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소 운동의 천국 성거산 성지
유산소 운동을 부르는 성거산 성지는 천안시 입장면에 위치하고 있다. 180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모여산 산속의 소학골 교우촌을 보고 싶어 오게 된 곳이다.
동네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제1주차장이 나왔다. 주변이 눈에 익어 살펴보니 온 적이 있다. 돈암성당 자모회 활동할 때 왔던 게 기억이 났다. 조금 더 올라가면 2 주차장이 나타나고 성거산 성지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소학골 입구 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성거산 성지 표지석이 있는 곳에 주차하고 아래로걸어내려갔다. 해발 579m 차령산맥 줄기에 위치하고 포인트들을 보려면 오르락내리락해야 해 힘들었다. 소학골 가는 길만 평지였다. 병인박해 기념성당은 세 개의 반원이 연결된 것처럼 보여 건물자체가 독특하고 멋지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니 우와 감탄사가 바로 나왔다. 차경을 제대로 이용해 맞은편 산을 배경으로 한 하늘과 맞닿은 예수님상이 보였다. 그 예수님상이 성전내부에 있는 느낌이다. 이런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구나.
미사 중 신부님의 말씀으로 조선시대 천주교회가 어떻게 정착이 됐는지 알 수 있었다.
박해로 내포 지역에서 활동하던 교우 일부가 내륙으로 이주해 성거산 주변에 소학골 등 7개 교우촌을 형성했다. 병인박해 때 발각이 되어 23명의 순교자들을 배출했다. 지금도 첩첩산중인데 그때 당시에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했다는 것과 또 발각이 된 것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사람들이 이런 산골에까지 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그때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질문을 했다.
'밤이나 풀 뜯어먹고 채취해서 살지 않았을까요? 근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요?'
'박해가 심해지니 피해서 밀려 밀려왔겠지.'
소학골 교우촌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밤송이가 떨어져 있어 몇 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산 안쪽에 위치한 데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조용했고 온몸이 이완이 되는 것처럼 편안했다. 교우촌에서 성당으로 돌아가는 길은 산 지형을 이용해 산책길을 조성해 놓았다. 작은 경사가 있어도 올라가는 길은 헉헉 거렸다. 성당 쪽에서 줄무덤으로 가는 길 사이에 순교자의 길이 있다. 도자기 모양의 석등에 2명의 순교자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영광송’으로 기도를 하면 된다. 순교자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103위 성인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내포지역을 돌아다니며 눈에 익은 성인과 성녀 이름이 보여 반가웠다. 순교자의 길의 끝나는 지점에 제1줄 무덤과 제2줄 무덤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 2줄 무덤 쪽으로 올라갔다. 성모광장이 있어 야외미사를 할 수 있게 제대가 준비되어 있다.
남편이 ‘줄무덤이 뭐야?’ 묻는다. ‘줄무덤이란 줄줄이 있어서라고도 하고 여러 사람이 묻혀서라고도 불러요, 이름 모르는 순교자들이 많은가 봐요.’ 주워들은 것 가지고 아는 척을 했다.
성모광장에서 위로 올라가니 제2주 차창이다. 성거산 성지(기념성당 입구)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다시 올라가야 했다. 똑 헉헉댔다. 남편은 이때다 싶은지 ‘유산소 운동 좀 해’ 한 마디를 한다.
사순대축일 미사 후부터 11월까지 병인박해 기념성당에서 미사를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조금 더 아래쪽에 있는 소성당에서 미사를 한다.
내려가는 길에 소성당을 들렀다. 길냥이와 개들이 반겨준다. 잠시 성체조배를 하고 나와 이젠 밥집을 찾아간다. 보리밥집과 만두전골집 두 군데 중 하나를 고르라는데도 어렵다. 만두전골집에도 보리밥이 나오니 전골집으로 향했다. 전골집은 일요일은 휴무라 애초에 가기로 한 <소문난 보리밥집>으로 갔다. 간판이 화려하지 않으니 잘 보아야 보인다.
주차장에 차가 많을 걸 보고서 남편은 '맛있어서 차가 많을 걸까?' 은근 기대를 한다. 남편은 지론은 맛집은 자고로 사람이 많아야 해이다. 들어가 자리에 앉았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테이블이 많았다. 보리밥 2개와 메밀전병을 시켰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야채와 나물과 비벼서 한 입을 먹는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친다. 둘 다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가득하다. <소문난 보리밥집> 소문날만하네.
유산소 운동의 천국인 성거산 성지는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켜낸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게 했다. 성지를 방문하고 나면 ‘난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하게 된다. 답은 ‘난 배교 할 것 같은데’이다. 그러니 순교하신 분들이 위대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