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첫 주말. 여유롭게 주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마음이 자꾸 날아간다.
남편은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계속 검색을 한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주말마다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하고 근처 맛집에서 식사를 하면 좋겠구만.’ 그러면 둘다 좋을텐데 머리속에서만 그리고 있다. 미사와 맛집, 영혼의 양식과 몸의 양식, 서로의 취향 존중으로 즐거운 주말이 될 것 같다.
10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낸 합덕성당
아이들 어렸을 때 휴가 가다 들렸던 충청지역 성당이 있었다. 조용하고 오래된 성당. 나중에 다시 와서 미사참례를 해야지 마음먹었던 곳이다. 이름도 몰라요 지역도 몰라요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당진에 있는 합덕성당이 비슷한 것 같아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다양한 색의 백일홍이 반겼다. 성당에 올라가는 계단은 익숙한데 주변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긴가민가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으니.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에 성모상이 있다. 성모상 뒤의 배경과 무릎 끓고 기도하는 소녀상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상 옆에 무릎 끓고 기도하고 픈 맘은 나만 드는 걸까?
1890년 예산군 고덕면에 세워진 양촌 성당을 모태로 하여 189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합덕성당이 되었다. 공세리 성당(간양골)과 함께 충청지역 첫번째 성당이다.
지금의 모습은 페랭 신부가 주임신부인 당시 1929년 지은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이다.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온다. 이래서 sns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나오는구나.
미사전 울리는 소리에 감동. 종탑쪽으로 달려갔지만 움직이는 종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디오를 틀었나보다. 특별한 날에만 울리는 건가?
이 종들은 삼종기도 시간에 맞춰 울린다. 새벽 6시, 낮 12시와 저녁 6시. 직접 종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남편과 함께 합덕성당 미사 참여
성전이 마루바닥이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시간은 주일은 오전6시와 10시, 월요일은 오전10시,화요일은 오후5시, 수~금은 오전10시, 토요일은 오후 5시이다.
어? 성전 앞쪽에 십자가상이 없다.
회색 벽돌 기둥과 천정은 아치모양으로 되어 있다. 아치에 알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는 성경구절이 있다.
사람이 만인 보텬하를 다 엇을지라도 제 령혼에 해를 밧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오16:26
온 세상을 얻고도 목숨을 잃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목숨이고 그 목숨은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성당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순교자 묘역과 초대신부님 묘도 있고 뒷편엔 김대건 신부님 동상도 있다.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장소인가?정자 아래쪽으로 합덕제랑 연결된 공원이 있었다.
버그내 순례길
처음으로 알게 된 버그내 순례길.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인 솔뫼성지에서 시작해 하흑공소까지 17.5km의 순례길이다. 선선해진 가을 어느 날에 남편과 도보 순례를 꿈꿔본다.
왜목마을
미사후 남편의 폭풍 검색으로 왜목마을 황제 산더미 칼국수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다. 왜 산더미 칼국수라고 했을까? 맛있게 다 먹고 나니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바지락칼국수,부침개,콩나물 비빔밥이 세트메뉴이다.칼국수를 좋아하지 않기에 마음에 들었다. 디저트로 맛본 딸기 막걸리도 꽤 매력적이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내가 한 병 사갈까 잠시 고민을 했다. 둘 다 한 번은 방문할 집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차량이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라 편안하고 좋았다. 아이들이 다 자라니 이렇게 부부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너무 좋았던 난, 오는 길에 ‘매주 가는 건 좀 그렇고 2주에 한 번씩 다녀올까요?'라는 조심스런 물음에 남편은 '성지 도장 깨기를 하던지'라고 한다. '정말요? 난 무조건 좋아요.' '이게 무슨 일이지? 횡재다.' 남편이 먼저 제안을 하다니 팔짝팔짝 뛸만큼 좋았다.
충청도권과 경기남부 쪽 성지를 다녀 보기로 했다.
딸아이랑 식사를 하면서 남편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 두분이서 성지순례를 하다니 놀라워요. 보기에 좋아요. 근데 이렇게 시작한 이유가 뭐에요?’
‘엄마가 그동안 고생을 했으니, 엄마의 소원이 내 손잡고 미사 다니는 거라는데 그정도 못하겠냐?’
'오래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감동이다.
남편과의 성지순례가 기대가 된다. 100년 이상의 세월을 간직한 합덕성당에서 남편과 함께한 미사 참여는 특별한 선물이다. 고즈넉한 공간이 평화와 여유를 선물했다. 퇴사 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내게, 합덕성당에서 얻은 편안함과 믿음의 중요성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