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운 기준은 지금의 청년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우리 가족의 삶을 함께 결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선택은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경제도
방향도 함께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조금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그 기준을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이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가족 안에서 정리된
생각이 가족 밖에서도 유효한지.
대기업을 1년여 만에 퇴사한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른 다큐를 보았습니다.
“나 때는 1년에 3일 쉬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설명은 없었지만
그 말 하나로 충분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아들이 답합니다.
대화는 짧았고, 더 이어지지 않더군요.
둘 사이에는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대화가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기준만 남았습니다.
그 청년은 대기업에 입사했었습니다.
성과도 좋았습니다. 영업 실적 1위.
누가 봐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1년 만에 그는 회사를 그만두었답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연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주 40시간이 보장되었습니다. 그는
그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버티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해보지.
조금만 더 참지. 그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보게 됩니다. 대기업을 떠나는 사람들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
안정을 택하는 선택들. 그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버티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나요?
지금은 버티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오자 다시 멈췄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자산은 만들어야 하지 않나.
평생 월급을 모아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어렵다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걸까.
내 집이라는 기준을 아예 내려놓고 사는 삶이
가능한 걸까. 결국 남는 건 하나입니다.
생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각자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워집니다.
그 청년의 선택을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끝까지 납득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느 쪽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만약 그 청년이 나에게 묻는다면
“그럼 어쩌라고요.”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