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택이 놓이게 될 시간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10년 후를 가끔 그려보곤 합니다.
그때쯤이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수입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체력도 지금 같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해온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버텨야 하는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시간, 아이는 사회에 막 발을 들였거나,
어딘가에 자리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방향을 찾는 과정일 수도
있고, 몇 번의 시도를 거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줄어드는 쪽에 가까워지고 있고,
아이는 아직 늘어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시간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10년 후를 나름대로 그려보고 있을 것입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일정한 수입을 유지하며,
어느 정도는 자기 삶의 기반을 마련한 모습.
완전히 풍족하지 않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상태. 우리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안정’이라는 개념은
조금씩 형태를 바꾸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하나의 경로를 따라 쌓아 올리는 커리어는 예외적인 사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안정은 더 이상 도착해서 얻는 결과가 아니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하는 상태에 가까워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일의 방식 자체도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기술은 반복되는 업무를 줄이고,
직무의 경계를 흐리고 있습니다.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일은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날 것 같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직무가
10년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이 변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방향을 바꾸고, 다시 시작하고, 때로는 버티지
못하고 멈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들을
뉴스나 주변의 이야기로 접하지만, 그것이 우리
아이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연결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 10년 후로 돌아가 봅니다.
나는 더 이상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상태에
있을 것이고, 아이는 아직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만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동시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의 선택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어떤 학교를 가는지,
어떤 길을 먼저 선택하는지,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를 그대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선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좋은 선택을 하면 그 이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하지만 그 선택이 놓이게 될 시간의 길이와
변화의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 기대는 생각보다
불확실한 전제 위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선택이 놓이게 될 시간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10년 후를 생각하면, 우리는 더 신중해져야 한다기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