그런데 지난번 가배 마시고 생각이 났나 보군요? "

재이는 말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망설임 끝에 입을 열어본다.

"이 가배 있잖아요. 향도 맛도 묘해서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대체 이건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건가요?"

재이의 질문에 선교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웃음 속에 장난이 있다기보다는 재이의 질문을 이해함이 담겨 있다.

"오늘 찾아온 이유가 가배였군요. 가배가 궁금해서... 하하"

선교사는 책상 서랍을 열어 책을 하나 꺼내 보이며 재이 앞으로 밀어 놓는다. 책갈피 사이에는 서양식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서양인이 운영하는 바리스타 학당이 있어요. 가배 학당 말입니다. 이곳은 정식 허가받은 곳이니 가배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곳에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네요. "

재이는 놀란 눈으로 선교사를 바라본다.


"가배를... 배울 수 있다고요? "

"그럼요 가배를 마시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지 어떤 향이 나는지 무엇이 좋은 가배인지 배울 수 있죠! "

선교사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깊은 아쉬움도 남아 있었다.


"사실 난.. 재이 군을 로마로 보내 조선의 선교사로 키우고 싶었어요. 그러면 조선에 많은 천주교인도 생기게 될 것이고. 이게, 제 욕심이나 봐요. 이제 알겠어요. 재이 군 마음속엔 커피가 들어와 버렸다는 걸."

재이는 선교사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손 안의 가배 잔을 내려다본다. 잔 속의 검은 액체가 가볍게 흔들린다. 그것이 흔들릴 때마다 방안에는 가배 향으로 가득 차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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