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충,권상언,윤지헌 복자의 유해가 있는 진산성지성당
남편과 성지순례 8
박해의 시작점이었던 금산 진산 성지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부산이다. 순례지도를 꺼내 경로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곳인 진산 성지를 골랐다.
책을 읽다가 '아 여기가 그곳이야? 유교 제사를 거부했던 곳'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
‘여보 알아? 윤지충과 권상연 말이야.’ '몰라''국사책에 나오는 데...'
국사책에 나온 진산사건, 유교식의 장례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태워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곳이다.
윤지충,권상언,윤지헌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전라도 진산(지금은 충청도) 출신의 양반 집안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사촌 관계로, 윤지충의 어머니가 권상연의 고모다.
윤지충은 책으로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그 이후 주변에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였고 권상연도 관심을 갖게 되어, 유항검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천주교 전파는 이렇게 서학을 접하는 과정 중에 책으로 전달이 되는 점이 특이하다.
1791년 윤지충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천주교 교리에 따라 위패를 만들지 않는 등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 사건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되었고, 이것이 진산사건이다. 이로 위해 불효죄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넘겨졌다. 배교 회유를 받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켜냈다. 1791(신해박해)년 12월에 두 사람은 전주 풍남문 밖(지금은 전동성당)에서 참수되었다. 이들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박해의 시작점이다.
윤지충의 동생인 윤지헌은 신해박해(1791) 이후 전라도 고산(완주)으로 이주했다. 교회 서적을 필사하는 등 신앙생활을 이어나갔고, 1795년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이후 교회의 밀사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발각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잡혀 1801(신유박해)년 전주에서 가장 심한 형태인 능지처참에 처했졌다.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와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2014년 프란치스코 방한 시 복자품에 올랐다.
순교로 인해 고향을 떠난지 230년 만인 2021년에 윤지충, 권상연과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2023년 진산 성지 새 성전이 완공되면서 세 성인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었다.
새 성전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가서야 성당이 보였다. 보기에도 완공된 지 얼마 안 되는 새 건물이었다. 정면으로 올라가면 주석으로 만든 순교자 상이 있다. 윤지충, 윤지헌 성인의 어머니와 권상연 성인의 모습이다. 미로 같은 길을 오른쪽으로 따라가니 아기 업은 성모상이 있다. 한국적인 성모상이라 뇌리에 많이 남았다.
순교자상 왼쪽은 성당이고 오른쪽은 식당과 전시실이다. 사람 가슴 높이의 예쁜 벽돌은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성전은 폴딩도어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을 하는 듯하다.
성전 앞면에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인다. 십자가상 주님이 아니라 느낌이 색다르다. 성전내부 십자가의 길도 무거운 게 아니라 가볍고 웃음이 지어진다. 건축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을 믿는 길이 무겁고 어려운 게 아니라 밝고 기쁘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성전 오른편에 윤지충, 권상연, 윤지지헌 복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역사 속 인물을 이렇게 만나 가슴이 벅찼다.
성전 안의 성모상도 역시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있어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정겨웠다.
십자가의 길
성당에서 나와 벽돌 미로를 걸어 십자가 길이 시작되는 곳으로 갔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것과 전혀 다른 십자가의 길이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뒤에서 받쳐주는 듯한 주석으로 만든 은색의 커다란 동상이 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상 죽음을 선고받는 것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14개로 나누어 그 길을 따라 함께 묵상을 하며 걸을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진산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은색 동그라미 안에 각처에 맞게 조각이 돼 있다.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니 순례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남편도 옆에 서서 같이 움직인다. 기도문을 같이 읽지 않아도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십자가길을 둘러싸고 자작나무와 블루애로우가 심겨져 있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겠다.
진산성지 성당의 애기 없은 성모상, 은색(주석으로 짐작)의 예수상, 십자가의 길등 다른 곳과 달라 기억에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옛 성전과의 만남
남편과 함께 십자가의 길까지 하고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차를 출발해 가는데 뭐가 이상하다. 진산 성당이 또 있다. 내비에 보니 진산 성지 성당이 2곳이고 위치가 서로 다른 곳이다. 차를 돌려 진산 성당으로 갔다. 우리가 처음 갔던 곳은 새 성전을 조성한 곳이었다.
1927년 건립이 된 구 진산성지 성당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성지 입구 오른쪽으로 세 성인의 기념비가 있다. 동서로 긴 3랑 식 바실리카 형식이라고 한다. 잘 보이지 않는 작고 귀여운 십자가의 길이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성당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세 성인들 마음을 되돌아보았다.
한국 역사에도 중요한 건축물이라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82호로 지정되었다.
진상 성지 성당 옆쪽으로 진산 역사문화관이 보인다. 아쉽지만 최종 목적지인 부산으로 가야 한다.
' 당신은 모르는데 난 왜 진산사건과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아는 것일까요?'
'글쎄?'
'사레지오 여고를 다니면서 종교시간에 들었던건갈까요?' 기억이 희미하지만 순교자성월엔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게시판에 게시하기도 했다.
'1791년의 두 순교자의 삶이 1980년대 후반 고등학생에게로, 또 진산 성지를 방문한 현재로 연결되었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난 배교를 했을텐데...순교자들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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