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 질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것일까.
생각해보니, 결국 돈의 문제였습니다.
매달 가계부를 정리합니다. 수입과 지출을 맞춰보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이의 교육비입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다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동안은 그 감정을 크게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아이의 대학 생활을 가정해본 적이 있습니다. 등록금이 먼저 떠올랐고, 그 다음에는 생활비가 이어졌습니다.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니 숫자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 순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장면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대학 생활의 모든 비용을 스스로 감당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였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수천만 원의 빚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난 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우리 이야기가 아닐까.”
아이의 학자금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와 아내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퇴라는 시간입니다.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이기적인 걸까.”
아니면,
“나는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 걸까.”
안정을 선택하면
아이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일까.
가능성을 선택하면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마음 한쪽에는 다른 방향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제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가능성을 먼저 볼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하고 싶었던 하나의 단어가 있었습니다.
돈.
나는 그동안 아이의 진로에 돈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의 진로와
부모의 삶은
어디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