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4월, 생전지도사 과정을 시작했다. 하루 4시간씩, 매일 200시간의 교육.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6월 12일 드디어 수료했다. 인지활동지도사와 정리수납 자격증까지 손에 쥐고, 이제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다.
수료 일주일 전, 우연히 알게 된 '여럿이'라는 시니어 브레인 업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2명을 뽑는데 같이 공부한 사람 6명이 응시했다. 신체, 미술, 전래놀이, 음악 영역 중에서 모집분야는 음악강사였다.
문제는 내가 삼치(음치, 몸치, 박치)라는 것. 음악강사 자리는 아무리 봐도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즐겁지도 않을 것 같고 말이다.
면접장에서 나는 솔직하게 내 실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른 영역에 자리가 나면 불러주세요." 60대 중반인 실장님은 정말 센스쟁이였다. 내 말을 금방 알아듣고 "알겠어요, 6명이 와서 고민이 많았는데, 금방 다시 봐요."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부재통 통화가 6통이 떴다. 음악강사로 일하고 있는 진옥샘과 여럿 실장님에게서였다. '우리들의 이야기(전래놀이 및 회상활동)' 영역에 결원이 생겼다는 것. 8월부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망설임도 잠깐, 하겠다고 했다. 경력이 필요하니까.
여럿 실장님과 2번의 오리엔테이션 약속을 잡았다. 바로 우리들의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고 7월 말에는 우리들의 이야기 팀 회식이 있을 때 같이 만나자고 했다. 수업 청강 날까지 정했다. 청강을 하니 음악영역이 아님에도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한다. 수업 전후로 다른 노래를 가지고.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우리들 이야기 팀 회식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라 긴장과 함께 사무실로 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심장소리가 더 커지는 듯했다. 우리들 이야기팀은 3명이다. 팀장, 남현주 샘과 나까지 3명이 모여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8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은 일사천리로 프로그램들을 보며 바로 "이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해서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1시간 동안 인사, 출석 부르기, 손유희, 시작체조, 인지활동, 본활동, 마무리체조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포맷이다. 삼치인 내가 어떻게 손유희에 시작체조, 마무리체조까지 할 수 있을까. 큰 걱정이 앞섰다.
8월의 인지활동은 어르신들과 풀어가기에 어렵다고 판단, 팀장이 슬라이드를 변경하겠다고 했다. 수업준비물은 이렇게 준비하자고 말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는 순간 난 그 걱정들을 한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톡방에 수업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 사람들 뭐지? 있던 프로그램 그대로 해도 될 텐데 거기에 뭔가를 가미해 새롭게 시도를 한다.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가만히 있지 않고 잘하기 위해 하나라도 더 하려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톡방이 심심하지 않게 내용들이 계속 올라왔다.
8월 첫 수업을 다녀온 남현주 샘이 바로 일지를 올렸다. '이렇게 하니 어르신들 반응이 좋았다', '안 좋았다', '이 부분을 좀 수정하면 좋을 것 같다.' 사진과 동영상도 함께 올려주었다. 팀장도 바로 수업후기를 올려주었다. 이 빠른 움직임은 뭐지? 나도 이들처럼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인지활동지도사로 처음 수업을 하는 날이 왔다. 전날 우리 동네 사회복지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새로 오시는 강사님이시죠?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가요? "제가 다 가지고 가요. 처음이라 많이 떨리니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세요.""물론이죠."
딩동, 복지사님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고 미소 띤 얼굴로 맞아주었다. 보호사님들, 어르신들 모두 너무 반겨주었다. 첫 수업이라 실장님이 같이 와서 수업하는 걸 보고 손으로 사인을 주었다. 설명이 길어 지닌 어르신들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준비한 걸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하니 그만 자르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잘했다. 앞으로 잘하실 것 같아요,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뒤쪽에서 체조할 때 안 하신 분들도 있으니 거기에 신경을 좀 더 쓰세요. 목소리가 수업하기에 좋아요."
어르신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수업 만족도가 컸다. '좋은 일을 했네'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노래에 맞춰 체조를 알려드리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움직였다. 색칠해 직접 만든 퍼즐을 맞추고 짝이랑 교환해 맞추는 모습들이 예쁘게 보인다. 마이크가 자꾸 흘러내려서 어쩌나 싶었지만 마무리까지 무사히 마쳤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있는 요양원을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둘러보니 그 동네에 요양원들이 참 많았다. 오후 수업까지 하고 나니 몸이 물 먹은 솜처럼 가라앉았다. 팀장님과 남현주 샘에게서 첫 수업 어땠냐고 전화가 왔다. 이렇게까지 친절하다고? 수업일지를 자세하게 써 바로 단톡방에 올렸다. 더는 아니더라도 받은 만큼은 해야지.
수업을 하다 보니 병원 봉사랑 또 달랐다. 마음 가볍게 활동 보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1시간을 내 재량껏 운영해야 한다. 자꾸 어르신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게 하고 더 생각할 수 있는 걸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머릿속에 이 책임감이 떠나지 않지만 동시에 보람도 크다. 내가 준비한 활동으로 어르신들이 웃고 참여할 때의 그 기분이 꽤 좋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진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팀장은 물론이고 현주 샘도 뭘 물으면 바로 답을 주고, 좋은 결과를 부르는 활동들은 반드시 남겨준다. 이런 팀워크가 있어서 이 일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두 샘의 과한 열정은 페이만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 없다. 페이를 떠난 그 열정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좋은 수업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음악팀에 있는 진옥 샘이 엄청 부러워한다. "샘 팀은 정말 좋겠다"라고 말한다. 맞다. 정말 좋은 팀이다.
음악팀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팀으로 일을 시작한 것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진짜 운이 좋은 건 좋은 사람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 일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추구하는 성장, 배움과 나눔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건 행운이다.
삼치인 내가 시니어대상 인지활동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남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수업을 하는 동안 많이 웃는다. 웃음을 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8월에 시작한 이 일, 계속해보고 싶다.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멋진 팀과 함께 성장해갈 수 있다면.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