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텃밭농부가 될 수 없었다

전원생활 5년 차의 솔직한 고백

by JF SAGE 정프세이지


집 뒤쪽 산자락은 어느새 울창한 풀숲이 되어버렸다.


첫 해의 성공담


손바닥만 한 작은 땅을 일궈 토마토, 가지, 고추, 참호박을 심었던 첫 해. 예상보다 풍성한 수확에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느라 바빴다. 물론 끝없이 자라나는 풀과의 전쟁, 뜨거운 햇볕 아래 흘린 땀방울의 댓가였지만 말이다.


현실의 벽


주말부부가 시작되고 나도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작은 텃밭을 돌볼 여유가 사라졌다. 자연은 정직했다. 정성을 들이지 않는 곳에서는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진리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호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피망과 가지는 몇 개 건지는 게 고작이었다. 그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 토마토마저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방울토마토는 그나마 따서 먹을 만했지만, 일반 토마토는 익기도 전에 옆구리 터진 김밥 마냥 자꾸만 갈라졌다.


숙제 같은 아이들


첫 해에 심어둔 더덕과 도라지는 겨울마다 완전히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봄이면 어김없이 땅을 뚫고 나와 반갑게 인사한다. 봄에 더덕 꽃은 조용히 미소를 짓게 한다. 여름철의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꽃도 예쁜 정원에 일조한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내게 영원한 숙제다.


'어떤 게 몇 년 된 걸까? 언제 캐야 하지? 혹시 캐다가 새순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캐고 나서는 또 어떻게 처리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다.


넝쿨식물들과의 애증관계


퇴사 후 목표는 넝쿨식물 없애기이다. 자라기 전에 뽑아 엉망진창을 만들지 않겠다는것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여전히 바쁜 일상 속에서 정원 가꿀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원을 뒤덮은 넝쿨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대부분의 초본의 넝쿨식물들은 콩과인 것 같다. 콩과식물은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하니 굳이 뽑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다른 식물들을 휘감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그 위세가 대단해져서 정원이 미워지고 겨울이 되면 패가 분위기를 연출한다.


솔직히 말하면 보기 싫어서 뽑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이 넝쿨들 때문에 다른 식물이 정말 죽기라도 할까? 빛을 가린다는 건 확실하다. 특히 칡의 기세는 정말 무섭다. 모든 식물이 나름의 방식으로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고민이 끝이 없다.


완벽주의의 함정


일요일 새벽미사를 마치고 일복으로 갈아입었다. 무디어진 전정가위와 호미를 들고 덩쿨식물을 없애려고 나갔다. 계단을 오르내릴때마다 보였던 풀들을 뽑다 보니 올해 한 번도 손 대지 않은 구역에 닿았다. 미지의 땅을 발견한 양 기분좋게 나무 전정을 했다. 비가 온 뒤라 풀도 잘 뽑힌다.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남편도 나와서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에 숨이 막혀왔다.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였다. 하루에 다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지난주 엄마 산소에서 들은 셋째 올케의 말이 떠올랐다.


"오빠는 일을 조금씩 나눠서 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해서 그렇게 힘든 거야. 나는 늘 조금씩 나눠서 하는 편인데."


"아 그래요? 나도 오빠랑 똑같아요."


왜 이럴까? 힘들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한계 상황에서 밀려서 하는 건가? 아니면 준비물 챙기는 것도 귀찮아서 한 번에 끝내려는 건가?


결국 더위에 완전히 지쳐서야 멈췄다.


"씻고 밥 먹으러 가자."

"여보, 나 못 가. 밥도 안 먹을 거야."


완전히 녹초가 됐다.


손가락엔 물집이 잡혔다. 남편에게 보여주자 한마디가 돌아왔다.

"적당히 좀 하고 들어와."

"그러니까 제대로 된 전정가위 좀 사줘. 제초기도."


장비빨을 외치는 아내


주말에 못 마친 뒷공간이 자꾸 눈에 밟혔다. 길냥이 밥을 주러 갈 때마다 '정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장비를 사줄 때까지 기다릴 성격이 못 된다. 결국 또 올라갔다.


칡이 어느새 영역을 확장해서 다른 나무들을 완전히 휘감고 있었다. 예전 텃밭 자리는 망초가 점령했고, 번식력 끝판왕인 금계국까지 시들면서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내년엔 에키나시아 씨를 뿌려서 이 공간을 완전히 바꿔보자.' 과연 가능한 일일까? 씨앗만으로 기존 식생을 바꾸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도라지와 잡초가 뒤섞여 있어서 구분하기도 어렵다. 너무 많아서 뽑는 대신 자르기로 했다. 더덕은 다른 풀들을 버팀목 삼아 여기저기 세력을 넓혔다. 게다가 칡까지... 언젠가는 더덕도 도라지도 캐내야 할 텐데 말이다.


문득 궁금해져서 잘려나간 도라지 하나를 캐보기로 했다. 쉽게 뽑히지 않았다. 호미로 조심스럽게 파보니... 와, 제법 실하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냈다.


남편은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로 "도라지는 1년 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고 매년 말만 했었다. 안 옮겨줬으니 먹을 게 없을 거라고 했는데, 예상과 달리 도라지는 통통하게 잘 자라 있었다. 주말에 남편이 오면 몇 개 더 캐서 오이도라지초무침을 해봐야겠다.


또 잔소리가 시작됐다.

"뒤쪽에 또 손댔어?"

"그럼 어떻게 해? 눈에 가시 같은데."

"그러니까 도구들 좀 빨리 사달라고.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걸로. 무거운 건 내가 감수할게."


남편은 철물점 가서 직접 보고 사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최소한 반자동은 되어야 한다.


검색해서 사면 되는데 어떤 게 좋은지 알아보는 것조차 에너지 낭비 같아서 그냥 기다릴 뿐이다. 도대체 언제 사주려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 부부의 정원 가꾸기를 돌이켜보면 참 웃픈다. 둘 다 심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이후의 관리는물만 열심히 준다. 물론 따고 캐는 재미는 쏠쏠하다. 매년 열리는 앵두도 가끔 내가 혼자 따먹고, 매실도 몇 개 달리면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올 핸 단감이랑 샤인 머스캣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남아 있으려나?


식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열정도 그리 크지 않다. 심고 나서 '아, 잘 자라고 있네' 확인하는 정도면 만족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왔을 때는 '이제 먹거리라도 직접 해결해보자'며 의욕에 넘쳤다. 하지만 5년 차가 된 지금, 우리 부부의 정체성이 확실해졌다. 우리는 농부가 아니라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가끔 터져나오는 방울토마토 몇 개와 통통하게 자란 도라지 한 뿌리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다. 가을엔 더덕도 캐 볼 생각이다. 완벽한 농부는 못 되더라도, 이 정도면 나름의 전원생활 아닌가.


내년에도 또 무언가 심을 것이다. 그리고 또 방치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만의 텃밭 라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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