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펼쳐진 초록 잔디밭, 멀리 보이는 언덕 위 십자가가 있는 건물은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 번째 성지 순례지인 충청도 당진, 신리성지이다.
푸른 초원 위 성당, 작은 경당, 순교미술관은 평화를 연상케 했고, 특히 성당 벽면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이하는 듯한 예수님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신리 성지는 내게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주차장 입구에 십자가의 길이라고 적힌 낮은 돌담이 있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곳에 커다란 성모상이 있다. 신리성지의 성모상 이름은 승리의 성모상이다.
미사 참례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니 종탑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와 몸과 맘을 이완시켜 주었다. 무반주 성가이지만 수녀님들 덕분에 성가는 산으로 가지 않고 아름답게 들려 미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미사 후 여유롭고 몽글거리는 마음은 그 자리에 있는 자들만이 느끼는 축복이다.
신리성지 주변으로 성지들이 많은 이유는 '내포(안쪽에 자리 잡은 바닷가)'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지금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배가 드나들었다.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 존창 루도비꼬의 세례(1784)로 신리에 천주교가 전해졌다. 이 이후로 마을 사람 전체가 교우일 정도로 규모가 큰 교우촌이었다. 바닷길을 통해 외부와 접촉이 쉬운 까닭에 신리를 포함한 내포지역에서 천주교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1845년부터 신리에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주했고, 이곳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가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다블뤼 주교, 위엥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가 신리에서 체포되어 갈매못과 공주에서 순교한 이후, 이름이 밝혀진 교우와 무명의 순교자들이 줄을 이어 순교했다.
계속된 박해로 신리 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병인박해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1890년대 들어서야 신리가 내려다보이는 양촌에 공소가 생겼다.
오랜 시간이 지난 1923년에 다블뤼 주교가 지냈던 손자선 성인의 집을 복원해 공소로 사용했다. 복원된 주교관 옆에 순교복자 기념비가 있다.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이 1968년 시복 된 것을 기념하는 비다.
신리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나 조선시대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곳이다.
야외제대
예수님과 순교 성인 5명이 성당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 벽 앞쪽엔 야외 미사를 할 수 있는 제대가 있다. 예수님은 두 팔 벌려 '어서 와라' 나를 안아 주는 것 같아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
성 다블리 기념 성당
성전 안은 규모가 작고 심플했다. 성전에 있는 예수님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자꾸 그 모습이 생각난다. 생각할수록 오묘하게도 슬프게만 보였던 얼굴이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성당들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없고, 벽면에 신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야외 경당
뒤블리 주교, 위엥 신부, 오메트르 신부, 황석두 루카, 손자선 토마스 성인을 기리기 위한 하얀 경당들이 넓은 잔디밭 중간중간에 있어 앉아있거나 기도하기에 좋았다.
뒤블리 주교관
제5대 조선 교구장이던 뒤블리 주교가 머물렀던 곳으로 기둥과 뼈대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마치 그때 그 공간을 이용했던 분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했다.
종탑
종탑이 멋지다. 미사 시간은 월요일엔 미사가 없고 평일과 주일 모두 11시이다. 45분쯤에 종소리가 났다. 종탑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소리만으로 만족하기로. 단체 성지순례는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면 된다.
카페 치타 누오바와 국내 유일의 순교 미술관
성당에서 나오면 왼편에 치타 누오바라는 갤러리 카페가 있다. 양곡창고가 전시와 휴게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쾌적하고 넓고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어 성지 방문 후 담소를 나누기에 좋다. 치타 누오바는 이탈리아로 신리 즉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치타 누오바를 나와서 순교 미술관으로 향했다. 회랑 한편에 있는 성물방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종상 화백께서 3년의 작업을 거쳐 교회에 봉헌한 것이다. 신리 성인 다섯 분의 영정화와 13점의 순교 기록화를 전시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순교 미술관이다.
미술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이다.
이 종상 화백의 신심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한국 천주교 역사의 아픔과 신앙의 승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섯 성인과 다른 순교자들의 순교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순교가 무섭다는 생각이 아니라 아름답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놓은 분들에게 감동을 받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 앞에 머물 수 있었다.
내포의 역사와 뒤블리 주교의 활동 상황을 볼 수 있고, 저서들도 전시되어 있다.
지하 미술관이 끝나는 곳에 하늘 전망대 가는 길 표지가 있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 열고 나가는 게 마치 천국 문을 열고 나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간 건가? 초록으로 펼쳐진 들판과 순례객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하늘 전망대에 있는 굵은 철사로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와 전망대 콘크리트가 잘 어울렸다. 소박함과 심플함이 오히려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성지를 나서면서 남편은 미술관 건물을 '누가 지었을까? 누가 설계했을까?' 묻는다. 미술관을 가는 회랑에서도 빛이 들어오는 각도를 살폈다.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천정에 고래(?) 설치물과 자연광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조명에 관심을 보였다.
신리성지에서 10분 정도 가서 동네 맛집인 우렁각시와 고등어 도령이라는 생선구이 집에 갔다. 손님들은 많아서 대기가 있었다. 맛있게 먹었지만 다음번에 다른 집의 맛도 경험하고 싶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건축가(김원)에 대해 알려주었다. 검색의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신리성지는 장소가 넓은 만큼 여유로운 맘을 주었고, 성지를 걷는 동안 신리에서 활동한 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당진 여행을 한다면 신리성지에 들려 순교 미술관 하늘 전망대를 올라가 십자가를 꼭 보면 좋겠다. 조선시대 가장 큰 교우촌이었던 신리성지인 만큼 넓은 들판에 자리하고 있어 맘껏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