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진로는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면서
아이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가능한 길을 찾아보고,
그 길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 정리해서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몇 가지 방향을 나누어 두었습니다.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공과대학.
각각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한 장씩 넘기며 긴 시간을 들여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는 공과대학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길목에 있는 ‘수학’이라는 벽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녀석이 단순히 공부가 싫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인지
지금의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믿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아이의 진로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대화 속에는 나의 삶이
계속해서 함께 들어와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몇 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시간만이 아니라,
나의 시간도 함께 움직입니다.
저는 그동안
아이의 진로를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지
그 기준으로만 고민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택이
아이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내의 시간과 우리 가족의
흐름까지 함께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명치 끝이 턱 걸리는 느낌이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진로는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 가족 모두의 시간과 경제와
삶의 방향을 함께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선택 위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선택이
아이에게 맞는가가 아니라,
이 선택을
우리 가족이 함께 감당할 수 있는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은
그 선택의 결과까지
함께 책임진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우리 가족의 삶을 함께 결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준이 맞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