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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Nov 07. 2024

해미성지


가을이구나 느껴지는 10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순례지로 향했다. 몇 년 전에 돈암동 학사님께서 도보 성지 순례를 하기에 좋은 곳이라면서 추천해 준 해미성지이다. 우리 부부는 도보가 아닌 차로 다녀왔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는 '생명의 책'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책장 사이로 호야나무가 마치 오랜 세월의 증인처럼 서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 궁금했던 호야나무는 이 지역 사람들이 회화나무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고문의 도구가 되어서 작품의 일부가 되었나 보다. 나뭇가지마다 열린 호야나무 열매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소나무 사이로 종탑처럼 보이는 높은 탑이 보였다. 종탑이 아니라 진복팔단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팔각탑이었다. 일종의 파수대처럼 성지와 순교자를 지켜주시는 든든한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 같다.

커다란 해미순교성지 입석 뒤로 진복팔단의 팔각탑과 성당이 보였다. 해미국제순교성지 정문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 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이 날따라 성당은 사람들은 가득했다. 본당의 날이 10월 중에  있는  수원교구 모성당 전신자가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온 것이다. 미사 시작 전, 해미성지의 역사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군사요충지였던 진영이었다. 179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무려 90년이란 세월 동안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놀라웠던 것은 기록된 순교자 수가 179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중에 47명은 무명이었다. 국사범으로 처형된 이들은 조정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었기에, 그 수는 어쩌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어설지도 모른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1801년 1월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 프란치스코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 오는 10년간의 옥고 끝에 1814년 해미옥에서 옥사하였다. 이들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 되었다.


한옥 양식의 둥근 성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었다. 단순한 건축미가 아닌, 순교자들이 생매장된 웅덩이를 형상화했다는 설명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사는 다섯 분의 신부님 입장으로 시작되었다. 그중 해미성지 부주임 신부님의 강론은 내 생각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순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을 불쌍하게만 보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우리를 안타깝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 말씀이 번개처럼 내 마음을 관통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교만했던가. '나였다면 차라리 배교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순교를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순교는 비극이 아닌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느끼게 해 준 신앙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해미성지가 우리나라에서 단일성지로 유일한 국제성지라는 사실이었다. 신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성지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지역 교구가 인정하는 교구 성지, 한 나라의 주교단이 인정하는 국가성지, 그리고 교황청이 인정하는 국제성지가 그것이다. 성인과 직접 연관되지 않았고 발현지도 아닌 이곳이 어떻게 국제성지가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름 모를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이 땅에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순교자들의 유해의 일부가 모셔진 소성당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원형으로 지어져, 순교자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무덤 모양으로 지어진 해미순교성지 기념관에서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갔다.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가 신앙의 증거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념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당시의 처절했던 순교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유해참배실에서 발굴 당시 발견된 부식되지 않은 치아와 유골들을 마주하며, 이 모든 것이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역사임을 깨달았다. 소름이 돋았다. 순교자들의 삶이 더 이상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해미순교 성지 안내도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해미성지는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순교지이다. 박해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던 감옥엔 교우들로 가득했고, 매일 서문 밖으로 끌고 가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다.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을 해 죽이거나, 여러 명을 눕혀 두고 커다란 돌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시체 처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구덩이나 둠벙에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자리개돌을 지나 진둠벙에 이르렀다.  사람몸을 자리개질 하는 것처럼 돌바닥에 내리쳤으니 그 아픔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려나. 물속에 던져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포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나.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끝까지 배교하지 않은 신앙의 선조들이여. 예수마리아를 외치는 소리가 '여수머리'라고 들려 이곳을 여숫골이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해미성지 내 십자가의 길은 조금 달랐다. 각처의 조형물은 죄수의 목에 채우던 족쇄형 큰 칼의 모형을 
화강암으로 본 따 만든 것이다.  큰 칼 구멍에 원형의 돌을 깎아서 끼워 넣고 그 표면에 그림을 조각하였다. 그림의 한 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고, 다른 한 면은 순교자들의 십자가의 길이었다. 한국식 판화로 제작하였다. 남편과 함께 기도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5처와 6처 사이에 해미성지에 관련된 <3명의 순교복자상>이 있고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와 <해미 순교탑>이 있다.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와 해미순교탑 사이를 걸으며, 그들의 신앙과 나의 신앙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깊었을지 생각했다. 멀리 기와지붕의 야외제대가 보였다. 그 넓은 잔디밭 주변으로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묵상하기에 최적의 루트였다.


신부님은 국제성지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도  알려주셨다. 전대사는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받았어도 남아 있는 죄가 있는데 이 나머지 죄를 면제해 주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주는 은사이다. 고해성사, 성지에서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른 기도를 하고 순교자들의 유해 앞에서 참배를 하면 된다. 전대사는 본인이 사용해도 되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양도할 수 있다. 전대사를 위해  우리 부부는  다시 기념관에 들려  기도를 하고 나왔다.  ‘난 엄마에게 드릴 테니, 당신은 아버님에게 드리세요.’


천 명이 넘는 무명의 순교자들이 잠든 이곳을 걸으며, 나는 다시 한번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그들은 정말 기쁘게 하늘나라로 갔을까?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록들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1000명이 넘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순교자가 잠들어 있다는 이 땅은 여전히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제 그 무게는 슬픔이나 연민이 아닌, 경외와 감사의 무게다. 오늘도 이곳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돌아갈까.


나는 오늘 이곳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이 아닌 그들의 삶을 보았다. 그들이 선택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보았다. 그리고 그 기쁨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해미성지의 흙을 밟는 모든 이들의 발걸음 속에서, 순교자들의 신앙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나와 맛집 감별사인 남편을 따라 해미읍성 주차장 근처에 있는 해미칼국수로 향했다. 이미 소문난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기다림도 설렘이 되는 법. 메뉴를 보며 무엇을 주문할까? 이미 먹고 있는 이들의 테이블을 보며 메뉴를 정하고 우리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메뉴는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더 믿음이 갔다. 우리는 보리비빔밥과 팥칼국수, 그리고 왕만두를 주문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 숟가락 떠먹자마자 둘의 마주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냈다. 왜 이곳이 맛집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깔끔하면서도 깊이 있는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순례의 여정으로 지친 심신이 따뜻한 음식으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해미에 다시 온다면 또 해미칼국수 가서 못 먹어본 음식들을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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